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단 어울릴까? 아프리카는 아우토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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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장 ㅣ 아프리카 세단 어울릴까? 아프리카는 아우토반 아니다 아프리카, 어떤 물건이 어떻게 팔리나…도요타 3종세트의 지배㊥

기사입력2016-09-22 21:07

김용빈 객원 기자 (kimcarlos@dmi.or.kr) ㅣ다른기사보기

개발마케팅연구소 김용빈 소장, 국제개발학 박사

랜드크루저, 하이럭스, 하이에이스 세 차종을 묶어서 ‘도요타 3종세트’라고 불렀는데, 이 3종세트가 아프리카 시장을 그토록 오랫동안 견고하게 장악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뭘까?

랜드크루저와 하이럭스는 내구성이 좋고 고장이 적은 데다 오프로드 주행 능력이 뛰어나다. 잘 알다시피 도요타의 고향 일본은 어떤 국가보다도 도로가 잘 정비돼 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포장도로가 뻗어있어 타이어에 흙 묻힐 일이 거의 없다. 그런 나라에서 어쩌다가 국내시장에서는 잘 팔릴 것 같지도 않은 대형 SUV와 픽업 트럭을 만들게 됐을까?

원래 도요타는 미국 오프로드 시장을 노리고 이 두 차종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군수용으로 개발한 모델을 2차대전 이후 민수용으로 개량해서 미국시장에 맞춘 것이다. 여기서 차이가 생긴다. 우리 완성차 업계는 한국에서 만든 차량을 거의 그대로 내다 판다. 미국업체는 자국 환경에 맞춰 만들어 판다. 하지만 도요타는 미국 환경에서 미국차보다 ‘월등히’ 튼튼한 차를 목표로 개발했고, 이겼다. 그것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험지에서 먹히는 제품을 개발하게 된 내력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열악한 도로상태가 차량을 결정

아프리카 도시들을 보자. 간선도로는 멀쩡히 포장이 잘 돼 있는데, 거기서 한 발자국만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비포장인 곳이 수두룩하다. 도시에서도 세단을 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제약이론(Constraint Theory)에 따르면, 전체 프로세스의 효율은 가장 약한 부분이 결정한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도시에서 어떤 차량을 쓸 것인가는 그 도시에서 가장 열악한 도로상태가 결정하는 셈이다. 최근 출장에서도 어떤 주재원이 아우토반에나 어울릴 것 같은 멋진 세단을 타고 다니면서 차량 하체를 학대(!)하는 가슴아픈 광경을 보았다. 아프리카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사놓은 차량이란다.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비포장인 곳이 수두룩하다. 도시에서도 세단을 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아우토반에나 어울릴 것 같은 멋진 세단을 타고 다니다가 차량 하체를 긁히기가 일쑤다. 사진은 도요타의 하리럭스(Hilux).<사진=www.flickr.com>

차량을 구매할 때 또 다른 중요한 기준은 정비의 편의성이다. 기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침에 맡기면 오후에 끝날 간단한 수리가 아프리카에서는 한 달씩 걸리는 경우가 흔하다. 정비공장에서 수리하는 게 늦다기보다는 부품 조달시간이 긴 것이 큰 원인이다. 부품 조달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싸다. 부품 유통망이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피할 길이 없다.

문제는 차량부품의 유통망은 당연히 규모의 경제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아직 대량으로 차량이 팔리지 않은 상태에서 선제적으로 투자해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 부품 유통망이 없으면 신차 판매가 어렵다. 닭과 달걀의 무한루프에 빠진다.

중고차 수입과 동시에 정비수요 발생…부품유통망 확보

이런 딜레마를 도요타는 어떻게 극복한 것일까? 하이에이스는 중고차가 먼저 진출했다. 일본의 운전석은 우측에 있어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의 접근이 용이했다. 중고차는 가격이 낮으므로 개도국으로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중고차는 수입과 동시에 정비수요가 발생하기 때문에 부품도 따라 들어갔다. 하이에이스가 아프리카 전역에서 히트를 치면서 부품 유통망이 확대됐고, 그 유통망 덕분에 신차 수출도 쉬워졌다.

게다가 도요타 3종세트는 역사가 오랜 모델들이다. 랜드크루저는 2차대전으로까지 연원이 거슬러 올라가며, 첫 세대의 공식 생산은 1951년부터 시작됐다. 6.25 전쟁때 미군에 납품했다는 배아픈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때부터 꾸준히 개량을 거듭해 왔지만, 이름은 그대로다. 하이럭스는 1968년, 하이에이스는 1967년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그대로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