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노위’와 ‘사회적 대타협’을 포기할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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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경사노위’와 ‘사회적 대타협’을 포기할 셈인가? 정부, 최저임금·탄력근로제 일방적 개편 시도…당장 중단해야

기사입력2018-12-17 17:22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새로운 경제정책은 경제·사회의 수용성과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조화롭게 고려해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밝히고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도 함께 강구”할 것을 내각에 당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적극적으로 도모해주기를 바란다”는 덧붙이기도 했다.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2019년 경제정책방향 안건 보고를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고 난독증을 의심했다. 선후가 뒤바뀐 문장이고. 논리적으로 따지면 모순된 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스스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단축 문제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해 대화와 타협으로 풀자고 했다. ‘필요한 경우’란 단서를 달았지만, 보완조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사노위 참여자 모두가 안다.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더 늦추라는 지시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해 노동시간 단축에 반발하는 기업민원을 들어주라는 행정부 최고책임자의 명령이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개편과 관련해 경사노위는 아직 구체적인 협의조차 개시하지 않았다. 노사민정협의회를 확대 개편한 새로운 사회적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이제 막 출범했다. 경사노위 참여주체가 대화와 타협을 시작하려는 지금, 대통령의 한마디가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확대 개편 방향을 결정했다.

추론이 현실로 바뀌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청와대 확대경제회의 직후 정부가 발표한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는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주 52시간제 보완을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이 담겼다. 1월 중 최저임금법 정부개정안을 마련하고, 국회 논의를 거쳐 2월 중 법 개정을 완료한다.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 2020년 최저임금은 시장수용성·지불능력·경제영향 등을 고려해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2019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자리 수를 겨우 넘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한자리 수로 묶겠다는게 정부 속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방안을 확정하고 내년 2월중 입법을 완료하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1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위반 단속규정을 탄력근로제 입법이 완료될 때까지 유예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추진하면서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임금보전(과의) 균형(을) 도모’한다고 했다. 헌데 방점은 ‘기업의 근로시간 활용 유연성’ 강화에 맞춰져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따른 노동자의 건강권과 임금보전 방안에 대해, 정부가 지금까지 단 한번도 노동계 의견을 수렴한 바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경사노위가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확대 의제를 공식안건으로 채택도 하지 않았음에도 두가지 의제 모두 데드라인이 잡혔다. 그것도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대략적인 방안까지 확정됐다. 경사노위를 들러리 기구로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확대 개편안은 당장 폐기돼야 한다. 그리고 경사노위 주체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돼야 한다. 이 방법만이 경사노위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경사노위가 죽으면, 지금껏 그래왔듯 대기업과 자본 편중의 산업생태계 폐단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노동자와 중소기업노동자로 분절된 노동시장을 바로 잡을 수 없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간 격차가 더 벌어져 기업의 곳간은 차고 넘치는 반면, 가계빈곤화만 가속화된다. 노동시장 정상화 이외 사회안전망 강화에 수반되는 증세논의 등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고통분담 역시 헛구호가 될 뿐이다.

백보를 양보해 지금 당장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확대 개편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자. 그렇더라도 이들 의제는 경사노위가 풀어야만 할 복잡한 방정식 중 난이도가 낮은 수준의 문제다. 왜곡된 노동시장을 바로잡고 노동과 자본의 균형을 맞춰, 복지국가로 가는 길목에서 타협해야 할 사회적 의제 모두를 포기해도 될 만큼 중차대한 문제가 아니다. 노사간 충분한 협의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이들 의제를 결정한다면 경사노위 파행은 불가피하다. 사소한 것으로 취하려다, 사회적 대타협이란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는 어리석은 짓이다.

더욱이 지금의 경사노위는 완전체도 아니다. 한국노총만 조직적 결의를 통해 경사노위에 참여했고, 민주노총 지도부는 내부추인 절차를 앞두고 있다. 이미 한번 실패를 경험한 민주노총 지도부를 더 구석으로 몰아선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는 아예 물건너간다. 민주노총이 빠진 경사노위가 사회적 대타협 기구로 서지 못한다는 것은 과거 노사민정협의회 경험이 잘 말해준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을 허리에 꿰어 사용할 순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속도조절이 필요해도, 대통령 스스로 얘기했듯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배려하고 설득과 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이 ‘국민의 공감’과 배치되는 것도 아니다. 계절 또는 시장의 필요에 따라 근로시간 유연성이 요구된다해도 당사자가 수긍하지 않으면, 탄력근로제 그 자체가 현장에 안착될 수 없다. 근로시간 유연성이 가져올 기업의 생산성 제고 효과가 제한적으로만 나타난다는 얘기다.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확대 개편안, 이 두가지 의제만 해결하고자 한다면 정부가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대타협’의 길을 가고 싶다면,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확대 개편안은 폐기돼야 한다. 경사노위를 완전체로 만들고,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 테이블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폐기되는게 마땅하다. 이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경사노위와 함께 최저임금 결정구조와 탄력근로제 확대 의제를 협의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