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선 보유세개편안, 근본부터 바로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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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거꾸로 선 보유세개편안, 근본부터 바로 세워야 과표기준 공시가격이 불공정한데, 세율을 조정한다고 공정해지나?

기사입력2018-06-25 17:36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과세형평성 및 효율성 제고, 경제적 불평등 해소 차원에서 자산 관련세부담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최병호 부산대 교수(조세소위원장)가 지난 22일 부동산세제 개편안을 공개하면서 밝힌 세제개편 배경이다. 이 말 속에 담긴 단어 하나하나에는 극단적인 양극화로 신음하는 한국사회를 치유할 해법이 담겼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그랜드홀에서 열린 ‘바람직한 부동산 세제 개혁 방안’ 토론회에서 강병구(왼쪽)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최병호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이 최승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부동산 보유세의 현황과 쟁점’ 주제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결론부터 말하면, 재정특위 이름으로 공개한 부동산세제 개편안을 즉시 폐기하고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한다. 개편안으로 나온 4개안에서 보이는 것은 징수편의 효율성을 위해 납세저항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것 뿐이다. 4개안 각각 어느 구석에도 ‘과세형평성’을 고민했다는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무엇보다 개편안의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관련세부담 강화를 목표로 했음에도, 자산 불평등을 해소할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과세형평성 먼저 보자. 동일한 가치 부동산에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는게 과세형평성 제1원칙이다.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세율을 조정하는 방법은 부동산가격이 확정된 이후 세수상황을 고려해 결정해야 할 문제다. 토지 또는 주택·아파트 등 부동산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상가·주택·나대지 등 부동산용도에 따른 가격기준 또한 제각각이다. 세금을 부과할 기준 자체가 불합리한데,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세율을 조정해 과세형평성을 제고할 방법은 애시당초 없다.

이처럼 거꾸로 선 부동산 세제개편안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공정시장가액비율·세율 조정에 앞서 과표기준인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부동산 유형·용도에 맞는 합리적인 공시가격이 선행되지 않으면, 공정시장가액비율·세율을 건드려봐야 과세불공정은 해소할 수 없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 차원에서 자산 관련세부담 강화’를 말했다. 개편안 내용으로 판단하면, 차라리 이런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재정특위가 발표한 개편안 시나리오중 가장 ‘강력한’ 방안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매년 최대 10% 인상하고, 세율을 주택·토지 과표구간별 최대 1.0%p 인상하는 안이다.

34만여명에게 적용되는 이 방식을 통해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세수규모는 적게는 5711억에서 많게는 1조2952억원이다. 연간 최대 1조2952억원을 보유세로 걷어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한다고? 재정특위가 우리사회 양극화의 심각성을 알기나 하는지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보유세를 추가 부담하는 ‘땅·주택 부자’ 1명에게 평균 380만원을 부과해, 부동산이 더 이상 투기수단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보낸다고? 부동산투기로 인한 서민의 고통을 만분의 일이라도 공감했다면, 이런 개편안은 나올 수 없었다.

예금, 현찰을 제외한 자산소득에 한정해도 우리사회 불평등은 이미 감내할 수준을 넘었다. 세제개편안을 발표한 최병호 교수도 “2016년 기준으로 10년간 부동산 자산총액은 75.4% 상승한 반면, 종부세 세액은 오히려 11% 하락했다”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정부가 부동산 관련세금에 대한 조세권 행사를 포기했다는 얘기다. 그 결과 지난 2012년기준 개인토지의 경우 상위 1%가 전체의 절반(55.2%)을, 상위 10%가 전체의 97.6%를 소유했다. 법인토지는 사정이 더 나빠 상위 1% 법인이 전체의 77.0%를, 상위 10%가 전체의 93.8%를 보유했다.

극단적인 수준의 자산불평등에 계층간 소득불평등에 더해져, 우리사회가 ‘헬조선’이라 불리는건 당연한 귀결이다. 정규직의 절반도 안되는 비정규직의 임금, 대기업의 절반 수준을 맴도는 중소기업노동자의 임금, 남성에 비해 절반을 약간 상회하는 여성노동자의 임금, 최저임금을 자신의 최고임금으로 아는 저임금노동자 등. 관행화 일상화된 온갖 차별이 우리사회 99%의 희망을 빼앗았다. ‘흑수저’가 계층사다리를 타고, ‘금수저’는 고사하고 ‘동수저’에도 오를 수 없는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소득불평등을 개선한다고 정부가 최저임금 현실화를 추진했지만, 기득권의 저항에 갈지자를 걷는다. 자산불평등을 해소하겠다며 내논 부동산세제개편은 기득권의 저항조차 없을만큼 빈껍데기다. 이번 부동산세제개편안을 도대체 왜,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한다. 부동산 관련세금 과표기준인 공시가격을 실거래가에 근접하도록 먼저 조정해야 한다. 아파트의 경우 공시가격이 시세의 60~70%, 토지나 단독주택은 40~50%, 서울시내 대형건물이 30%대 머무는 이유를 먼저 설명해야 한다. 납세자에게 이 부분을 납득시키지 못하면, 과세형평성 논란과 함께 조세저항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세부담률 대폭 인상은 불가피하다. 2016년기준 0.16% 수준인 부동산보유세 실효세율 평균을 두배이상 올려야 한다. 그래봐야 0.32%로 OECD 13개국의 평균 실효세율 0.33%보다 0.1%p 낮다. 구조적인 저성장기조에서 돈을 풀 수 있는 주체는 정부뿐이고, 재정을 통한 총수요 창출을 위해서도 증세는 불가피하다.

부동산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축재하고 부를 대물림하는 사회는 ‘노동존중사회’를 요원하게 할 뿐이다. 대통령과 99%이상 흑수저가 꿈꾸는 ‘나라다운 나라’에서 불로소득은 존재해선 안된다. 불로소득 근절, 그 정책적 수단이 불로소득에 대한 징벌적 세금부과이고, 부동산세제 개편은 그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런 이유로 재정특위가 발표한 세제개편안, 근본부터 뒤집어 정부가 다시 설계할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