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지주회사, 설립요건 강화로 정상화해야

프린트

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기형적 지주회사, 설립요건 강화로 정상화해야 경제력집중도 해소하지 못하고, 지배주주의 지배력만 강화하고 있다

기사입력2017-08-01 20:26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 4월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롯데쇼핑과 롯데제과는 롯데그룹 계열사들과 각각 63개와 54개의 순환출자고리를 가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정보포털에 따르면, 롯데그룹 90개 계열사는 67개의 순환출자고리를 매개로 얽히고 설켜있다(2015년말 기준). 순환출자 해소와 함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롯데그룹은 지난 4월26일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 롯데푸드 등 4개계열사 이사회를 열고 기업분할과 분할합병을 결의했다.

순환출자에 따른 문어발식 확장과 경제력 집중, 복잡한 출자구조로 인한 지배구조 불투명성을 해소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안중 하나가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이다. 하지만 지주회사체제로 전환된 경우에도 순환출자에 따른 문제점을 상당부분 가져가는 현행 지주회사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순환출자(회사)와 지주회사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출자자금이 순환하느냐, 아니면 최종단계에 머물고 있느냐로 판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주회사의 경우에는 자본금 100억원을 가진 지주회사 A가 자회사인 B에게 100억원을 출자하고, 이어 B사가 출자받은 100억원중 30억원을 손자회사인 C에게 출자한다. 이 경우 지주회사체제에서는 손자회사 C는 출자받은 30억원을 내부에 보유해야 한다. 반면 순환출자(회사)체제에서는 말 그대로 출자받은 자금을 다시 순환시킨다. 앞의 사례에서 C사가 B사로부터 출자받은 30억원을 다시 A사에 출자할 수 있다.

순환출자를 통해 장부상 자본금은 늘리고, 규모도 키워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순환출자 방식에서는 A사에서 B사, C사를 거친 돈은 실제로는 100억원이지만, A사는 회계장부에 자본금을 110억원으로 기록한다. C사가 A사에 출자한 10억원이 더해짐으로써 A사는 원래 보유했던 자본금보다 많은 가공의 자본을 확보할 수 있다. 순환출자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런 순환출자의 고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계열사의 장부상 자본금은 실제 자본금보다 큰 폭으로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롯데쇼핑과 롯데제과가 각각 계열사와 연결한 순환출자고리중 50개를 상호 공유하고 있다. 또 롯데칠성과 롯데푸드가 각각 갖고 있는 30개와 27개 순환출자고리 대부분은 롯데쇼핑과 롯데제과와 겹친다. 돌고 도는 자금 속에서 얼마나 부풀리기가 이뤄졌는지 알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이중 한 고리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연관된 고리의 모든 회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건 이런 순환출자의 특성과 관계가 깊다.

법률사무소 ‘휴먼’의 김종보 변호사는 중기이코노미와의 통화에서 “순환출자를 통해 가공자본이 형성되고, 기업집단의 자금담보력이 약화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원래 상호출자를 통해 총수일가 지배력을 강화했던 관행을 방지하니, 단계를 늘려 순환의 과정을 거치기 시작했다. 과거 규제가 없던 시절부터 우리나라 재벌그룹들이 이를 활용해 규모를 키워왔다”고 설명했다.

지배주주 지배력 강화, 일감몰아주기 통해 주주가치 훼손

이렇게 돌고 돈 자금은 회계상 자본금을 늘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공의 자본이 형성돼 이를 회계장부에 반영하면 은행으로부터 융자를 받는데 유리해지거나, 자본금의 양을 늘려 발행할 수 있는 주식한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앞서 A사는 실제자본금인 100억원이 아닌 회계장부 상 110억원에 해당하는 한도까지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회계상 착시로 인한 위험이 은행이나 주주들에게까지 전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순환출자는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강화하는데도 이용된다. A사가 주식을 발행한다면, 늘어난 주식만큼 경영권을 다른 주주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고, 경영권 집중이 다소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C사가 출자받은 자금으로 A사의 주식을 산다면 결과적으로 A사는 순환출자를 통해 추가 자금의 투입없이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강화할 수 있다. 반면 지배주주를 제외한 여타 주주들의 의결권은 축소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순환출자체제에서는 지배주주 이익을 위한 계열사간 부당지원이나 빼돌림현상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 지배주주의 지분이 작은 회사의 자본을 지배주주 지분이 많은 회사로 이전시킬 수도 있다. 앞서 C사가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A사에게 필요이상의 수익을 제공한다면, A사 지배주주의 부는 증가하는 반면 C사의 소액주주들이나 기관투자자의 주주가치는 훼손된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없이 지배구조 개선 힘들어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현재 국내에서는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시 주식처분명령이나 과징금부과, 의결권 행사금지처분의 대상이 된다. 다만 ▲회사의 합병·분할 등 사업구조개편으로 인한 경우에는 6개월 ▲담보권 실행 등 기업의 권리행사로 인한 경우에는 6개월에서 1년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한 경우에는 3년의 유예기간내에 신규 순환출자지분을 해소해야 하다.

그러나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공시의무만 부과하고 있다. 기존 순환출자지분이 여전히 재벌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신규 순환출자뿐만 아니라 기존 순환출자 또한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는 이유다. 기업집단정보포털에 따르면 2017년기준 순환출자 고리는 8개그룹사에서 94개다.

20대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신규 순환출자를 제한하는 유사한 수준에서 규제하고 있다.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 3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이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시정조치와 과징금 부과, 해당주식 전부에 대한 의결권 행사 중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 등의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와관련 김 변호사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순환출자 구조에 있어 규모가 좀 크지만, 삼성이나 SK, LG,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지분율은 그다지 크지 않다”며 “기업입장에서 3년이란 유예기간이 부족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순환출자 해소에 있어 굳이 이들 기업의 입장을 들어줄 필요성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24개주에서는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규제하고 있다. A사가 B사에 대해 직간접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B사는 직간접으로 보유한 A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상호출자를 통한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사한 방식을 도입할 경우 현재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현실을 고려해 의결권 제한 기준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모회사의 자회사 출자지분이 50%를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국의 경우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대신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총수일가가 일본 광윤사와 롯데홀딩스 등을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지만, 총수일가의 지분은 7.1% 밖에 되지 않는다.

지주사 요건 완화, 기형적 지주사제도로 변질

무엇보다 복잡한 출자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엄격한 행위제한을 조건으로 한 지주회사제도를 손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07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지주회사 요건중 부채비율을 기존 100%에서 200%로 상향함으로써 지주회사 설립요건을 완화했다. 또 상장·비상장 지분보유율을 각각 30·50%에서 20·40%로 하향함으로써 지주회사 전환에 따른 필요자금도 줄여줬다. 이외 손자회사 사업관련성 요건 폐지 및 증손자회사 허용(지분율 100% 전제) 등 행위제한 요건마저 풀어 지주회사가 더 많은 계열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지주회사 설립 요건을 계속 완화함으로써 지주회사체제 하에서도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지 못하는 기형적인 지주회사제도로 변질됐다.

김 변호사는 “한진그룹의 경우, 지주회사체제이지만 한진해운이 흔들리면서 그룹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주회사체제 또한 자회사에 따라 그룹이 좌지우지되는 문제점은 있다”면서도 “순환출자의 수평적 구조보다는 지주회사의 수직적 구조가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때 지주회사체제를 허용한 이후 재벌들이 계열사를 신설하기 어렵다고 호소해 점점 요건을 완화했고, 이제는 손자회사까지도 지주회사로 가능하다. 책임을 질 수 있는 범위까지만 허용해야 하는데, 오너리스크에 따라 그룹내 계열사는 물론 협력업체와 근로자들까지 어려워지고 국민세금을 투입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