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상고심, 전관예우와 대법관의 법과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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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이재용 상고심, 전관예우와 대법관의 법과 양심 전원합의체 심리 판결해야…국민 눈높이 맞는 최고법원 바로 세우길

기사입력2018-03-05 18:31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대법관 퇴임자는 변호사 개업으로 사익을 취해선 안된다.”

2014년 3월 대법관직을 퇴임한 차한성 변호사가 당시 법무법인 태평양의 공익재단법인 동천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15년 7월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같은 기사에서 그는 “공익활동까지 싸잡아서 대법관 출신은 변호사 개업하면 안된다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했지만, “전관예우를 받는다는 오해가 사라지기 전까지 몇년이라도 사건을 맡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관예우에 따른 폐단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던 그 시점에 ‘전관예우’가 ‘오해’라고 말했던 이가 차 전 대법관이다. 현실 공감능력이 이 정도니, 그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공범인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상고심 사건의 변호인을 자임한건 당연한 귀결이다. 더욱이 자신의 입으로 했던 “몇년이라도 사건을 맡지 않을 것”이란 금제까지 풀렸으니, 대놓고 돈벌겠다걸 누가 말릴 수 있겠나.

이와관련 지난 3일 대한변호사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차 변호사는 대법관을 마치고 변호사 개업을 할 당시 공익활동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힌바 있다”며 “차 변호사가 당시의 약속을 지키고 전관예우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 부회장의 형사사건에서 사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비판했다. 또 “차 변호사의 이번 형사사건 수임은 전관예우 논란을 야기하고 국민들의 사법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하다”며 “벌써부터 언론에는 차 변호사와 이 부회장 재판부의 친소관계를 언급하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직 대법관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대한변협의 비판지점은 차 변호사의 도덕성에 맞춰져 있고, 양식있는 대다수 언론의 지적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대법관이 갖는 명예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마저도 돈과 맞바꾸려는 천박한 처세술은 변명의 여지없이 비난받아 마땅하다.

상고심에서 차 변호사가 할 수 있는 변호전략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에게 준 금전은 뇌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항변뿐이다. 또 뇌물에 해당되는 경우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협박’이 무서워 뇌물성 금전을 제공한 피해자 코스프레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우리사회의 고질병인 전관예우 관행을 오해로 치부하는 감성의 소유자라해도, 자신의 항변이 국민정서에 반하는 차원을 넘어 파렴치한 억지임을 차 변호사 스스로 잘 안다.

그럼에도 삼성의 사실상 총수인 이 부회장이 던진 사탕을 거절하기엔, 그 사탕의 당도가 너무 강력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법관 지위에 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사리분별력을 믿는 이들이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상고심 사건에서 변호인 사임을 촉구하는 대한변협의 성명서도 그렇고, 대다수 언론이 제기하는 비판 또한 차 변호사의 ‘양심’이 존재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전직 대법관에게 변호를 의뢰한 이 부회장은, 자신의 행위가 국민정서상 납득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단언하지만, 이 부회장 본인도 차 변호사를 선임함으로써 쏟아질 수밖에 없는 비난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직 대법관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이유는 경험칙상 ‘전관예우’ 관행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아서다. 또 사법부에 대한 국민신뢰를 훼손시켰다는 사실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난을 외면함으로써 삼성 총수일가가 지금까지 누렸던 대가가 너무 달콤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4조5000억원 규모의 이건희 회장의 ‘비자금’ 사건은 최근에도 차명계좌가 발견되고, 금융당국이 과징금 및 세금 부과 여부를 검토하는 등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조준웅 특검의 기소와 대법원의 최종판결로 종결처리된 이 사건이,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이 회장의 비자금 사건은 2009년 대법원 최종판결로 이 회장은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재판에서 이 회장은 조세포탈 범죄에 대한 벌금으로 1100억원을 납부하고, 그 ‘대가’로 4조5000억원의 차명재산을 상속재산으로 인정받았다. 비자금의 출처를 찾아 횡령죄로 단죄하라는 국민적 요구를 배신하고, 특검과 법원이 공모해 이 회장의 비자금에 면죄부를 준 셈이다.

전직 대법관 출신 차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선임된 이 부회장 상고심 사건에서 ‘전관예우’ 관행이 작동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차 변호사가 자신이 가진 모든 법지식과 법조인맥을 동원해 최상의 변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재판결과를 통해 심리에 참여하는 대법관 13명 각각이 가진 ‘법과 양심’의 무게를 확인하고, 향후 사법부 개혁을 위한 시금석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이 부회장에 대한 상고심 사건은 대법원 소부가 아닌 전원합의체를 통해 심리 판결해 주기를 기대한다. 대법원 스스로 사법부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최고법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