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운운…미국의 ‘갑질’ 한미FTA 재협상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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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불공정 운운…미국의 ‘갑질’ 한미FTA 재협상 요구 농업·서비스 적자투성이…‘공세적이고 전면적’으로 대응하라

기사입력2017-07-03 17:5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미FTA가 ‘불공정한’ 무역을 제도화한 것이라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규모도 크고, 특히 한미간 자동차 및 철강 교역불균형이 문제란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간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윌버로스 상무장관은 “한국과의 무역 불균형은 한미 FTA가 발효된 후 두 배가 됐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정상회담 직후 샌더스 백악관 부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대통령 지시에 따라 로버트 라이시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한미FTA) 재협상 및 개정 과정에 착수하는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한국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FTA 재협상과 관련 한미정상간 합의된바 없다는 문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미FTA 재협상이 사실상 시작된 것처럼 비춰진다. 한미FTA 협정문에 따르면 ‘양국은 협정 개정에 서면으로 합의할 수 있다’고만 명시,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 한국정부가 응해야 할 국제법상 의무는 없다. 그러나 한미간의 역학관계를 고려하면, 한국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난망하다.

미국의 재협상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4월 한미FTA 협상타결에도 불구하고 노동 및 환경 분야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미국이 추가협상을 요구했고, 한국정부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같은해 6월 양국간 협정문 서명이 이뤄졌다. 2009년 1월 취임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과정 내내 “한미 FTA가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정”이라고 주장했다. 2010년 6월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정부에 자동차 관련조항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했고, 이 역시 한국정부가 수용했다. 추가협상과 재협상 등 최초협상 타결 이후 4년6개월여가 지난 2011년말, 한미 양국은 의회 비준을 거쳐 2012년 3월 FTA가 양국에서 공식 발효됐다.

한미FTA 재협상 요구는 트럼프가 ‘기인’이라서 벌어진 일과성 해프닝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한미FTA 재협상 요구의 ‘원조’격인 오바마도 ‘제조업 강국’에 대한 향수와 함께 의지도 갖고 있었다. 금융·서비스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IT 기반의 제조업 중심으로 ‘복원’하기 위한 오바마의 ‘Remaking America’ 정책이 계속되면서, 미국은 ‘제조업 르네상스’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딜로이트 글로벌이 미국경쟁력위원회와 공동조사한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2016)’에 따르면, 2020년 미국은 ‘세계의 공장’ 중국을 제치고 제조업 경쟁력 순위 1위 자리를 회복한다.

‘제조업 부흥전략’을 승계한 트럼프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자동차와 철강은 협상카드로 내민 첫 번째 카드일뿐, 미국이 갖고 있는 모든 카드가 아니다. 아마도 재협상이 시작되면 전자, 석유, 화학 등 제조업 전분야를 협상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한미FTA 발효와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 증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한미 양국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FTA협정에 따라 자동차 제로관세가 시작된 지난해 1월 이후 한국 자동차의 대미 수출액은 160억달러를 기록, 전년대비 10.5% 줄었다. 반면 2016년 미국산 자동차 수입은 6만99대로 전년대비 22.4% 성장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올해 1∼5월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65억11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억100만달러(8.5%) 줄었다.

철강의 경우에는 미국의 비관세장벽 남용에 따라 사정이 더 나쁘다. 무역협회의 같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5월 한국산 철강의 미국 수출액은 4억2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30.3% 감소했다. 트럼프정부는 ‘한국을 통한 중국의 덤핑수출’을 거론하지만, 미국기업 또한 중국산 철강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덤핑 주장은 궤변일 뿐이다.

실제 재협상이 시작되면 양국간 교역되는 구체적인 품목 등 자료가 공개되고, 주장의 타당성이 검증될 수밖에 없음에도 미국이 이처럼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세계교역시장에서 가진 우월적 지위를 악용해 ‘갑질’을 하자는 것이고, 이같은 전략이 특히 최근까지 한국정부에 먹혔기 때문이다. 2007년 추가협상이 그랬고, 2009년 재협상도 같은 결과였다.

국민경제를 고민하기 앞서 미국정부의 심기를 우선 고려함으로써 얻었던 대가가 ‘혈맹’의 지위라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국민경제보다 한미간의 관계에서의 ‘혈맹’ 지위를 우선시 한다면, 조만간 개시될 재협상의 결과는 2009년 재협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당시에는 자동차에 국한해 양보했지만, 지금은 제조업 전반에 대한 더 큰 손해로 귀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미FTA 재협상과 관련 지금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수세적 부분적’인게 아닌, ‘공세적이고 전면적’인 대응책이다. 미국의 한반도 사드배치로 인해 한국기업과 한국경제는 지금도 중국의 경제보복을 받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다. 이게 ‘혈맹’인 미국이 한국정부와 한국기업을 대하는 태도다.

이제 할말은 해야 한다.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한미 FTA 5주년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15년 기준 미국의 대한(對韓) 서비스무역수지 흑자액만 141억달러로, 2016년 기준 한국의 대미 상품수지 흑자액(232억5000만달러)의 절반에 달한다. 상품거래를 제외한 서비스거래의 한미간 무역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미국은 2007년 FTA 협상 당시 약속한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 배정을 아직까지 미루고 있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싱가포르와 호주가 받은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는 각각 5000개와 1만5000개다. 잊을만하면 반복되는 미국의 반덤핑 관세 판정, 개성공단 제품에 대한 국내산 불인정, 외환은행을 등치고 도망간 론스타와의 5조원대 소송을 초래한 투자자제소협정(ISD) 개정, 소고기 수입에 따라 사실상 파탄상태에 이른 축산농가를 포함 농업 적자 등은 모두 미국이 답을 줘야 하는 것들이다. 이외 한미 FTA로 인해 바뀐 한국사회 법체계, 예컨대 철도발전기본법을 개정해 민영화 문을 열어준 것, FTA 기준에 따라 대형차에 유리하게 개편된 자동차세법 개정 등도 원상회복해야 한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사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고 일갈했다. ‘혈맹’을 이유로 모든 것을 퍼주는 사대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다. 지금 정부에게 필요한 것은 주권국가로서 존엄을 세우는 것이고, 문 특보가 그 시작을 알렸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가 한미간의 협상에서 국가자존의 자주권을 세우고 지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