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을 감싸주는 따뜻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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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차가움을 감싸주는 따뜻한 예술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치유하고, 건설용 중장비를 감싼 뜨개질

기사입력2016-12-08 13:29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아네트 메사제, ‘기숙생들(Boarders of Rest)’, 1971~1972<사진=필자 제공>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많은 것이 변한다.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가로수, 아무도 앉지 않는 벤치, 입 밖으로 퍼져나가는 하얀 입김.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하얀 눈은 소리 없이 내린다. 이런 추운 겨울이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털실로 짠 스웨터와 목도리가 부러워진다. 시린 마음마저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아 추워질수록 더욱 자주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들이 생각난다. 차가운 것을 따스하게 감싸는 그녀들의 뜨개질이 생각난다. 슬프면서도 생기발랄한 그 뜨개질이 생각난다.

연약한 주검을 감싸는 따뜻한 뜨개질

아직도 그 강렬한 이미지는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털실로 짠 작은 스웨터를 입은 연약한 새의 싸늘한 주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녔을 그 작은 생명의 차가워진 몸뚱이에 입혀진 털실 옷. 그렇게 <기숙생들>은 내 마음에 들어왔다. 주검이 된 작은 새들에게 털실로 짠 작은 스웨터를 입혀준 사람은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작품 <카지노>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프랑스 여성 설치미술가 아네트 메사제(Annette Messager)였다.

아네트는 그동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 욕망, 잠식된 무의식, 불안 등 인간의 본성을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다양하게 표현해 왔다. 특히 <기숙생들>에서 보여준 작은 생명이 직면한 죽음과 그것을 감싼 스웨터 속에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치유가 스며들어있다. 그녀는 파리 시내를 걷던 중 아무렇게나 방치된 작은 참새의 주검을 보았고, 그 작은 존재를 보호해주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 마음은 생명을 잃은 작은 새들에게 뜨개질한 작은 옷을 입혀주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설치작품 <기숙생들>은 이러한 행동이 낳은 결과다.

국내에서도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전시된 바 있는 <기숙생들>은 유리관 속에 털실 스웨터를 입은 작은 새들이 줄지어 놓여 있는 작품이다. 일부는 진짜 새의 주검이고, 일부는 헝겊과 실로 만든 인조새였다. 유리관 속에 놓여있는 식어버린 작은 생명들은 어두운 불빛 아래에서 마치 따뜻한 털실 옷을 입고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습은 도시에 사는 작은 생명들의 고단함과 상처를 털실 스웨터가 감싸안고 위로해주는 듯 느껴진다.

하지만 <기숙생들>을 바라보는 것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이 작품에는 불편함도 묻어 있다. 이미 죽어버린 작은 몸뚱이를 온전히 놓아주지 않은 채 치유를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주검을 작품으로 소환하여 유리관에 전시한 것에 대한 불편함이다. 흙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가 털실로 짠 작은 스웨터를 걸친 채 유리관에 박제되어 오랜 시간 그곳에서 놓여 있을 것을 생각하면 감정은 복잡해지고 마음은 심란해진다.

올렉, 폴란드 ‘카토비체 거리 예술 축제’ 설치작, 2012<사진=필자 제공>

거리를 바꾸는 뜨개질의 생기발랄

복잡한 감정과 심란한 마음을 내려놓고 파격적인 색감의 뜨개질 작품을 떠올려본다. 1943년에 태어나 79세가 훌쩍 넘은 아네트가 무거운 주제를 뜨개질로 풀어냈다면, 30대 후반의 올렉(Olek, 1978년 폴란드 출생)은 뜨개질의 생기발랄함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뜨개질 외에도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보여주었던 아네트와 달리, 올렉은 모든 작품을 뜨개질로 보여준 작가기도 하다. 올렉(본명 Agata Oleksiak)은 폴란드에서 문화학을 전공한 여성 미술가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익혀왔던 코바늘 뜨기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뜨개질 작업을 시작하여 대중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모았다.

그녀의 작업은 아네트와 달리 미술관보다는 거리에서 자주 이루어진다. 일명 ‘게릴라 뜨개질(원사 폭격, Yarn bombing)’이라 할 수 있는 그녀의 작업은 여성적 거리 예술의 한 형태이다. 올렉 이외에도 많은 여성 작가들이 선보이고 있는 이 ‘게릴라 뜨개질’은 소화전, 가로등, 가로수, 우체통, 버스, 자전거 등 수많은 거리의 개체들을 다채로운 뜨개질 방식으로 감싸서 표현하는 거리 예술이다. 2004년 이후 새로운 형태의 거리 예술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그라피티 아트(graffiti art)로 대표되는 거리 예술문화를 남성이 주도하고 있는데, 게릴라 뜨개질이 등장하면서 여성 작가들도 거리 예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올렉, ‘월스트리트의 황소 동상’, 2010<사진=필자 제공>

이러한 게릴라 뜨개질 작가 중 단연 돋보이는 작가가 바로 올렉이다. 그녀는 버스나 자전거뿐만 아니라 기차, 건설용 중장비, 거리의 기념 동상(銅像),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에게까지 뜨개질해 감싸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거리 작업 중 대표적인 것은 2010년 겨울 맨해튼 월스트리트의 상징인 황소 동상(Charging Bull)을 형형색색의 뜨개질 직물로 감싼 작업이다. 겨울에 얼어붙어 더욱 차가워 보이는 황소 동상이 털실 피부를 선물 받은 것처럼 보이는 이 작업은 털실이 지닌 화려한 색감과 따뜻함 때문에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른 작업으로는 2013년에도 스페인의 세비아에 있는 엘시드(El Cid) 기사 동상을 감싼 작업을 들수 있다. 이 작업도 지역의 랜드마크를 색다르게 변화시켜 큰 대중적 관심을 받았다.

올렉은 거리의 랜드마크뿐만 아니라, 운송수단을 감싸는 작업도 자주 진행했다. 자전거 같은 작은 규모부터 기관차 같은 거대한 것까지 그 대상은 다양하다. 그녀의 작업 중 가장 규모가 큰 <치명적 로맨스, Deadly Romance>(2013)는 오래된 증기 기관차를 감싼 작업이다. 작가의 고향인 폴란드 우치(Lodz)에 전시된 이 작업은 <폴란드의 꽃, Kwiaty polskie>(1940∼1944)과 <기관차, Lokomotywa>(1938)로 유명한 폴란드의 시인 줄리언 투빔(Julian Tuwim)에게 경의를 표한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치명적 로맨스>에서 육중한 무게의 증기 기관차는 화려한 색을 덧입어 생기발랄한 기차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관차 외에도 올렉은 2012년 ‘카토비체 거리 예술 축제(Katowice Street Art Festival)’에서 중장비를 감싸는 작업도 선보인 바 있다. 뜨개질한 천으로 대형 굴착기와 소형 굴착기를 감싼 이 작업은 범상치 않은 모습 때문에 감싼 것 자체로도 많은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뜨개질로 감싼 여러 퍼포머들이 굴착기를 오르내리는 역동적 퍼포먼스까지 보여줘 더욱 관심을 받게 되었다.

올렉, ‘치명적 로맨스’, 2013<사진=필자 제공>

사실 뜨개질 천으로 온몸을 감싼 퍼포머 또한 작가가 지속해왔던 신체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항상 인간의 골격, 복장, 기관, 시신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관심은 신체를 뜨개질 천으로 감싸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신체 작업은 파격적인 색감과 범상치 않은 뜨개질 패턴들로 사람의 성별, 나이, 인종 등을 감춰버림으로써 마치 새로운 생명체와 조유하는 느낌을 던져준다. 그녀만의 독특한 작업인 신체 작업에는 뜨개질의 특성과 연관된 인간의 신체와 심리의 개념이 담겨있다. 올렉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뜨개질도 한 부분이 풀리기 시작하면 전체가 풀려버리듯, 인간의 복잡한 생물학적인 시스템도 하나의 연결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는 신체 작업을 통해 뜨개질의 복잡성과 상호 연관성이 인간의 신체와 심리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고 보는 것이다.

뜨개질로 감싼 작품에는 경계를 풀게 되는 포근함이 스며있다. 받아본 적도 없는 할머니의 손으로 짠 스웨터가 떠오르기도 한다. 겨울철, 차가워진 우리의 감성을 따스한 온기가 서려 있는 두 작가의 뜨개질 작품들이 아늑하게 감싸주어 겨우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