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도발…동북아 질서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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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日 도발…동북아 질서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자 불평등한 샌프란시스코 회담과 한일기본조약부터 전면 폐기해야

기사입력2019-07-30 07:30

김영규 객원 기자 (hjlee1000@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

수출규제 등 일본의 도발로 발생한 이번 한일간 갈등을, 궁극적으로 한국·일본·미국의 국제관계를 바로잡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양국 간 갈등이 국제주의를 준수하는 틀에서 자유무역주의로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그간의 국제주의 질서가 국가 간 평등한 원칙에 입각한 토대에서 이뤄졌는가가 전제조건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아베정부는 당초 수출규제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무역관리의 변경 내지 조정이란 말로 얼버무려 애써 규제란 말을 피해갔다. 미국이 중국상품에 대한 관세폭탄으로 자유무역 질서를 깨뜨린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일본이 이같은 비난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베총리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자유무역의 위배라고 꾸짖는 국내외 여론이 빗발친 지난 7일 한국에 대한 안보 관련 2차 수출규제를 예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은) 국제약속을 지키지 않는데 (북한에 대한) 무역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화이트리스트(우대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아베총리는 한국이 그간 국제법상 정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다시 2차(예정) 수출규제를 강행할 의사임을 내비친 것이다. 아베총리를 비롯해서 일본정부는 한국이 그간 위안부 문제에서 강제징용 문제까지 심지어 지난해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국제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정부가 염두에 두고 있는 국제법 혹은 국제질서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가 규명돼야 한다.

그것은 가까이는 한일기본조약(1965년)이고 멀리는 한일기본조약의 역사적·정치적 배경이 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1~1952년)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평화조약이다. 이 평화조약으로 패전 일본에 대한 연합군의 군정기 점령을 종식시킴과 동시에 일본의 주권을 회복시켜 정상적인 보통국가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조약에 의거해 설계된 국제질서를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한다. 이에 힘입어 전후 경제 부흥과 발전을 이룩하게 된 일본이 14년 뒤 한국과 한일기본조약을 맺음으로써 사실 미국이 일본을 동아시아 지역 패권을 위한 ‘파트너십’으로 결정하는 계기가 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후 세계의 이념·정치 대결 지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이 제국주의 패권을 동아시아에 구축한 회담이란 본질이 망각돼선 안된다. 다시 말해 일본이 자행한 태평양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아시아 지역의 국가와 민족이 배제되는 불평등한 평화회담인 한편, 당시 사회주의 국가인 구소련의 반대와 중화인민공화국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강화조약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그런 만큼 당시에도 그렇지만 지금 볼 때도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제국주의 지배를 연장하고자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조약인데, 이를 금과옥조로 신봉하고 그것에 종속돼 동아시아 패권을 노린 아베정부는 분명 극우보수 정권임을 자인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인들에 대한 불법적인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다시 과거 제국주의로 회귀하려는 패권주의로 한국을 겨냥하는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보인 역사왜곡을 시정하고 정상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일본의 경제침략과 평화방해를 규탄하고 친일적폐 청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를 촉구하는 ‘아베 규탄 2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사진=뉴시스>

그 후 일본은 미국의 위임에 의거, 샌프란시스코 회담에 초청받지도 못한 한국의 박정희 군사정권과 이른바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여기에서 미국과 일본의 음모와 밀약이 엿보인다. 미국이 일본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한 이유는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당시 일본과의 동맹관계에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전쟁으로 본격화된 냉전에서 구소련을 비롯한 중국과 북한 사회주의 국가를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한국을 반공 제1선에 세우기 위한 계책을 꾸민다. 이는 미국정부가, 박정희 정권이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일본과의 화해와 발전을 위해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도록 하는데 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도 남북한은 일본에 대항한 교전국이 아니라 그것의 식민지 지위였기 때문에 초청받지도 못하고 배상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을 한일기본조약으로 메우고자 한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추종한 한일기본조약은 형식적으로는 한국정부도 포함되기 때문에 일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제법의 지위에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일기본조약은 한국이 일본과 동등한 지위에서 맺은 정당한 회담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일굴욕외교라고 규정해 대대적인 국민 반대운동이 일어났던 조약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정책은 박정희 군사쿠데타를 승인했으며 이와 함께 미국은 군사·경제원조를 감축하는 어려운 조건을 한국에 부과했다. 이로써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추진이란 명분으로 조약을 추진했으며, 결국 일본으로부터 5억달러(무상 3억, 유상 2억)를 보상받는 조건으로 청구권 문제의 해결 원칙에 합의를 했다.

지금의 아베정부는 미국의 독단적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불평등한 조건의 한일기본조약 양자를 정상적인 국제법으로 신봉하는 일방적 행위를 지금까지도 강행하고 있다. 더구나 한일기본조약에서 타결을 보았다는 청구권 문제도 일본이 저지른 전쟁에 대한 배상청구권에는 맞을지 모르나,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그로부터 발생한 손실 행위에 대한 청구권까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피해에 대한 배상판결에서 내린 아래의 말을 일본정부는 경청해야 한다. 대법원은 ‘일본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문제는 이를 거부하는 아베정권이다. 식민지 조선인들에 대한 불법적인 만행을 반성하기는커녕 다시 과거 제국주의로 회귀하려는 패권주의로 한국을 겨냥하는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보인 역사왜곡을 시정하고 정상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에서 신생 한국에게 자주독립국이란 지위를 거부한 채 미국의 일개 ‘신식민지’로 취급한 것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미국은 진작 제국주의 틀에서 벗어나 모든 국가를 평등한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보호하는 평화주의의 원칙을 준수하는 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이 수출규제로 진통을 겪는 한일관계에 개입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샌프란시스코 회담과 한일기본조약의 전면 폐기다. 물론 일본도 이제 미국의 안보 영향력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군국주의 국가로 가는 헌법 개정을 당장 멈춰야 한다.

이로써 한미일 3국 간 군사든 경제든 협력관계는 새로운 국제평등주의 틀에서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세계체제를 선도해야 한다. 동아시아 국제주의의 완성은 북한과의 핵협상이란 과제를 앞두고 필수적인 전제조건임을 미국과 일본은 깨달아야 한다. 이는 곧 북한, 중국, 러시아를 포괄하는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을 짜는 기초가 될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인하대 김영규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