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더 외로운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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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더 외로운 5월 ‘송파 세 모녀법’만 제대로 만들었어도 ‘증평 모녀 사건’ 막을 수 있었다

기사입력2018-05-02 10:54

김준모 객원 기자 (gubtree@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5월입니다.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요. 어린이날(5월5일)과 어버이날(5월8일), 그리고 비교적 최근(2007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된 부부의 날(5월21일)까지. 5월에는 가족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기념일들이 모여 있어, 5월을 지내는 동안 누구라도 한번쯤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부부가 결혼해 아들, 딸, 손자, 손녀 등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지는 가족이라는 인연은 그 어떤 인연보다 끈끈하고 가까운 관계로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을 잃는 것을 가장 큰 슬픔으로 느끼고, 가족과 만날 수 없는 사람의 외로움에 공감합니다.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족의 해체와 가족관계의 단절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다뤄지기도 합니다.

얼마 전, 충북 증평에서 40대 여성이 세 살배기 딸을 숨지게 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사건이 언론보도로 알려졌습니다. ‘증평 모녀 사건’을 접한 많은 이들은, 남편이 자살한데 이어 친정어머니까지 지병으로 잇달아 숨진 상황에서 채무에 시달리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연에 안타까워했습니다. 게다가 사망한지 두 달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고 하니 안타까움은 더했습니다.

그런데 경찰 조사결과 새롭게 밝혀지고 있는 내막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언니의 전화를 받고 찾아간 동생이 숨져있는 조카를 발견했고, 독극물을 삼켰다는 언니의 말을 듣고서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언니 소유의 차를 팔아 돈을 챙겨 해외로 도주했고, 사망한 언니 명의로 개통한 핸드폰까지 해외에서 처분했다는 비정한 동생의 이야기에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증평 모녀 사건’을 계기로 4년도 더 지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에서 60대 어머니와 30대 두 딸이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큰딸의 만성질환과 어머니의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전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겨두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사건이지요.

‘송파 세 모녀’가 부양의무자 조건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도개선 논의가 활발해지기도 했습니다. 소위 ‘세 모녀 법’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부양의무 조건을 완화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요. 하지만 개정된 법을 적용해도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조건이면 여전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가 되지 못해, ‘세 모녀를 살리지 못하는 세 모녀 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의 주된 업무는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몸이 불편한 노인과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입니다. 우리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분들 중에는 독거노인과 혼자 생활하는 환자도 많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그렇다보니, 종종 가족도 없이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분들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병든 몸으로 힘겹게 혼자 생활하시다, 이 생에서의 마지막 시간까지 혼자 맞으신 분들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대부분 어디에선가 가족이 나타나더군요. 장례를 치르기 위해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오랜 세월동안 연락을 끊은 고인의 자녀나 형제, 멀게는 조카라도 가족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연락이 닿은 고인의 ‘가족’ 중에는 “나는 모르는 일이니 장례도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도 “그러시면 고인이 남기신 재산은 처분하여 국가로 귀속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안내하면 장례를 치르러 나타나시더군요. 궁핍하게 사시던 분들도 월세 보증금 같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재산은 있었으니, 고인의 주변을 정리하고 나면 얼마간의 재산이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돌아가신 다음에야 왕래해온 가족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거의 모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의 가족입니다. 혹시라도 사실이 알려지면 고인이 생전에 받고 있던 정부지원이 끊어질까봐, 몰래 왕래하며 얼마 안 되는 도움이라도 드리던 가족들이지요.

함께 살면서 돌보지 못하는 사정이 있고,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형편도 되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인연을 끊고 살지는 않은 가족들도 있습니다. 고인이 더 이상 정부지원을 받을 필요가 없는 때가 되어서야, 돌아가신 다음에야 안심하고 나서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런 가족들은 대부분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 부양의무자 기준에 못 미치지만, 제도를 잘 몰라서 혹은 혹시나 하는 걱정에서 부모형제를 돌보지 않는 매정한 가족 행세를 해온 셈입니다.

5월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 5월입니다. 화창한 날에 아이 손잡고, 부모님 모시고 나들이 가기 좋은 계절입니다.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지만 모든 가족이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이어지는 5월이라 더욱 외롭고 소외되는 이웃들이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기본적인 행복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해서, 또는 가족으로 인해 겪는 불행은 가장 근본적이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라고 한다면, 행복한 사회는 행복한 가족으로 지내는데 장애물이 없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가정의 달 5월에 행복한 사회의 조건을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