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수술비 때문에 생필품 훔친 30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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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아이의 수술비 때문에 생필품 훔친 30대 아빠 일 해서 아이 키우고 가정 꾸려갈 수 있는 ‘희망’에 투표하자

기사입력2017-03-24 18:59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ㅣ다른기사보기

조현병을 앓고 있는 스무살 아들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60대 아버지 소식이 전해진 게 지난 1월이다. 이번에는 30대 가장의 절도 행각이 심금을 울린다. 희귀병에 걸린 딸의 수술비와 먹거리를 위해 대형마트를 돌며 400여만원의 생필품을 훔쳤다는 30대 가장. 기러기 아빠인 그는 여관비를 아끼기 위해 차에서 쪽잠을 잤다.

아들을 죽인 60대 아버지 그리고 상습 절도를 일삼았던 또 다른 젊은 아버지, 현행법상 이들은 분명 범죄자다. 아들을 죽였고 도둑질을 했다. 그러나 죽임과 도둑질로 그들의 등을 떠민 현실도 지나칠 수 없다. 일을 해도 가정을 유지할 수 없는 저임금, 병들면 한 가족의 고통과 파멸을 불러오는 사회보장제도, 이런 사회현실이 엄존하는 마당에 자살과 사회적 타살의 경계는 모호하다. 어린 세딸을 위해 분유를 훔친 죄는, 240만원의 월급을 주면서 치료·수술비와 생계의 책임을 온통 가장에게 미뤄버린 저렴한 노동정책에도 물어야 한다.

병든 사회가 더 큰 신음소리를 내고 있다. 노인들의 고독사, 자살이 늘어나고, 결혼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출산율도 세계 최저 수준이 된지 오래다. 생계형 범죄가 늘어나고 자식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부모들의 극단적인 선택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정치는 그리고 경제정책은 매번 병든 사회의 신음소리를 외면해 왔다. 성장우선주의, 기업과 수출 위주의 경제정책이 가정을 무너뜨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해 온 것이다. 그 중심에는 사리사욕을 위해 기업과 정경유착의 검은 거래를 일삼았던 박근혜 정권이 있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50일도 남지 않았다. 후보들은 발 빠른 행보와 더불어 갖가지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구태의연한 정책들 속에서 참신한 공약도 보인다. 국민들의 혜안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범죄정권을 탄핵하는데 정의로운 용기가 필요했다면, 다가올 새 정권을 선택할 때는 냉철한 이성이 요구된다. 국민 70%를 중산층으로 만들겠다는 허무맹랑한 공약, 기업하기 좋은 정책으로 4만달러의 국민소득을 안겨주겠다는 공약에 또다시 속아서는 안된다. 앞으로의 5년이 범죄정권의 반복이라면 우리 사회는 시한부 생명과 다르지 않다.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도 중요하지만, 2만달러 소득이 진정한 평균이 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민소득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봉 6000~7000만원을 두고 귀족노조라고 손가락질하는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지도자, 그가 내놓는 성장위주의 경제공약에 환호해서는 안된다. 선거 때면 온갖 복지공약을 내놓다가, 정작 당선되면 ‘징징대지 말라’고 국민을 몰아세우는 비정상의 행보. 복지정책과 포퓰리즘도 구별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또다시 지도자가 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불행이다. 대기업에 이권과 특혜를 보장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말살하는 대통령 한명으로도 그 해악은 상상을 뛰어 넘었다.

투표는 나를 위한 선택이고,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행위다. 노동이 제값 받을 수 있는 사회 즉 노동의 대가로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희망’에 투표해야 ‘국민이 주인되는 세상’이 열린다. 복지는 국가의 혜택이 아니라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말할 수 있어야,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온다. 세상은 국민의 의식만큼 바뀐다. 투표는 성장이 아니라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기업이 아니라 가정을 가정답게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국민이 주인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