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땅…누가 투기 부동산으로 만들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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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그 많은 땅…누가 투기 부동산으로 만들고 있나 20년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 이후 또 20년 ‘땅의 가치’는 무엇인가

기사입력2021-03-09 16:24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십년 넘도록 거들떠보지 않던 텔레비전을 몇 달 전부터 다시 보게 됐다. 식당에서 우연히 본 프로그램에 흔한 말로 ‘필’이 꽂혔기 때문이다. 전원일기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대표 드라마 중 하나다. 1980년에 시작해 2002년에 종영됐다. ‘제5공화국’이라는, 지금 청년층에게는 생소한 용어가 사용될 때부터 ‘한일 월드컵’이 열릴 때까지의 세월 동안이다. 국내 최장수 드라마의 위엄이다.

드라마는 시대상을 아주 잘 담고 있다. 특히 농촌을 배경으로 한 것이니 ‘땅’이 주제인 경우가 많다. 더해 도시 사람들과의 이질감, 그리고 농촌 생활의 버거움도 아주 잘 설명됐다.

그랬다. 1980년대 대한민국, 도시화에 가속이 붙었다. 농촌 청년들은 도시를 찾아 노동자로의 삶을 살았고, 외국산 농산물도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했다. 땀 흘려 수확한 쌀 한 톨 가격은 회색 콘크리트 건물 공장에서 만들어진 공산품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당연히 땅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에도 그런 장면이 많이 나온다.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가격이 폭락하자, 농촌생활에 진저리를 느끼며 땅과 함께 해온 삶을 후회한다. 그리고 화면은 목가적 풍경으로 가득했다.

전원일기의 공간적 배경은 몇 번에 걸쳐 변한 모양인데, 초기 촬영지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속 ‘양촌리’다. 양주시에는 전원일기 촬영을 기념해 전원일기 마을을 꾸며 놓은 모양이다. 드라마 흐름을 보면, 양촌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지만 언제라도 서울을 갈 수 있을 정도로 일정 거리정도 수준을 유지했다. 양주시가 서울의 위성도시이듯 드라마 속 양촌리 역시 첩첩산중 농촌은 아니었단 말이다.

전원일기가 종영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다. 그리고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촉발된 땅 투기 의혹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개발에 맞춰 땅은 상품가치가 매우 높고 안정적인 재화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은밀하게(?) 확보한 개발정보까지 더해지면, 땅은 그저 높고 안정적인 재화 수준을 넘어 큰 수익과 이어진다. 우리는 이를 투기로 규정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한다.

전원일기를 방영한 MBC는 올해 창사 60주년을 맞아 전원일기를 다시 한 번 다룰 모양이다. 드라마 형식은 아닌 듯 한데, 당시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다.

문득 상상해봤다. 2021년 전원일기 속 양촌리는 어떤 모습일까. 제법 많은 변화가 생겼을 것이다. 서울 팽창에 맞춰 많은 이의 향수를 자극하던 시골풍경은 도시로 탈바꿈했을 것이다. 농업은 어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역시 전문인 아니면 도시농업 형식으로 명맥만 유지되고 있지 않을까.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삽자루 하나씩 들고 거닐던 좁다란 길은 신작로로 바뀌었을 것이며, 길 가장자리와 세련된 형식의 상점들이 서로 맞물려 있으며, 상점 상당수는 간판에 ‘부동산’이란 글귀가 적혀 있지 않을까.

전원일기 방영기간은 20여년이다. 그리고 종영된 지 다시 20년이 흘렀다. 그 동안 대한민국은 참 많이 변했다. 지금의 40~50대와 20대가 한자리에 모여 전원일기를 보면 어떤 대화를 할까. 농촌의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동네어른인 양촌리 김 회장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땅을 팔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땅을 어디 쉽게 팔고 사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때나 지금이나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서민에게 땅은 원망의 대상이면서, 또 기대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엄마 품속 같은 존재다. 그 많은 땅 누가 다 투기 부동산으로 만들고 있나.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