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선은 곧 자연의 선…군자 인품 梅蘭菊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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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동양의 선은 곧 자연의 선…군자 인품 梅蘭菊竹 [그림을 읽다:한국화] ⑭작가의 심상을 담은 ‘선(線)’ 사군자

기사입력2017-02-12 09:10

오민수 객원 기자 (dat1127@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홍매도대련’ 조희룡, 조선 19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각 127×30.2cm, 개인소장

현대적 드로잉의 개념은 작가 주관의 내면세계로부터 표출된 최초의 창조행위와 창조물 전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드로잉에 대한 해석은 동양의 ‘선묘’ 즉 서예나 문인화의 붓놀림에서 보이는 작가의 심리상태와 관련해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선의 예술로 대표되는 동양의 회화는 오래전부터 작가의 심상으로부터 즉흥적인 붓놀림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창작과정 속에 여러 가지 미학적 가치관과 창작 심리에 관한 미술 이론들이 성립되었다. 그래서 주관과 객관 대상의 정신적인 합일의 과정을 통해 무작위적인 일회(一回)의 성립을 이루는 동양의 선묘 예술은 현대 드로잉의 해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양의 선은 곧 자연의 선

동양의 회화는 고도로 심화 발전된 선적 표현 양식의 면모를 보여주고, 붓으로 그린 필선은 회화사상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으뜸의 표현 수단으로 해 그 가치를 높여왔다. 그리하여 동양에서는 선의 유희적 미감을 추구하고 그것이 또한 감상의 한 기준이 돼왔다. 이러한 선적 표현은 동양회화의 근저에 내포돼 있는 동양의 사상과 관련이 깊다.

동양의 사상은 자연관(自然觀)에 두고 있다. 이는 곧 동양회화의 선도 그 자연관(自然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동양의 선은 곧 자연의 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산, 강, 들과 같은 자연만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흐르고 있는 자연스러움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부작란도’ 김정희(1786~1856), 조선 19세기, 종이에 수묵, 54.9×30.6cm, 개인소장

동양사상의 본질성은 세계를 ‘변화’의 개념으로 간주함으로써 그 변화의 순환성 원리가 ‘도’ 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역동적인 우주관은 또한 ‘기’의 세계를 뜻했던 것이므로 이러한 사상은 화론에도 그대로 반영돼 이른바 ‘기운론’이 그 근간을 이루었던 것이다.

기의 리듬은 동양회화의 특성을 가장 본질적으로 드러내는 용어이기도 하다. 동양화에서 여백은 그저 빈 공간(Space)이 아닌 무한한 공간으로 연결되는 즉 우주와 연결되는 장이다. 요컨대 유, 무를 일원론적으로 보는 데서 여백의 미학이 성립하는 것이다. 결국 동양회화의 드로잉적인 특성은 기의 리듬, 즉 동양적 우주관의 현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시대를 초월해 동양회화의 가장 큰 특성을 이루었던 것이다.

문인화 중 으뜸은 산수화

동양회화에서 ‘선(線)’의 미학을 볼 수 있는 장르로 문인화를 들 수 있다. 문인화는 문인들의 교양생활로 그려낸 격조를 중시하는 그림을 일컫는다. 문인화는 중국 북송시대에 성립해 고려시대에 전래되었다. 그러나 명나라 후기 동기창일파에 의해 남북종화론이 나오면서 중국의 회화에서 주로 화원과 직업 화가들의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 치밀한 구도,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북종화, 문인화가들의 수묵화를 남종화라 불렀다.

동기창에 의해 신분으로 그림의 성격을 구분 짓게 되자 남종화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북종화로 분류된 화가들도 남종화의 양식을 따르게 돼 마침내 직업 화가들조차 양식적으로 모두 문인화풍을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조선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표암화첩_국화’ 강세황(조선, 1713~1791), 1784년 제작, 종이에 수묵, 22.5×33.3cm

문인화는 소재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는데, 이중 가장 오랫동안 문인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은 것은 산수화였다. 산수화는 도가사상의 영향으로 자연 속에 동화되어 살고자했던 문인사대부들의 이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특히 겸재 정선은 중국의 산수에서 우리의 산수로 눈을 돌려 실제 경치 그대로를 표현한 진경산수를 창시해 조선화단에 큰 변혁을 일으켰다. 문인화가들은 산수화 외에도 자신의 의중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화, 장수와 소망을 상징하는 영모초충도, 선비의 지조와 의지를 나타내는 사군자 등도 즐겨 그렸다.

사군자란 동양회화사에서 매(梅), 난(蘭), 국(菊), 죽(竹)을 말한다. 사군자란 말은 본래 회화에서 사용했던 말이 아니고 인물을 가리킨 말이다. 전국시대에 맹상군, 평원군, 춘신군, 신능군 등 뜻이 높은 인물 네 사람을 골라서 그들이 덕망을 높이 받들기 위해서 부른 이름이다. 회화에서 이 말이 쓰이게 된 것은 매난국죽이 고결하고 지조 높은 기개가 있다고 하여 앞서 말한 인물들의 이름을 모방한데 연유한다. 옛부터 군자에 대한 인식은 그 신분성보다는 고매한 품성에 의한 인격적 가치로서 존경되었기 때문에 사군자를 그릴 때도 대상물의 외형보다 그 자연적 본성을 나타내는 것이 더 중시되었다.

매화는 설한풍속에서 맑은 향기와 함께 봄을 제일 먼저 알리며 피는 꽃이다. 아무리 고난이 와도 자신의 뜻을 나타내고 피우는 마음을 나타낸다. 은은한 향기가 감도는 듯한 매화도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으면 밖에 나서지 않아도 다가온 봄을 느끼게 되니, 옛 사람들의 멋이란 이런 것이겠거니 조금쯤은 가늠해 볼 수 있다.

‘풍죽도’ 이정 견본수묵, 127.5×71.5cm 간송미술관 소장

난초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홀로 은은한 향기를 퍼뜨린다. 난초의 아름다움과 향기는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졌는데, 특히 초나라 시인 굴원(屈原)의 시에서는 충절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있으며, 공자의 가르침 중에는 군자와 동일시되기도 하였다. 그림에 붙여진 ‘부작란도(不作蘭圖)’ 혹은 ‘불이선란도’라는 제목은 화면의 왼쪽 윗부분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줄을 바꾸며 써내려 간 김정희의 제시(題詩)에서 연유한다.

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일찍부터 사군자의 하나로 지칭돼 왔다. 뭇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여름에 피지 않고 날씨가 차가워진 가을에 서리를 맞으면서 홀로 피는 국화의 모습에서 우리의 선인들은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림은 강세황의 ‘표암화첩’에 실린 사군자 그림 가운데 하나로 국화를 그린 것이다. 남종문인화풍의 부드러우면서도 서예 글씨처럼 필획이 살아 있는 붓으로 묘사한 깔끔하고 담백한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화풍은 당대와 후대의 문인 및 직업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도 푸른 잎을 계속 유지하는 등 그 생태적 특성이 모두 고결한 군자의 인품을 닮았다. 탄은의 풍죽도는 거친 바위틈에 뿌리 내린 대나무 네 그루가 휘몰아치는 강풍을 맞고 있다. 뒤쪽 세 그루의 대나무는 바람을 이기지 못해 요동치지만, 전면 한복판에 자리한 대나무는 댓잎만 나부낄 뿐 튼실한 줄기는 탄력 있게 휘어지며 바람에 당당히 맞서고 있다. 고통스럽게 견디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바람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