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엠사태…비정규직 고용안정은 안중에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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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지엠사태…비정규직 고용안정은 안중에도 없나 법원, 한국지엠의 사용자성 인정…정규직노조, 함께 풀어가야 한다

기사입력2018-03-29 18:37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금 한국지엠 사태로 온 나라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고, 특히 지엠과 관련되어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의 희망퇴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에서 거의 유령취급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지난 20일 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부평·창원 비정규직지회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그 사람들은 바로 한국지엠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을 ‘유령’에 비유한 이정미 대표의 지적은 뼈아프다. 시민사회가 사회적 약자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기대만큼 비정규직에게 힘이 되지 못한 현실을 새삼 확인한 것 같아 서글프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지회는 호소문을 통해 “언론에선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존권이 위기에 놓였다고 매일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기사에서 비정규직을 찾아보긴 어렵다. 군산, 부평, 창원에 2500명가량의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고, 이들이 더 큰 불안을 겪고 있음에도 그림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고용불안으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실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호소했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금속노조 전북지부 한국지엠 군산비정규직지회가 한국GM 비정규직 문제해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당장 나흘 뒤 4월1일이면, 군산공장 안에서 일했던 협력업체 소속 비정규직 200명이 공장에서 쫓겨난다. 지난 2월26일 협력업체가 “2018년 3월31일 부로 도급사인 한국지엠과 도급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며 이들에게 해고예고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엔 부평공장 비정규직 60여명이 해고됐고, 올해 1월에는 창원공장에서 비정규직 142명이 해고통보를 받았다.

지엠차에 왼쪽 바퀴를 부착하면서 비정규직이란 이유만으로, 오른쪽 바퀴를 담당한 정규직의 절반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면서까지 생산라인을 지켰던 이들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차가 안팔린다며 사람을 해고하면서, 비정규직 밥숟가락을 먼저 빼앗았다. 한국지엠이 잘나갈 때 이들을 헐값으로 사용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보상은 고사하고, ‘간접고용’이란 외피를 핑계로 비정규직에게만 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한 셈이다.

협력업체 소속이란 외관을 이유로 군산, 부평, 창원에서 잇따라 발생한 비정규직 해고사태에 ‘나몰라라’ 하는 한국지엠에 따져봐야 할 구석이 많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 폐쇄방침을 밝힌 지난달 13일, 법원은 군산·부평 공장 협력업체 비정규직 53명(군산 8명, 부평 45명)의 신분이 한국지엠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법원이 한국지엠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이유는 이들 비정규직이 협력업체 직원임에도, 실제로는 한국지엠이 직접 일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정은 창원공장도 다르지 않다. 지난 2013년 2월 대법원은 형사사건에서 창원공장 전체 공정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또 2016년 민사소송에서 대법원은 창원공장 비정규직 5명을 한국지엠이 직접고용하라고 판결했다. 이외 창원공장 비정규직 183명도 한국지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소해 판결을 앞두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가 29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지엠자본 규탄 및 산업은행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는 “산은이 부도 운운하며 노조를 협박하는 제너럴모터스(GM)을 거들며 단체교섭까지 개입하고 있다”면서 “실사는 뒷전이고 오히려 단체교섭을 배후조종하고 있는 이동걸 회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사진=뉴시스>

군산·부평·창원 공장 2500여명 비정규직의 생존권은 정규직과 동일하게 보장돼야 한다. 지난 촛불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군산·부평·창원 공장 비정규직은 그 약속을 믿고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다. 노동존중 사회에선 비정규직을 이유로 한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하고, 정규직이기에 받는 특혜 또한 있어서도 안된다. 비정규직이 노동존중 공약을 신뢰하고 대통령을 선택했듯이, 대통령이 이제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선택할 차례다.

헌법상 평등이념이 노동현장에 살아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헌법정신 또는 정의구현 차원이 아니더라도, 군산·부평·창원 공장 비정규직의 법적권리를 보장해 주는게 국가의 의무다. 법원도 이들 비정규직의 진짜 사용자는 정규직과 동일하게 한국지엠이라고 했다. 이정미 대표가 정부에 대해 ‘한국지엠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그래서 정당하다.

한국지엠이 회생을 위해 어떤 경로를 밟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확실한 것은 한국지엠과 글로벌지엠만의 결정으로 한국지엠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와 직접 이해당사자인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가 어우러진 책임있는 결정만이 한국지엠의 생존 가능성을 크게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포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고통분담 역시 노사정 모두 함께 나눠야 한다. 고용보장도 그렇지만 고통분담 역시 정규직·비정규직간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우라고 믿고 싶지만, 군산·부평·창원 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좋지 않았던 기억이 생각나 정규직노조에 당부한다. 정규직 조합원의 ‘당연한’ 그러나 ‘잘못된’ 요구를 수용해, 비정규직의 업무를 정규직으로 대체하자는 사용자 유혹을 단호하게 뿌리쳐야 한다. 가뜩이나 덧씌워진 ‘귀족노조’ 프레임에 발목 잡힌 노조운동의 강화·확대를 위해서다. 또 그리해선 정규직노조 스스로 국민들로부터 고립되면서 정규직 조합원의 생존권조차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고용불안으로 신음하는 비정규직 호소를 가슴으로 듣고, 이들의 문제를 함께 제기하고, 함께 풀어가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