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 현금확보 어려운 중소기업의 고육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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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지금 중기에선 어음, 현금확보 어려운 중소기업의 고육지책 결제수단·신용창출기능은 좋지만…단계적 폐지의견 우세

기사입력2016-07-08 13:59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부천 소재의 실내건축 기업 대표 A씨는 “요즘에는 거래처와 어음거래는 사절”이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의 경우 어음으로 결제하는 비중이 높은데 이십여년 사업을 해오면서 어음으로 인해 손해가 많았다는 것이 이유다. A씨는 “예전에는 어음거래가 관행처럼 이어져서 많이 주고 받았는데 할인율도 비싸고, 자칫 부도가 나면 손실이 커 현재는 전자어음이 아니면 어음거래는 일절 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내건축은 공사기간이 길어 대금을 공사가 끝난 후 받으면 운영이 어렵다. 그래서 어음을 미리 받아 현금을 융통하는데 쓸 수 있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요즘엔 현금결제도 증가하고 있어 어음이 꼭 필요한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건설자재 외벽패널 납품제조업체 대표 B씨는 “물품대금을 4개월짜리 어음으로 받는 경우도 있다”며 “부도를 대비해 매출채권보험이나 중소기업공제기금까지 들고 있어 이중으로 자금난을 겪는다”고 말했다. B씨는 “어음은 중소기업의 자금난과 어음할인 비용을 가중시키며 대기업이나 일차업체가 부도라도 나면 같이 망할 가능성이 커 어음활용이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약속어음 예시 <자료=금융결제원>

대기업에 유리하고 중소기업에 불리한 금융관행이 여전하다. 중소기업이 주식, 채권 등 직접금융을 이용하기에는 조건이 까다롭고 어려워 대부분 은행자금대출 등 간접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금융기관 대출문턱도 중소기업에게는 넘기 어려운 관문이다. 이처럼 자금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어음을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어음은 기업의 자금융통에 있어 현금에 버금가는 지급수단이다. 최근 대기업의 현금결제가 늘고 다양한 전자결제 등 대체결제수단이 활용되고 있어 어음 결제비중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하도급자 및 그 아래 N차 하청업자들은 여전히 대금결제 시 여전히 어음을 수령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실시한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21.8%는 판매대금을 어음으로 수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음결제 가장 큰 이유는 ‘현금부족’

중소기업 어음결제 비중 추이

<자료=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들이 어음으로 결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현금부족’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014년 실시한 어음관련 조사결과에 따르면 어음을 사용중인 중소기업의 37.3%는 “거래처에서 어음으로 결제해줘 현금이 부족하고 이에 따라 다른 거래시에도 어음으로 결제하게 된다”고 응답했다. 또 “제품 생산 후 자금회수까지 기간이 오래 걸려 어음으로 지급한다”는 응답도 29.9%로 나타났다. 조사업체 중 72.2%는 “어음대금을 늦게 결제받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이 어음으로 결제하는 이유

<자료=중소기업중앙회>

어음은 몇 개월 후 현금을 주겠다는 약속증서다. 어음에는 무역거래시 사용하는 환어음과 기업 간 결제에 주로 사용하는 약속어음이 있다. 약속어음 제도의 기초가 되는 현행 어음법은 1962년 제정됐다. 어음법에 따르면 어음만기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어음만기 규정을 명시하는 등의 법률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견기업 이하의 기업들, 특히 하청업체들이 어음을 받은 경우 현금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원자재를 구매하거나 인건비를 지급하기 위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음으로 결제하거나 어음할인을 한다.

중소기업중앙회 원재희 부회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어음부도 시 어음발행자에 대한 법적구속력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원 부회장은 “대기업이 금액이 큰 어음을 1~2장으로 발행해 지급하면 그 어음을 받은 중소기업은 하청업체 등에 작은 금액의 어음을 발행해 지급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부터 어음발행을 줄이고 현금결제를 하면 중소기업에서도 어음발행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제·금융, 어음의 순기능 불구 어음 폐지논의 활발

기업들 사이에 주로 거래하는 약속어음은 결제기능과 금융기능이라는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금융기능은 담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신용을 창출하고 현금화의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들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할 때 자기가 발행한 어음을 담보로 제공하고 대출을 받거나 지급기일까지의 이자를 공제하는 어음할인 방법으로 조기에 자금을 공급받는 등 어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의 결제 도구로 여전히 어음을 사용하고 있고 순기능이 있음에도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어음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대기업의 일방적인 어음관행이나 수·위탁 기업 거래 간의 결제지연 등의 문제가 지적된다. 대기업이나 수탁기업의 경우 충분한 현금보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거래관계에서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대금지급 기일을 연기하려는 관행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납품대금을 받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는 문제가 생긴다. 또 받은 어음을 발행한 기업이 부실해지면 해당기업의 어음을 취급한 모든 관계기업까지 ‘연쇄도산’위기에 처하게 된다. 또 어음을 현금화하기 위해 어음할인을 하게 되면 금융비용이 발생해 수익성이 악화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결제대금을 어음으로 지급받는 기업들이 영세할수록 이런 위험은 기업경영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어음과 관련된 문제점은 어음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어음을 이용하는 상거래 질서가 공정하게 확립되지 못한 경제 환경의 영향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어음제도의 폐해를 조정하기 위해 여러 대안들이 사용되고 있다. ‘전자어음발행 및 유통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산총액 10억원 이상인 법인사업자는 약속어음 발행시 전자어음을 의무적으로 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음거래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당장 어음제도 폐지되면 기업입장에서 불편함이 생길 것”

고대진 IBK경제연구소장은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전자어음은 어음의 위변조를 막을 수 있어 은행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실제거래가 없으면서 어음을 발행해 현금할인을 받는 융통어음 발생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그는 “어음은 공급자와 수급자 사이의 현금조달 문제로 거래가 되는데 당장 어음제도가 폐지되면 기업입장에서는 불편함이 생길 것”이라며 “어음법 개정 등을 통해 어음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전자어음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매출채권보험제도, 기업구매자금대출제도,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제도 등 대체수단들이 활용되고 있지만 이들 역시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음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어음제도 폐지를 위해서는 이를 대체할 대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존에 활용중인 대체제도를 수정보완하고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