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 거리가 먼 개성있는 작품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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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익숙한 것과 거리가 먼 개성있는 작품 선호 미국 5대 컬렉터, 도날드&메라 루벨 부부

기사입력2017-02-24 18:05

김현성 객원 기자 (artmanse2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컬렉터는 시대를 뛰어넘는 심미안으로 예술계의 발전을 이끈다. 이번에 소개할 사람은 자신들만의 컬렉션 원칙을 가지고 50여년 동안 작품을 수집해 온 루벨 부부다. 슈퍼리치에 속하지도 않은 루벨 부부가 미국 5대 컬렉터의 반열에 오른 과정에 많은 미술애호가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이들의 성공적인 컬렉션을 인내심이라는 단어로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예술작품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어떻게 부를 축적해갔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늘 흥미롭다.

루벨 부부<출처=hyperallergic.com>

◇25달러로 첫 컬렉션 시작=뉴욕 브루클린에서 프로 테니스 선수의 아들로 태어난 도날드 루벨은 코넬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의대에 진학해 부인과 의사를 지냈다. 그후 20대 초반에 교사 생활을 갓 시작한 메라와 결혼을 한다. 메라는 10대 초반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 집안의 가난한 딸이었다. 그들은 결혼과 동시에 컬렉션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도날드 루벨은 네살 때부터 병뚜껑을 수집했고 여섯살 때는 이미 자신만의 컬렉션 목록을 보유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신은 컬렉터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 같다며 한 말이다. 어릴 적부터 형성된 수집 습관은 결혼생활과 함께 다시 시작된다.

신혼시절 25달러로 시작한 이들의 첫 컬렉션의 과정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월급의 일부로 그림을 샀던 것인데, 좋은 그림을 더 저렴하게 사기 위해 수십 군데의 갤러리와 작가 작업실을 직접 발로 찾아다녔다. 꼭 작품이 갖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는 몇 개월씩 비용을 나누어내면서까지 작품을 구입했다.

세상에 컬렉터들의 패턴은 다양하지만 이들 부부만큼 발품을 파는 애호가는 드물다. 루벨 부부는 지금도 잠재력 있는 신인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그렇게 방문한 스튜디오가 수천 곳을 넘는다고 한다. 2012년에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트광주’ 행사장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당시에도 이들은 큐레이터의 설명을 유심히 듣고 한국 젊은 작가의 자료들을 꼼꼼히 챙겼다.

“컬렉션은 작품에 대한 평가는 물론 작가의 인격과 예술에 대한 철학이 검증된 후에라야 한다.” 루벨 부부의 그림 수집 원칙이다. 그들이 수천 곳에 달하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던 것도 이 원칙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초창기에 발품을 팔며 구입했던 이들의 컬렉션 리스트다. 키스 해링, 장 미쉘 바스키아, 신디 셔먼, 마우리치오, 카텔란 같은 작가들이 목록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당시는 무명이었던 이 작가들의 작품은 현재 수십억 달러에 거래된다. 천운을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미친 듯이 작가와 작품들을 보러 다니며 생긴 안목 때문일까? 반백년이 흐른 지금, 루벨 부부의 컬렉션은 자그마치 5000여점에 이르는 데 작가 수만 무려 800여명이다.

Rubell Family Collection 설치 작품<출처=rfc.museum>

◇컬렉션 스타일은 컨템포러리 아트=루벨 부부의 첫 컬렉션은 팝아티스트인 키스 해링의 작품이었다. 처음엔 한 점을 구매했지만 아트 딜러의 조언으로 전시 출품작 전체를 사들이는 모험을 감행했다. 물론 저렴한 작품값도 이들의 결정을 한 몫 거들었다. 지금은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키스 해링의 초기작들은 에너지 넘치는 재기발랄한 작품들이다. 1990년 에이즈로 사망할 때까지 키스 해링에 대한 후원은 계속됐다.

루벨 부부는 그들만의 컬렉션 스타일이 있는데 첫 번째는 컨템포러리 아트를 수집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유명작가의 작품보다 신인작가들의 새로운 시선이 표현된 작품에 더 후한 점수를 준다는 점이다. 두 가지 기준에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작가들이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익숙한 것과는 거리가 먼 개성있는 작품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이야말로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믿음 때문. 이들의 컬렉션에 설치작품이나 미디어아트가 많은 이유도 이런 컬렉션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전시장이나 아트페어 등에서 새로운 낯선 작품들을 발견했을 때 스릴감까지 느낀다고 하니 현대미술 컬렉터로서의 비범한 눈과 결단력 있는 심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마이애미에 RFC 뮤지엄 설립=루벨 부부의 개인 컬렉션은 현재 미국에서도 가장 실험적이고 도전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평론가들마저 그들의 안목과 통찰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또 이들에게 발굴된 작가들이 대부분 유명작가로 성장하고 있으니 미술계의 마이더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갤러리와 작가들은 이들 부부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한다.

Rubell Family Collection 뮤지엄 전경<출처=rfc.museum>

루벨 부부의 영향력이 단지 작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1993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마약과 불법무기를 압수해 보관하던 낡은 창고를 매입해 RFC(RUBELL Family Collection)란 이름의 뮤지엄을 설립한다. 최근에는 그들의 아들인 제이슨과 함께 ‘Contemporary Arts Foundation’을 설립하고 대형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더불어 세계 10대 아트페어로 꼽히는 ‘아트바젤 마이애미’를 출범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덕분에 마약사범과 불법무기 범죄자들이 들끓었던 마이애미 해안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찾아오는 새로운 휴양도시로 거듭 태어났다.

노령임에도 좋은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작가의 스튜디오 문을 두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 루벨 부부의 컬렉션은 지금도 확장 중이다. 이제 막 컬렉션에 입문한 사람들에게 반백년의 작품 소장 경험을 가진 부부는 이렇게 조언한다.

“당신이 예술에 다가가라. 많이 보고 많이 연구하라. 낯선 작품을 눈여겨보라. 좋은 작품은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