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장애(障礙)…조금 불편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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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아름다운 장애(障礙)…조금 불편한 것일 뿐 마크 퀸 ‘완전한 대리석 조각’…장애인을 보는 시선에 문제없는지 생각

기사입력2016-09-05 10:06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끔찍한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여기서 ‘끔찍함’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진짜 끔찍함이다. 머리가 잘려나가고 팔과 다리가 잘려있는 사람을 봤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두 아름답다고 상찬(賞讚)한다. 신체가 이렇게 끔찍하게 절단되어 있는데, 아름답다고 하다니….

하지만 아름다움을 부정하긴 힘들다. 대리석의 매끈함을 타고 흘러내리는 아름다움을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균형 잡힌 신체에서 뿜어 나오는 아름다움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절단된 신체와 아름다움의 이 이상한 관계는 우리 앞에 ‘토르소(torso)’란 이름으로 다가와 있다. 절단된 신체는 토르소가 되어 미의 범주에 당당히 자리 잡았다. 어린 시절, 토르소는 나에게 끔찍한 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형상이다. 익숙함과 학습은 느낌마저 바꿔놓는다.

불편한 시선과 아름다운 시선

당신은 두 팔을 잃은 미(美)의 전형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런 미의 전형이 존재한다. 1820년 키클라데스 제도의 하나인 밀로(메로스) 섬에서 한 농부가 발견했던, 우리에게 <밀로의 비너스>로 잘 알려진 대리석 아프로디테(비너스) 상이 그것이다. 이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예술의 이상이 잘 표현되어서 미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팔이 없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로 ‘토르소’이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르소는 팔과 다리, 심지어는 머리까지 없는 조각상을 의미한다.

<밀로의 비너스>, 기원전 130~120년경, 대리석, 높이 202㎝, 파리 루브르 박물관.

BC 148년에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여 고대 그리스를 지배하게 된다. 그때 그리스의 우수한 미술품을 로마로 강제 운송되었고, 이 과정에서 팔과 다리가 손상된 조각품까지 로마로 옮겨졌다. 이러한 손상된 조각품을 잔가지를 쳐낸 통나무나 통숯 같은 걸 가리키는 이탈리아어 ‘토르소’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토르소는 처음에 그리스의 불완전하거나 미완성된 조각품을 지칭했지만, 근대에 들어서 인체의 양감을 더욱 잘 나타낼 수 있는 미술표현 양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근대 조각가들은 사지(四肢)와 머리가 없는 것이 인체의 양감에 시선을 더 집중시킬 수 있어 미감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팔이나 다리, 혹은 머리가 없는 신체 조각상을 무심히 보아 넘기는 데 익숙해져 있다.

신체의 일부 기관이 잘려나간 조각상을 인체의 아름다움과 연관시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만, 지금은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장애를 갖고 태어나거나 사고에 의해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어떠한가? 토르소처럼 아름답게 보거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가? 혹시 불편한 시선을 갖게 되지는 않는가? 이러한 미와 장애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장애인 조각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마크 퀸(Marc Quinn)의 ‘완전한 대리석 조각(The Complete Marbles)’이다.

마크 퀸은 YBAs(young British artists)로 잘 알려진 작가로, 그의 작품 중 자신의 피를 뽑아 자신의 두상 모양으로 얼려서 만든 (1991)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늘 파격적인 작품으로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켜왔는데, 이러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선보였던 ‘완전한 대리석 조각’ 시리즈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통해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토르소와 백색 대리석 조각에 대한 이상화된 시선으로 장애인을 신비롭게 바라보게 되는 경험이다.

‘완전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들

‘완전한 대리석 조각’은 마크 퀸이 대영박물관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조각과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밀로의 비너스>와 같은 손상된 고전 조각들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한 작업이다. 이 작업이 ‘장애인 조각 시리즈’라는 또 다른 명칭으로 불리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신체 장애를 가진 사람이 조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작업의 제작을 특별히 이탈리아의 피에트라 산타에 있는 전통적인 대리석 석공에게 의뢰했는데, 고전적 조각상에서 느꼈던 아우라(aura)를 작품에 최대한 담아내고 싶었던 의지가 엿보인다.

마크 퀸_ <임신한 앨리스 래퍼>, 2005, 대리석, 355h x 180.5w x 260d cm, Photo by Loz Pycock.

마크 퀸은 이 조각품들을 통해 손상된 고전 조각상에 부여된 ‘불완전’에 대한 ‘이상화’를 신체 장애인을 바라보는 현실의 시선에 연결한다. 팔과 다리, 심지어 머리가 없는 고전적 조각상이 아름답다면 현실에서 장애를 가진 몸을 아름답게 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의 의도대로 우리는 토르소와 같은 결여된 조각상에 대한 우리의 익숙함과 백색의 대리석 조각에 대한 경외감으로 장애인 조각을 바라보며 묘한 어긋남과 불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편협했던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을 갖게 된다.

그가 이 조각품들을 ‘완전한 대리석 조각’이라고 명명한 것에서도 작업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신체 일부가 존재하지 않는 ‘불완전한(incomplete)’ 사람(장애인)을 결여된 상태로 보는 시선을 토르소와 같이 ‘불완전한’ 상태를 ‘이상화’된 아름다움(완전함)으로 보는 시선의 범위로 끌어들임으로써 ‘완전한(complete)’ 상태란 과연 무엇이고, 장애인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 문제는 없는지 생각해 보게 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이 ‘완전한 대리석 조각’ 시리즈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현존 장애인인 앨리스 래퍼(Alison lapper)가 임신한 모습을 거대한 조각상으로 제작하여 2005년 9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설치한 <임신한 앨리스 래퍼>(2005)이다. 이 조각상은 설치 당시 설치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잠시 있었다. ‘임신’, ‘여성’, ‘장애인’이라는 키워드가 녹아있는 이 조각상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였던 ‘장애인의 성(性)’을 드러냄으로써 일반인의 시선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리라. 과연 장애는 숨겨야 되는 것일까.

결여된 인간이 아니라, 조금 불편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장애인이다. 이러한 사실을 머리에만 담고 있지 말고 가슴으로 끌어내렸으면 좋겠다. 고대 그리스 토르소가 ‘완전한’ 아름다움을 가진 것처럼 그들 또한 ‘완전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