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시장장악 “전통 장류 제조비법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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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더불어 중기 대기업 시장장악 “전통 장류 제조비법 사라져” 적합업종 권고사항도 안지켜 영세업체 위협…한국장류협동조합

기사입력2017-04-03 08:20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류는 한국 전통식품으로 많은 음식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양곡소비량조사 결과’를 보면, 2016년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61.9㎏으로 전년보다 1㎏ 감소했으며, 30년전인 1986년 소비량 127.7㎏의 절반 수준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1989년 이후 27년 연속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쌀 소비량이 줄었다는 의미는 장류의 소비 역시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류제조업 75개 업체가 가입한 한국장류협동조합의 남윤기 전무이사는 “장류는 밥과 함께 먹는 제품이다. 최근 1인가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먹거리가 등장하면서 젊은 층의 식생활 패턴도 바뀌어 쌀 소비량이 급감하고 장류시장도 함께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청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장류시장은 1조700억원 수준으로 규모가 크지 않다. 이 시장을 놓고 2000여개 영세·중소기업들과 CJ, 대상, 샘표, 사조, 신송식품 등 대기업 5곳이 경쟁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 5개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은 80%, 나머지 20%를 놓고 대기업과 한편으로 2000여개 영세·중소업체들이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 장류시장에 뛰어들어 선택권이 넓어진 것 같지만, 대형마트나 슈퍼마켓 등에서 중소기업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내용과 무관. ©중기이코노미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남 전무는 “전통식품이 그냥 역사만 오래됐다고 해서 그렇게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그나마 2006년까지 장류 제조업이 고유업종으로 지정되면서 중소기업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대기업이 뛰어들어 시장을 장악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 전무는 “이처럼 대기업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오히려 소비자의 선택권이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장류제조업에는 2000여개의 업체들이 있는데, 기계화·공장화를 이룬 업체는 대기업 5곳을 포함해 120여곳 밖에 되지 않고, 이들 대부분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대기업 제품들은 대량생산으로 일률적인 맛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소비자들은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 제품들 중에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전히 전통방식을 유지하는 영세업체들이 대다수이지만, 극히 제한적인 지역상권에만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적합업종 권고사항 유명무실…영세업체보다 값싼 대기업 제품

장류 적합업종 권고사항은 ▲정부 조달시장 진입자제 ▲저가 제품시장 사업철수 ▲과다 판촉행위 자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자제 ▲신규 대기업의 진입자제다. 저가시장은 중소기업 제품의 평균치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 시장을 지키려 하기 위함이다.

서울시 송파구에 위치한 한국장류협동조합. ©중기이코노미

하지만 대기업들은 합의사항마저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영세업체를 위협하고 있다. 남 전무는 “영세업체들은 사실 인건비도 건지기 어려운 가격으로 납품하고 있는데, 이런 영세업체보다 가격이 낮은 대기업 제품들도 있다”며 “거기다 ‘1+1’과 같은 판촉행사나 할인행사 등 편법적으로 권고사항을 어기고 있다. 최소한 영세업체들과는 같은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해야 중소업체들도 살아남는데, 규모를 앞세워 가격을 낮추니 도저히 경쟁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대기업은 또 최근 OEM을 통해서 중저가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기업이 기술지도, 경영지도, 원가관리 등을 해준다면서 사실상 경영간섭을 통해 수익을 제한하고 있다. 남 전무는 “대기업 OEM을 받는 중소기업은 다른 중소기업과 매출이나 기술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며 “OEM이 잘 활용되면 좋지만 고급제품 생산기회는 주지도 않고, 중저가 시장에서 딱 기업운영을 유지할 수준으로만 수익을 나누다 보니, 오히려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수단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업승계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비전이 없는데, 2세대는 물론 현재 업종을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들도 가업승계를 원하지 않고 있다. 많은 업체들이 당대에서 문을 닫을 상황에 처해있다”고 업체 소식을 전했다.

적합업종 지정기간을 ‘3+3’, 총 6년으로 제한한 배경에는 6년 동안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갖추라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대기업이 권고사항마저 지키지 않으니 중소기업이 R&D에 투자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게 남 전무의 분석이다.

온라인쇼핑몰 ‘장장몰’ 구축, 공동브랜드 사업도 채비

한국장류협동조합의 남윤기 전무이사는 “정부가 장류를 비롯한 전통식품을 경제적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조합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생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남 전무는 “대기업의 권고사항 미이행에 대해 조합이 2011년부터 매년 5~6차례 동반위에 신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신고에서 사업조정을 거친 후 권고사항이 나오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걸리며, 동반위 자체가 민간자율합의체 성격이어서 권고사항에 강제력이 없고 효과도 없다. 이에따라 장류협동조합은 대기업을 직접 찾아다니며 권고사항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 전무는 “오죽하면 조합에서 ‘적합업종 비상대책위원회’까지 운영하고 있겠느냐”며 “대기업을 직접 찾아가 여러 차례 미팅을 하고 합의사항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말 어렵다. 적합업종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조합이 손놓고 있을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부터 중소기업 제품만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인 ‘장장몰’ 구축에 들어가 현재 막바지 테스팅 중이고, 올해 6월 오픈할 예정이다. 공동브랜드 사업도 올해 본격적으로 채비에 들어간다.

남 전무는 “중소기업을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투자하지 않는 기업은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또 대기업에 아예 시장에서 떠나라는 것도 아니다. 시장에 대기업도 있고 중견·중소기업도 있어야지, 대기업만 있다고 시장이 발전할 수는 없다”면서 “식품안전, 수출시장 개척, 제품군 개발 등 대기업의 역할이 있고, 그런 역할을 통해 중소기업을 선도하는 것이 대기업이 해야할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