신속하게 은밀하게…IP분쟁 소송말고 ‘조정’

프린트

경영정보 ㅣ 특허변리 신속하게 은밀하게…IP분쟁 소송말고 ‘조정’ 특허청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최종심 효력, 비밀보장 장점

기사입력2016-03-14 00:00

#1. A사에서 퇴직한 직원 B씨와 C씨는 재직 당시 특허를 완성하고 기술이전 계약까지 성사시켰으나 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했다며 2014년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출석요청서를 받은 A사는 조정회의에 응했고, B씨와 C씨에게 각각 5000만원씩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 D사는 경쟁사인 E사가 자사 등록디자인을 침해했다며 2015년 침해금지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조정을 신청했다. E사 매출은 미미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어도 D사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많지 않았다. 결국 분쟁은 E사가 베낀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특허청 전현진 산업재산보호정책과장이 지난 11일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대안적 분쟁해결) 제도 세미나에서 발표한 국내 조정 사례다. ADR이란 이해당사자간 분쟁을 소송 대신 화해, 조정, 중재 등 대안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11일 특허청이 주최한 ADR 제도 세미나에는 130여명이 참석했다. ©중기이코노미

ADR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과 삼성전자만 해도 2011년부터 6년째 특허소송을 이어오고 있다. 변호사 수임료도 만만치 않다. 특허침해 사실을 알고도 중소기업들은 섣불리 소송을 걸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허청의 2015년 지식재산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이 산업재산권 침해 대응을 망설이는 가장 첫 번재 이유는 시간과 비용이었다. 그런 기업들에게 특허청의 산업재산권 분쟁조정 제도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전 과장은 “발명진흥법에 따라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은 3개월 안에 마무리된다. 불가피한 경우 최대 1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싱가포르에서 ADR 조정위원을 맡고 있는 조이스 탠 변호사도 이날 세미나에서 “소송은 결론이 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적재산권이 침해를 당하기도 한다. 모든 특허에는 유효기간이 있는데, 시간을 버리면 그만큼 금전적인 손실을 보는 것”이라고 했다. ADR 결과는 최종성이 보장된다. 소송으로 따지면 최종심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조정 내용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조이스 탠 변호사는 “특허소송은 증거 마련 문제 때문에 여러 곳에 기록이 남는다. 당사자들이 원치 않아도 언론에 노출되기도 한다”면서 “ADR은 비공개성을 보장한다. 조정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전 직원들에게 각각 5000만원씩 지급한 A사의 결정도 같은 맥락에서다. 특허청 전현진 과장은 “전 직원들과 소송을 벌인다는 것이 외부에 공개됐을 경우 나쁜 인상을 줄 수 있다. A사가 조정을 선택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며 “전 직원들 입장에서도 소송에 들어가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니 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래픽=이혜원 기자> ©중기이코노미

외국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보장하는 ‘뉴욕협약’에 따라 국내에서 합의된 조정은 다른 나라에서도 효력을 발휘한다. 외국기업과 소송을 벌일 때 각각의 국가에서 일일이 조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반면 소송은 국가마다 법이 달라 각각의 국가에서 승소해야 법적 효력을 발휘한다. 애플과 삼성이 미국, 한국, 네덜란드, 독일 등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송을 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산업재산권 분쟁조정 활용이 미비했던 게 사실이다. 특허청 박성준 산업재산보호협력국장은 “산업재산권 분쟁조정위원회는 1995년에 도입됐지만 그동안 거의 활용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특허청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산업재산권 분쟁조정 건수는 매년 5건 이하였다.

그러나 2014년에는 11건, 2015년에는 17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1월에만 6건이 접수됐다는 것이 특허청의 설명이다. 앞으로는 조정 건수가 더 늘어날 조짐이다. 지난해부터 서울중앙지검이 일부 산업재산권 분쟁을 조정위원회로 이관하고 있어서다. 지난해에도 산업재산권 분쟁위원회는 8건을 이관 받아 조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현재 우리나라는 ADR 제도 중 조정만을 시행하고 있다. 조정은 제3자인 조정자가 해결방안을 내놓아도 당사자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결렬된다. 반면 중재는 중재인이 내놓은 중재안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중재가 더 강제성이 있다는 의미다. 전현진 과장에 따르면 특허청은 중재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