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조가(家)항공’, 그럴만한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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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대한항공=‘조가(家)항공’, 그럴만한 이유 있다 대한항공 명의를 도용하는건 ‘조양호’에게 부여된 권리가 아니다

기사입력2018-06-29 15:50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조양호 회장은 어제 검찰조사에 성실히 응했습니다. 조양호 회장은 차명으로 약국을 개설하거나 약사면허를 대여받아 운영한 바 없습니다.”

조양호 회장의 차명약국 운영 의혹과 관련 대한항공이 29일 기자들에게 보낸 이메일 해명자료에서 밝힌 내용이다. 앞서 조 회장은 28일 검찰에 출석해 약사법 위반혐의 등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대한항공의 해명은 차명으로 조 회장이 대형약국을 운영, 부당이익을 편취했다는 이른바 ‘사무장 약국’ 의혹에 대한 반박인 셈이다.

탈세 및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 남부지방검찰청으로 출석 중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조양호 회장은 약사와 이면계약을 통해,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이 소유한 건물에 약국공간을 제공하고 수익을 나눠가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약사법은 약사 자격증이 없으면 약국개설을 금지한다. 검찰은 2000년 약국개설 이후 조 회장이 챙긴 부당이득 규모가 10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보고 있다.

차명약국 의혹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니, 사실여부는 더 조사해봐야 알 일이다. 무죄추정을 원칙으로 하는 형사법상, 피의자 조 회장이 검찰수사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건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조 회장 개인이 해야 할 해명을, 대한항공이 ‘한진그룹 해명자료’란 이름으로 배포했다는 점이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이 자신 소유란 조 회장의 오만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 회장이 한진그룹과 대한항공 회장 직함을 가졌기에, 회사의 평판을 관리해야 한다는 대한항공의 항변 역시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은 약국을 업으로 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무장 약국 운영은 조 회장 개인범죄다.

법 앞에선 재벌기업 총수도 일반 개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개인이다. 재벌기업 총수라는 지위를 악용해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기업에게 대신 옹호하게 하는 건 기업의 사유화다. 더욱이 조 회장 일가의 대한항공 지분을 모두 합쳐도 11%에 불과할 뿐이다. 재벌총수라해도 90%가까운 지분을 가진 주주들의 이해에 반한 결정을 해서는 안된다.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이 조 회장 일가의 범죄를 대변한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세례 갑질에 대해 ‘가장(家長) 조양호’의 사과문을 대신 배포하기도 했다.

사무장 약국 의혹 이외에도 조 회장은 28일 검찰조사에서 상속세에 대한 조세포탈 혐의, 일감몰아주기와 통행세를 통해 횡령·배임했다는 의혹에 대해 추궁을 받았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땅콩회항’ 사건과 관련해 변호사 선임비용을 회삿돈으로 지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관련 최근 대한항공 법무팀 관계자가 검찰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들 부녀의 회삿돈 빼돌기 행태는 왜곡된 기업소유인식에 따른 결과다. 세간에서 대한항공을 ‘조가(家)항공’이라 부르는 데는, 그럴만한 근거와 이유가 있다.

조양호 일가는 검찰에 출석할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연신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조사에 충실히 임하겠다는 대사도 빼놓지 않았다. 카메라 앞에서 했던 사과가 변호사의 조언에 따른 연출인지, 진정어린 반성이었는지 묻지 않는다. 또 검찰조사에 충실히 임할지 여부 또한 조양호 일가에게 보장된 법적권리다. 거기까지다. 주주가 위임한 권한 내에서 대한항공을 경영하는 조 회장이, 자신의 범죄를 변명하기 위해 대한항공 명의를 도용하는건 ‘피의자 조양호’에게 부여된 권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