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공정경제야, 규제완화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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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문제는 공정경제야, 규제완화가 아니라고” ‘선 허용, 후 규제’, 정부 책임·의무를 시장·기업에 넘기겠다는 것

기사입력2018-08-23 18:14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기자가 기억하기론 역대 정부 모두 혁신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규제를 꼽았다. 친(親)기업 기치를 내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기업운영을 방해하는 규제를 ‘전봇대’에 비유했다. 창조경제를 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손톱 밑에 박힌 가시’를 빼야한다고 규제철폐를 줄기차게 외쳤다.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은 ‘붉은 깃발’을 인용하며 규제완화 의지를 밝혔다. 19세기 영국은 마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신산업인 자동차 속도를 시속 3km로 제한했다. 마차가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자동차산업 선두주자였던 영국이, 독일과 미국에 뒤쳐진 이유가 규제란 얘기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 3월 전 대통령 박근혜의 숙원사업이었던 규제프리존법과 유사한 지역특구법 개정안을 발의해 입법을 추진중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특구지역에 한해 기업이 제안한 신사업의 안정성을 30일이내 검증하고, 문제가 없으면 사업화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선 허용. 후 규제’ 방식으로, 규제가 작동하는 시점은 이미 문제가 발생한 이후다.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는 붉은 깃발은 시대착오적 규제이고, 전봇대이며 손톱 밑 가시다. 헌데 지금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규제혁신은 그 대상 자체가 불명확하다.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규제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국민의 생명·안전, 환경 보호를 위한 공익적 규제의 빗장을 열겠다고 한다. 성장을 막는 규제가 있다면, 공론화와 국회 입법절차를 거쳐 해당 법조항만 고치면 될 일이다.

일단 뭐든 할 수 있도록 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규제하겠다는 ‘선 허용, 후 규제’는 정부의 존재 목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짐작컨대 무능력·무계획에 동반되는 무책임한 정책이 반복되는 이유는 혁신성장의 실체도, 그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최근 열린 ‘규제혁신 법안에 대한 긴급좌담회’에서 “혁신성장 내용을 혁신해야 한다”며 “혁신성장에 대한 내용이 빈곤해서 허상에 그쳤던 창조경제의 시즌2로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혁신성장 내용을 혁신하면 어떤 정책이 제시돼야 할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김종보 변호사는 “하도급구조 해체가 혁신의 선결과제”라고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신생기업이 대기업 횡포에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공정경제시스템과 엄정한 법집행이 담보되면, 규제 유무와 강도에 따라 신규투자나 기술혁신이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구세력과 재벌대기업이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할 때마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한몸’이라고 강조한다. 지당한 얘기임에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경쟁력을 훼손하고,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공격에 속수무책을 당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소상공인의 혁신을 가능하게 해줄 경영여건 보장, 연결고리가 빠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 공존할 수 있는 핵심고리가 바로 공정경제다.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가 용인되고,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신생기업을 수탈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규제를 풀어도 혁신은 없다.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수탈구조를 포기하고, 재벌대기업이 스스로를 혁신할 동기 자체가 존재할리 만무하다. 중소기업 역시 혁신의 결과물을 가질 수 없기에 신제품을 개발할 이유가 없고, 주문생산 이외 혁신을 추구할 이유가 없다.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받은 중소기업과 재벌대기업 간 의도하지 않은 담합구조가, 우리사회 원하청구조를 수직종속적·수탈적 체계로 만들었다. 재벌개혁을 포함 경제민주화가 속도를 내 수평대등적·호혜적 원하청구조로 바꿔야만 재벌대기업의 혁신을 끌어낼 수 있다. 공정경제시스템을 구축해 자신이 개발한 신기술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그 수익을 스스로 처분할 수 있어야만 중소기업도 혁신할 유인이 생긴다. 그래서 말한다. “문제는 공정경제야, 바보야! 규제완화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