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려 했다면, 공익재단 만들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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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기부하려 했다면, 공익재단 만들 필요가 없다” 기부 생색, 계열사 경영권 확보…현대차 지주사 전환과 정몽구재단

기사입력2017-09-08 13:06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한국사회 재벌그룹에 속한 공익재단은 외관상 공익사업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재벌총수가 특정인에게 자신의 부(富) 뿐만 아니라 경영권까지 넘겨줄 수 있는 ‘요술방망이’ 역할을 한다.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을 동원해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이재용 부회장도 있지만,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도 다르지 않다.

500억원 비자금 횡령 적발되자 1조원 사재출연 약속

정 회장은 지난 2006년 현대글로비스 비자금 사건 직후,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해 1조원을 사재출연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비자금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정 회장은 자신의 장남 정의선 부회장과 공모해 후계구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기아자동차 계열사와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등을 이용해 500억원대 횡령배임 범죄를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정 회장은 2008년 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조원 사재출연 약속은 정 회장과 공범이었던 아들의 기소유예 처분과 무관하지 않았고, 자신 또한 ‘3·5법칙(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적용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정 회장이 사재를 털어 출연한 돈의 최종목적지는 어디인가? 정 회장은 2011년까지 자신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6500억원을, 2013년 이노션 지분 20% 등 총 8500억원을 현대차 정몽구재단 설립을 위한 출연금 형태로 기부했다. 당시 출연금이 개인재산이고 최대 규모란 점에서 ‘통큰 기부’란 얘기도 많았지만, 공익재단 기부방식을 취함으로써 편법 상속 또는 증여라는 비판도 나왔다.

<그래픽=김성화 기자> ©중기이코노미

현대차 순환출자 해소 과제…최소 4조원, 최대 6조원

정 회장의 재단설립은 현대차그룹의 숙원사업인 ‘순환출자 해소’라는 과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내정자였던 당시 “현재 국내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구조 문제는 현대차그룹에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 8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순환출자구조 등 현대차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를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 그룹측과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발언과 같이 현대차가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다면, 공익재단에 정 회장이 ‘저금’했던 지분은 ‘요술방망이’가 될 수 있다. 정몽구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지주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정몽구재단을 정의선 부회장에게 물려줌으로써, 공익재단을 통해 현대차그룹 경영권 그리고 재산까지 상속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지난 6월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현대차 지분 20.8%, 현대차는 기아차 지분 33.8%,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9%를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 6.9%와 현대차 지분 5.1%,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차 지분 2.3%, 기아차 지분 1.7%를 갖고 있다.

재계 등의 분석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현대차 또는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지주회사제체로 개편하는 경우,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필요한 자금은 적게는 4조원에서 많게는 6조원에 이른다. 만약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세울 경우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16.9%)을 정리해야 한다. 실제 7일 오후 5시기준 현대모비스 시가총액은 22조9732억원으로 기아차가 보유한 모비스지분(16.9%)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대략 3조8000억원이 필요하다. 또 같은 기준으로 현대차를 지주회사로 정하는 경우에는 현대모비스 보유지분(20.8%)을 정리하기 위해 6조3000억원이 필요하다.

문제는 현대차를 지주사로 세우든,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하든, 정 회장 부자가 보유한 양사의 지분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정 회장 부자의 현대차 지분은 7.4%, 현대모비스 지분은 6.9%다. 정 회장 부자는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도 경영권 안정을 위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지분율을 최대로 끌어모아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이 숙제를 풀어줄 수 있는 키가 현대글로비스일 수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배구조에 특별한 변동이 없는 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자금이 나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업은 현대글로비스다.<사진=뉴시스>

지주사 전환 키 ‘현대글로비스’…돈 만들고 지분율 높이고

현대차그룹 계열사 지배구조에 특별한 변동이 없는 한 순환출자 해소를 위한 자금이 나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업은 현대글로비스다. 지난 6월 현대글로비스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정 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 지분 23.2%를 보유하고 있으며, 정 회장의 지분 6.71%를 합하면 정 회장 부자의 지분은 29.99%에 이른다. 현대차 또는 현대모비스를 지주사로 전환한다면, 정 회장 부자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지주사에 출자하는 방식 등을 통해서 순환출자 해소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현대차 또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 회장 부자의 지분율도 끌어올려 경영권도 강화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지난 2015년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기준(30%)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 정 회장 부자는 보유했던 지분(43.39%)의 일부를 매각해 ‘30% 기준’에 살짝 못미치는 29.99%를 계속 유지해 여론의 비난을 자초했다. 정 회장 부자가 욕을 먹으면서까지 최대한의 지분을 붙잡고자 한 이유가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하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다.

“재단 출자, 지배권 유지하고 기부 생색도 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주회사 전환과정은 물론이고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정몽구재단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재단의 사실상 주인인 정몽구 회장이 재단의 지배권을 정 부회장에게 넘기는 경우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피할 수 있다. 정몽구재단이 소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공익재단 설립을 통한 정 회장의 ‘통큰 기부’가 온전한 기부로 평가받지 못했던 이유다.

법률사무소 ‘휴먼’의 김종보 변호사는 “분명한건 주식은 자기 소유로 있는 것이 낫다. 하지만 재단에 출자함으로써 지배권은 유지시키고, 기부라는 이름으로 생색도 낼 수 있다”며 “누가 정몽구 회장의 지분을 받든, 잘 받아서 잘 쓰면 될 것이다. 공익재단은 상속세 탈루의 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오너일가가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는게 너무 편하다. 재단 이사회만 장악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말 기부를 하려 했다면, 굳이 없는 재단을 만들어서 할 필요없이 다른 곳에 기부를 하던지 신탁을 하는게 사회환원 차원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