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재물·명예·평안·행운을 기원한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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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장수·재물·명예·평안·행운을 기원한 동물들 [그림을 읽다:한국화] ⑮조선시대 동물로 투영된 그림

기사입력2017-03-13 10:18

오민수 객원 기자 (dat1127@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 강세황, 18세기 후반, 견본담채, 90.4x43.8cm, 호암미술관 소장

동물과 인간과의 관계는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존재해 왔다. 태초의 인류에게 동물은 식생활을 위한 사냥의 대상이자 자신과 종족을 해치는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따라서 동물은 필연적으로 중요한 관심거리였기에 인류는 동물의 행동, 습성, 표정 등을 관찰했고 이를 나타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한 동물들과 부단히 관계를 가지는 동안에 일부 동물에 대해서는 특별한 믿음이 형성됐다. 이러한 믿음은 시대가 흐르고 사회가 발달해 국가가 형성될 때 건국신화나 시조신화 등과 연결되면서 인간의 정신세계에 크게 자리를 잡는다. 초인간적 경지를 열망하는 인간의 끝없는 바람은 동물에 투영돼 그들을 미술의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 질 수 있게 했다. 우리 민족 역시 동물들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연계성을 가지며 그림으로 표현돼 왔다. 우리와 친숙한 동물인 호랑이, 고양이, 개, 소를 다룬 작품들을 살펴 보자.

호랑이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전래동화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물로 상징돼 정의롭고 우호적인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동물이다. 사람에게 해를 가져오는 자연재앙을 막아주고,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인 질병과 전쟁, 굶주림의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어, 고관대작이나 서민들의 집에 여러 형태의 작품유형으로 그려져 걸려 있었다.

호랑이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 조선후기 김홍도(金弘道, 1745~미상)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화면 위쪽에 굵은 소나무 둥치와 가는 가지를 그려 화폭을 가득 채운 호랑이의 모습을 강조하는 한편, 여백을 적절히 메워주는 구도가 절묘하다. 호랑이는 그 털을 세필로 생생하게 묘사해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세련미를 나타내고 있으며, 배와 뒷다리, 꼬리의 흰선으로부터 몸체의 부피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강하게 그어 강조한 수염과 날카로운 눈빛을 통해 그 위용을 잃지 않도록 그린 것이 특징이다.

작품 속 호랑이의 모습은 전체적으로는 약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인데, 뒷다리나 꼬리는 정면 시점을 취하고 있고, 등뼈는 기형적일 만큼 길게 그려서 옆모습을 만들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형상이지만, 감상자로 하여금 화면 속에서 자연스러운 호랑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황묘농접도, 김홍도, 종이에 채색, 30.1x46.1cm, 간송 미술관

고양이의 묘(貓)자는 한자로 칠십 노인 모(耄)자와 ‘마오’라는 중국발음이 비슷한 연유로 고양이는 어버이를 섬기는 효의 의미와 더불어, 노부부의 원만한 관계에서 오는 가정의 믿음과 평화, 장수를 상징하는 소재로 사용돼 왔다.

김홍도(金弘道, 1745~미상)의 작품 황묘농접도(黄貓弄蝶圖)는 나비와 나비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유기적 움직임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여기에 그려진 나비 또한 장수를 뜻하는 소재로 옛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때도 하나하나 의미를 생각했다.

작품을 살펴보면 고양이와 나비, 꽃과 풀에 이르는 자연스러운 색채감이 그림의 따사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잘 전달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고양이와 나비 외에도 꽃이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이 그림에서 나비와 꽃은 실제의 모습과 같이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된 반면 고양이와 바위, 배경은 적은 필치와 섬세한 농담조절을 통해 표현되었는데, 이는 한 화폭 안에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재 각자의 특징을 잘 살려 혼잡해 보이지 않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 작품을 통해 김홍도는 누군가 노년의 평안함을 기원했을 것이다.

흑구도, 김두량, 18세기, 지본수묵, 23.1x26.5cm, 국립중앙박물관

세 번째로 볼 동물은 인류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개’이다. 개는 충직함과 다정함을 가지고 있어 오랜 시간동안 우리의 일상생활 문화에서 인간의 주위를 구성하는 풍경(風景)처럼 존재해왔다. 개의 발달된 후각과 청각으로 작은 미동이나 미세한 냄새도 놓치지 않는 능력 때문에 잡귀와 액운을 물리쳐 집안의 행운을 지켜주는 상징이 되었고, 이러한 목적을 띤 견도(犬圖)가 많이 제작됐다.

김두량(金斗樑, 1696~1763)의 흑구도(黑拘圖)를 보면 한가로이 언덕에 누워 뒷발질을 하는 개를 표현한 것으로 고목나무 가지나 풀밭의 배경은 습윤한 담묵을 바탕으로 거칠고 소박하게 표현한 반면, 개의 동작은 세필의 반복으로 털의 흐름을 살리면서도 능숙한 농담구사로 지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털 뿐만이 아니라 입과 눈가에 리듬의 필선을 부여해 개의 특유 표정에 입체감과 생동감이 넘친다. 이는 작가의 끊임없는 관찰과 사생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물일 것이다.

와우, 윤두서, 종이에 수묵, 27.9x401.5cm, 국립중앙박물관

농경사회인 우리 민족에게 소는 농사일을 도왔던 짐승으로 부와 재산, 힘을 상징한다. 새해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나 고된 농사일에 대한 위로와 풍년을 가져오게 한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소를 위하는 세시풍속과 놀이가 있었던 것처럼 소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동물이다. 농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농사의 주역으로 존중돼 왔다.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작품 ‘와우(臥牛)’는 화폭 가운데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소 두 마리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소와 바위로만 구성해 여백이 더욱 강조돼 있고, 거친 갈필과 흑백의 현저한 대비 대신 단정한 필치와 먹의 미묘한 변화에 의한 외형의 표현으로 화폭의 잔잔한 분위기를 이끄는 특징이 있다. 이는 조선 중기, 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에 잦은 정치적 혼란과 전쟁으로 심신이 지친 자신의 감성을 이입함으로써 속세에서 한 발 떨어져 관망하는 유유자적함이나 허전하고 외로운 감성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