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비용 3억…허례허식 없애고 의미는 살리고

프린트

Live 중기 ㅣ 소상공인 결혼비용 3억…허례허식 없애고 의미는 살리고 고비용 결혼문화 바꾸는 ‘들꽃결혼식’…가격 줄이고 품격은 그대로

기사입력2016-06-28 12:0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CO-끼리’ 협동조합이 대안 ⑥서울시결혼문화협동조합] ‘들꽃결혼식’. 소박하지만 품은 향기가 아름다워 이름도 들꽃이다. 서울시결혼문화협동조합이 만들어가고 있는 결혼식 이야기가 그대로 담겼다.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고 작지만 개성있고 의미있는 결혼식을 만들자는 것이 이 협동조합의 설립목표다.

최근 한 웨딩컨설팅 업체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예식비용은 2억7420만원이었다. 신혼집, 예식장, 예물, 예단, 혼수용품,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을 묶은 ‘스드메’, 신혼여행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예식장과 스드메에 드는 비용이 평균 2500여만원이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고서야 젊은 두 남녀가 벌어 감당할 만한 금액이 아니다. 연예·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三抛世代)들의 고민 속엔 우리사회 고비용 결혼문화도 자리잡고 있다.

신랑신부가 작성하는 ‘들꽃결혼식’ 서약서 <자료=서울시결혼문화협동조합>

친환경·소규모·개성·기부·검소…들꽃결혼식 키워드

서울시결혼문화협동조합이 추구하는 들꽃결혼식은 생화로 화려하게 웨딩홀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열린공간에서 치러지는 ‘자연결혼식’이다. 얼굴 모르는 이들까지 초대해 문전성시를 이룰 필요도 없다. 가족·친지·친구와 함께하는 소규모결혼식, 스드메 등에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신랑신부와 하객이 모두 어울리는 개성있는 결혼식, 결혼식을 통해 기부금을 모아 기부하는 행복한 결혼식이다.

서울시결혼문화협동조합 조완주 이사장은 “신부가 드는 ‘부케’는 원래 들꽃이 어원이다. 사랑하는 여성에게 들꽃 한아름 선사하는 것으로 미래를 함께하자는 약속이 성사되는 소박한 결혼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협동조합이 생긴 이유”라고 설명했다.

고비용 예식문화 부추기는 예식업계

조 이사장은 “요즘 한국의 결혼식 문화는 웨딩플래너·웨딩컨설팅 등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결혼하려는 예비신랑·신부는 웨딩컨설팅 회사를 알아보고 그들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예비신랑·신부는 정보가 충분치 않고 업계는 마케팅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업체들과 신랑·신부는 컨설팅업체나 플래너에게 소개비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조 이사장은 “이러한 과정들이 결혼식 비용을 높이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즉 중간과정에서 수수료를 많이 받으려면 비싼 상품을 팔아야 하고, 그래서 업체들도 점점 더 비싼 상품을 내놓고 플래너 등도 비싼 상품을 우선 추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수료와 소개료 뿐 만이 아니다. 15만원에서 20만원이 드는 결혼식 도우미 비용, 결혼촬영계약 비용과는 별도로 사진 원본과 수정된 사진 파일도 따로 30~4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웨딩드레스를 고르기 위해 2~3곳의 웨딩드레스숍을 ‘투어’하기 위한 비용도 별도다.

직거래원칙, 114·233 패키지로 실속있게

“소비자·조합원이 웃어야 협동조합이 성공하는 것”이라는 조완주 이사장 ©중기이코노미

서울시결혼문화협동조합 조합원들은 소비자와 판매자의 직거래를 원칙으로 하고 계약한 사항 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중간수수료, 소개료 등을 없애고 조합원으로 가입한 업체들은 정직한 가격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것을 약속했다.

협동조합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114 패키지’와 ‘233 패키지’다. 결혼본식 촬영과 드레스, 메이크업, 헤어가 포함된 금액이 114만원이다. 스튜디오 촬영을 원한다면 233만원 패키지면 된다. 서울시민청, 용산가족공원, 삼일교회, 서울숲, 국립중앙박물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등 무료예식장을 최대한 활용한다. 쓰레기로 전락하는 생화장식은 하지 않는다. 과도한 피로연 음식 대신 꼭 필요한 것만 친환경 식재료로 실속있고 맛있게 준비해 음식 쓰레기를 줄인다. 야외결혼식에서는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한다.

20여년 동안 서울 청담동에서 결혼사진촬영 스튜디오를 운영해온 조 이사장은 2013년 업계 지인들과 협동조합을 구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쉽지 않았다. 협동조합 설립신고서를 내기 위해 정관·사업계획서·조합원 인적사항 등이 필요했다. 서류작업이 서툰 그는 신고서 접수에만 10여차례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컨설팅을 이용하면 쉽지만 300여만원이 든다고 해서 직접 했다고 말하는 그는 “힘들어서 더 많이 배웠다”고 했다.

조합원 5명에서 50명으로…신랑·신부는 소비자조합원

협동조합을 통해 결혼한 신랑신부의 친필편지. 조완주 이사장은 반강제로 받은 것이라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중기이코노미

2014년 조 이사장의 스튜디오로 여권사진을 찍으러온 커플의 결혼식이 협동조합의 1호 결혼식이다. 신혼여행 때문에 여권사진이 필요했던 그들을 조 이사장은 끈질기게 설득했다. 2014년 서울 합정동의 한 교회에서 치러진 그 첫 번째 결혼식은 하객들에게도 업계에서도 관심의 대상이었다고 그는 전한다.

조 이사장은 “결혼식 당일 향후 그 교회에서 결혼 예정이었던 커플들도 모두 와서 구경했다”며 “그렇게 첫 번째 결혼식이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200회를 훌쩍 넘겼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결혼한 홈쇼핑 MD커플은 예식 후 회사동료 4명을 소개해줘 협동조합을 통해 결혼식을 진행했다.

5명으로 시작했던 조합원 수(업체 포함)는 현재 50여명이 넘었다. 조합원 가입비는 100만원이며 한번만 내면 된다. 협동조합 결혼서비스를 이용하는 신랑·신부들도 소비자조합원으로 가입한다. 소비자 조합원 가입비는 1인1만원이며 이 가입비는 기부금으로 조성된다.

‘들꽃결혼식’을 한 신랑, 신부는 기부 약속을 하고 이를 이행해야 한다. <사진=서울결혼문화협동조합>

소비자조합원은 ▲결혼식에 허례허식 하지 않는다 ▲화려한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 ▲의미있는 결혼식을 한다 ▲무료 결혼식 등의 나눔행사를 응원한다 등의 약속을 해야 한다.

서울시결혼문화협동조합은 중앙입양원과 기부협약을 맺었다. 결혼식 혹은 조합사업 등을 통한 모금액은 모두 국내 입양아 및 해외에 입양됐다가 한국으로 되돌아온 입양아들의 자립을 돕는데 쓰인다.

“중앙입양원에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도 건강한 결혼문화에 일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조 이사장은 “입양아들의 대부분은 미혼모의 자녀이거나 원치 않는 임신으로 버려진 아이들”이라며 “건강한 결혼문화가 만들어지면 이렇게 상처받는 아이들도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비자 웃고 조합원 웃어야 협동조합 성공”

200여쌍의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조 이사장은 신랑·신부들로부터 협동조합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소하지만 의미있는 결혼문화를 만들자는 것이 협동조합의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이 있다는 것만으로 현재의 문화를 바꿀 수는 없다”며 “허례허식과 거품 가득한 우리나라 결혼문화에 환멸을 느끼는 젊은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고, 우리와 같은 검소하고 의미있는 결혼문화서비스를 그들이 먼저 찾아나서고 있다”고 했다. 하반기에 예정된 결혼식이 100여건에 달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격을 줄였지 품질을 줄인 것이 아니다”라며 자신감을 보이는 조 이사장. 그는 “소비자가 웃고 조합원이 웃어야 협동조합이 성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