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부대 격파하고 유엔군 지휘 ‘튼튼’ 차량

프린트

세계시장 ㅣ 아프리카 기계화부대 격파하고 유엔군 지휘 ‘튼튼’ 차량 아프리카, 어떤 물건이 어떻게 팔리나…도요타 3종세트의 지배㊤

기사입력2016-09-21 11:16

김용빈 객원 기자 (kimcarlos@dmi.or.kr) ㅣ다른기사보기

개발마케팅연구소 김용빈 소장, 국제개발학 박사

‘도요타’라고 하면 어떤 차종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고급 세단의 대명사인 렉서스(Lexus)나 하이브리드카의 선두주자인 프리우스(Prius)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에서는 어떨까? 아프리카에서는 렉서스나 프리우스를 잘 모른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한 나라처럼 보면 안된다는 경고를 무색하게 하는 게 있다. 자동차 시장만큼은 ‘아프리카’ 단일 시장으로 불러도 될 정도로 도요타가 지배하고 있다. 대표 상품만 다르다. 도요타의 대표상품은 필자가 ‘도요타 3종세트’라 명명한 랜드크루저(Land Cruiser), 하이럭스(Hilux), 하이에이스(Hiace)다.

랜드크루저는 짚(Jeep) 종류인데, 희대의 히트작이다. 같은 속도로 달리다 나무를 들이받으면, 대부분의 차는 폐차되고 독일·미국의 차는 공장에 입고된다. 하지만 랜드크루저는 뒤로 뺐다가 계속 달려나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견고한 차종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유엔군 지휘차량의 절대 다수가 랜드크루저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는데, 경험이 쌓일수록 점차 랜드크루저로 수렴됐다고 한다.

요새 아프리카 도시에 가면 프라도(Prado)라는 차종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랜드크루저의 도시형 버전이다. 그러니까 100% 오프로드가 아니라면 좀더 쾌적한 실내를 갖춘 프라도를 선택하는 일도 가능하다. 물론 프라도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도시화 진척과 도로상태 개선이라는 환경 변화가 있다.

도요타의 랜드크루저(Land Cruiser)<사진=wikipedia.org>

하이럭스는 일반적으로 ‘픽업’이라 불리는 작은 트럭이다. 평야나 산악지방이 배경인 미국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적재함이 있는 짐차라서 실용적이고 쓰임새가 많은 다목적 차량이다. 이 차량 역시 튼튼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1986년부터 1987년까지 벌어진 리비아-차드 전쟁을 ‘도요타 전쟁(Toyota War)’이라고 부를 정도다. 당시 가다피의 리비아군은 탱크와 장갑차로 구성된 기계화부대를 앞세워 침공했지만, 차드군이 도요타 하이럭스에 대전차 무기를 달고 다니면서 리비아 기계화부대를 각개격파해 버려 참패하고 철수했다. 광활한 사막에서는 장갑과 화력보다는 기동력과 내구성이 더 중요한 승부처였고, 거기서 하이럭스를 이길 수 있는 차량은 없다. 도요타 전쟁을 통해 하이럭스는 시대를 뛰어넘는 대전차무기 RPG-7, 자동소총계의 신화 AK-47과 함께 ‘테러리스트 3종세트’로 한층 유명해졌다.

2015년에서는 미국 정부가 도요타 측에 “도대체 왜 이슬람국가(IS)가 도요타 차량을 타고 다니는지 해명하라”고 공식 요구했을 정도로 테러단체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 때 도요타 측의 공식 답변은 “우리가 직접 팔지는 않았다. 조심해도 어디서든 구할 수 있지 않느냐” 정도에 그쳤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야, 너희들도 IS 잡으러 다니면서 우리 차 타고 다니잖아!”

원조로 받을 때 기술지원(Technical Assistance)으로 분류됐다고 해서 어이없이 ‘Technical’이라 불리는 하리럭스(Hilux) 차량이 무장을 했다.<사진=wikipedia.org>

랜드크루저와 하이럭스가 아프리카 전역에서 자주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차에 관심이 없다면 그저 덤덤한 소재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워낙 많은 종류의 SUV와 픽업 트럭이 시장에 있는데다, 또 직접 사용해 보지 않으면 그 차이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한 눈에 확 들어오는 차량이 있으니 바로 ‘하이에이스(Hiace)’다.

하이에이스는 우리나라로 치면 봉고버스와 같은 차종이다. 그런데 이 차종 하나가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의 대중교통을 책임지고 있다. 케냐에서는 ‘마타투’, 탄자니아에서는 ‘달라달라’, 앙골라에서는 ‘깐동게이루’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일반적으로 ‘미니버스’나 ‘택시(taxi)’로 불리는 경우도 많다. 별다른 규정이 없음에도 버스 차체를 위 아래로 나눠, 아래는 파란색으로 위는 흰색으로 칠한 차량이 가장 흔하다. 이는 최초로 일본에서 수입된 중고 하이에이스가 그렇게 칠해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덩치는 작지만 멀쩡하게 버스인 것을 ‘택시’라 부르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대중교통 수단이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무허가 영업차량’이다. 속된 말로 ‘나라시’ 영업중인 셈이다. 차주가 알아서 노선을 정하고 적당히 요금을 받는 영업형태라서 행선지를 적어 붙이거나 할 수가 없어서, 조수석쪽 뒷문에 매달려 있는 차장이 행선지를 외치고 손님을 태우고 차비를 받느라 무척 바쁘다. 엄밀히 말하면 불법영업이지만, 정부가 그럴듯한 대중교통 서비스를 공급해주지 못하니 무턱대고 단속을 할 수도 없다. Minibus-Taxi라 부르는 남아공에서는 출퇴근 수요 6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정부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제재를 가하면 가끔 한번씩 전국적인 파업을 일으키는데, 그땐 그야말로 전국이 마비되는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