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최저임금 갈등 해결하라

프린트

오피니언 ㅣ 사설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최저임금 갈등 해결하라 ‘신고리 공론화위원회’ 처럼 시민사회 참여한 사회적 합의로 결정

기사입력2018-03-08 16:48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 등 최저임금 제도개선 협상이 노사간 이견으로 결렬됐다. 최저임금위원회는 “(6일) 제도개선소위원회를 개최해 장시간 논의했으나 합의도출에 실패했다”며 “그간의 제도개선 논의결과를 정부에 이송할 계획”이라고 7일 밝혔다. 이에따라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상여금·제수당의 최저임금 포함여부에 대한 결정권은 정부와 국회로 넘어갔다.

최저임금 인상 또는 동결 그 자체를 ‘제로섬’으로 사고하도록 ‘강제’하는 불공정한 산업생태계, 그에따라 물러설 여지조차 적었던 노사간 입장을 고려한다면 예견된 수순이다. 좀더 빠른 시기에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노사가 이런저런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던 노·사·공익위원들의 인내를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쪽엔 의무를 부담시키고 다른 한쪽엔 권리를 보장하기에, 최저임금은 선택과 결단의 문제라는 측면이 강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의무부담이 가중되는 사용자에 대한 보전조치를 위해서도 정부개입은 불가피하다. 또 적정임금을 통해 근로자에게 헌법상 기본권인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주려는 노력 또한 정부의 책무다.

그래서 제안한다. 최저임금의 목적과 기능, 그리고 적정수준 등에 대한 ‘사회적합의’를 위해 노사 당사자를 포함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할 공론의 장을 열어라. 최저임금위원회가 공을 정부와 국회에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정부 또는 국회가 독단적으로 결정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선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 고시할 때마다 반복되는 노사 갈등과 논란이 반복되고 사회적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기업과 가계, 한국경제 양대 축이 시장에서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는 근로자에 대한 적정수준의 임금 보장이다. 그 밑바탕에 최저임금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합리와 공정’의 범주 내에서 최저임금이 정해질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구체적인 방식까지 다소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에겐 ‘신고리 공론화위원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경험이 있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을 중단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진행할 것인가’라는 사회적 갈등을 숙의민주주의로 해결했다. 건설 중단을 공약한 대통령도, 환경론자를 포함한 대다수 시민사회단체 역시 공론화위원회의 공사재개 결정을 수용했다. 자신의 신념만을 고집해 얻는 ‘득’보다, 다수결원칙에 반대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실’이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작동한 결과다.

중기이코노미는 최저임금의 목적과 기능, 그리고 적정수준 등에 대한 ‘사회적합의’를 위해 노사 당사자를 포함 시민사회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할 공론의 장을 열 것을 제안한다. 사진은 지난 2월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3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사진=뉴시스>

최저임금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근로자와 기업(사용자)이지만, 최저임금 결정에 따른 여파는 한국사회 경제주체 모두에게 미친다. 종업원을 1명도 고용하지 않는 자영업자도, 소비주체인 근로자 호주머니 사정에 따라 웃고 울 수밖에 없는게 시장구조다. 이외에도 최저임금 결정에 노사 당사자이외 시민사회가 참여할 명분은 많다. 특히 노사간 입장이 상반되기까지한 최저임금에, 불편부당한 중재자로서 시민사회 개입은 결정된 최저임금액에 공정성을 더해 주는 효과도 있다.

최저임금 공론화 테이블 구성에 앞서 노사 양측 그리고 정부에 당부한다. 상대에게 요구하기 전에 노사 모두 자신이 내려놓을게 뭔지, 먼저 고민하길 바란다. 수십년이상 누적됐고, 나름 근거도 있는 노사간 불신을 한순간에 거두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헌법상 보장된 단결권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미조직노동자가 10명중 9명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 달란 말이다.

특히 사용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기업의 덩치가 커졌음에도, 종업원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재벌대기업과 일부 여력있는 기업들 얘기라며,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 해서는 건설적인 토론도 안되고 문제해결은 더더욱 요원하다. 설사 해당사업장에서 그 말이 진실인 경우에도, 우리사회 각종 지표가 보여주는 근로자 삶의 질이 계속해서 악화되는 현실, 그 추세만은 인정해야 한다.

정부에게 당부한다. 시민사회가 적정 수준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기업이 얼마만큼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내고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또 총매출액이 종업원과 주주, 협력업체 등의 이해관계자에게 적정하게 분배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 또한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시민사회가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 합리적인 선에서 중재안을 낼 수 있다.

지불여력이 충분한 기업엔 세금을 부과하고, 여력이 부족한 기업엔 정부가 지원하는 중재안만이 해마다 반복되는 최저임금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 시민사회가 신고리 5·6호기 난제를 숙의민주주의를 통해 해결했듯이, 최저임금 갈등 역시 여건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민사회가 해결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