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중앙회, 전경련 상의 재계그늘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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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중기중앙회, 전경련 상의 재계그늘서 벗어나라 수직·종속적 하도급관계, 대기업 편중 산업생태계 깨고 ‘상생·공존’

기사입력2017-01-01 12:00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국사회에서 중소·영세기업과 근로자는 닮은 구석이 꽤 많다. 우선 대기업과 사용자보다 그 숫자에서 월등히 많다. 중견기업도 있고, 관련법에 따라 조금 달리 분류하긴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99%가 중소·영세기업이다. 굳이 통계청에 따른 임금근로자 숫자를 대지 않더라도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이 근로자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상공인 또는 자영업자로 분류하는 치킨집, 빵집, 편의점 사장들 또한 사실상의 근로자다. 근로기준법상 임금을 받지 않을 뿐 팍팍한 삶도 그렇고, 근로자와 동일하게 자신의 노동력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중소·영세기업과 근로자, 우리사회에서 양자 모두 소외 또는 천대받는 현실도 닮았다. ‘강소기업’이란 평판을 받는 중소기업과 ‘신의 직장’ 그리고 재벌기업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양자 모두 ‘나는 살만하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로 보자면, 극히 일부인 이들의 사정은 대다수 중소기업과 중소·영세기업 근로자와 비교해 처지가 좀 나은 것일 뿐이다. 재벌그룹의 ‘일감몰아주기’에 따른 공정한 경쟁기회를 박탈당하고, 또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에서 대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따른 폐해는 강소기업도 피하기 어렵다.

중소·영세기업과 근로자가 또 닮은 점은 양자 모두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수렴해, 그것을 정치영역으로 옮겨줄 수 있는 이익집단이 사실상 없거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80만 중소기업(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지만, 그간의 중기중앙회 활동을 되짚어 보면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중기중앙회는 이른바 재계단체로 자신의 위상을 규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재벌기업의 탐욕을 묵인·방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헌법의 노동3권에 따라 노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근로자는 중소기업보다 형편이 좀 낫지만 사정은 별다르지 않다.

사업장 단위 노조의 전국 연합체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그리고 양쪽에 속하지 않은 노조 모두를 털어야 조직률은 10% 내외다. 조직률 자체도 낮고,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은 비교적 규모가 있는 곳이다. 대다수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에게 노조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노동(조합)운동 활동가 모두 입을 모아 비정규직 ‘차별철폐’ 또는 ‘처우개선’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주력이 비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마다 때가 되면 ‘파업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언론에 도배되는 노조는 특정 대기업·공기업 몇몇에 불과하다. 이들의 파업으로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임금이 올라 비정규직과의 임금격차가 더 벌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사회 계층간 극단적인 양극화를 초래한 주범은 노조가 아니다. 소비·고용·투자절벽에, 인구·출산절벽까지 우리경제를 총체적 난국으로 몰아간 원흉은 박정희 정권 이후 수십년간 지속된 재벌대기업 편중의 산업정책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80만 중소기업(인)의 목소리를 대변한다지만, 그간의 중기중앙회 활동을 되짚어 보면 기억에 남을만한 것이 별로 없다.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중소·영세기업의 극한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중기중앙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중기이코노미 자료 사진> ©중기이코노미

중기중앙회가 ‘적합업종 법제화’, ‘하도급법 실효성 강화’, ‘공정거래행정 강화’를 주장해도 입법화가 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중기중앙회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 때문이다. 적합업종, 하도급법, 공정거래 등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은 재계(대기업)와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활(死活)이 걸린 문제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약속한 경제민주화 공약 대부분을 재계(전국경제인연합회)는 대통령과의 독대, 집단면담, 로비 등을 통해 공약(空約)으로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공약 폐기가 우리나라의 왜곡된 산업생태계를 더욱더 나락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산업생태계를 정상화로 돌리기 위해서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밥그릇’ 싸움은 노조와 사용자간의 갈등 이상으로 격화돼야 한다. 또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중소·영세기업의 극한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중기중앙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갈등을 부추긴다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첨언하자면, 사회내 또 조직내 갈등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와 타인간의 괴리는 늘 존재하는 것이고, 그 괴리를 메워주는 매개체가 갈등에 이은 조정이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노사관계와 대·중소기업간 갈등은 상수고, 필요한 것은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조정자 즉 ‘공평무사’한 정부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이라고 노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오늘 없다고 내일도 해당 사업장에 노조가 생기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헌법이 인정한 법정단체임에도 언론에 의해 일그러진 모습만 보았던 중소·영세기업 사용자로선 노조의 존재 자체가 불편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도 결혼해 함께 살기 시작하면 처음엔 좀 불편하다. 노조의 존재가 사용자에게 주는 불편함이란 그 정도 수준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 모두 불편함을 익숙함으로 해결하듯이 노사관계 역시 공존, 상생 그리고 보완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왜곡된 산업생태계에서 대기업과 갈등관계에 있는 중소·영세기업에 노조의 존재는 우군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언론에 의해 ‘집단이기주의에 따른 담합관계’라고 비판받는 공기업의 노사관계를 예로 보자. 정부의 통제를 받는 공기업에서 상당수의 기관장은 자신의 지위가 사용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말’을 정부에 전달한다. 또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노조의 ‘행동’까지 묵인한다.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영세·중소기업 사용자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노조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중소기업 하도급관계에서 ‘말’과 ‘행동’의 대상은 당연히 대기업이다. 논리와 관계없이 본능적으로 노조의 존재이유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면 법정단체니까 인정하고, 법대로 노사관계를 가져가면 된다.

다소 억지스런 근거로 영세·중소기업과 근로자간의 동질성을 얘기한 이유는 ‘을’과 ‘을’ 간의 소모적인 갈등이 최소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시장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갑’과의 싸움도 버거운데, ‘을’과 ‘을’ 간의 갈등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해서 득이 될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 대기업 편중의 산업생태계를 깨기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은 경제민주화의 전면적 실행이다. 경제민주화 정책 수립과 집행과정 내내 영세·중소기업과 노조는 그 이해관계가 같다. 또 같이 할 때만이 보다 강력한 힘으로 재벌대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물론 국민적인 지지와 성원도 얻을 수 있다.

중소기업을 운영해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것 자체가 애국(愛國)이란 말을 가끔 듣는다.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다. 하나만 더 하자. 애민(愛民)이다. 재벌대기업과 수평·대등한 하도급관계를 구축해 적정한 이윤을 확보하고, 그것을 사업장내 근로자와 함께 나누자. 재벌대기업에 뜯겨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근로자에게 저임금을 강요하는 수직·종속적인 하도급관계를 근본부터 무너뜨리자. 정유년 새해에는 분명하게 다른 모습의 대·중소기업간 상생·공존의 관계로 한발 더 전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