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무상과 부귀영화를 소망하는 꽃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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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인생무상과 부귀영화를 소망하는 꽃 그림 [그림을 읽다:한국화] ⑯자연을 사랑한 민족성 ‘화훼화’

기사입력2017-04-12 10:47

오민수 객원 기자 (dat1127@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달력에 숫자가 변해간다. 날이 바뀌고, 달이 바뀌며, 계절의 변화가 다가온다. 현대인들은 삶속에서 얼마나 계절을 느끼며, 즐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 계절마다 즐길 거리가 많고 풍부한 삶을 누려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시작이란 단어와 새로움이 다가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새싹이 돋아나고, 꽃을 피우며 삶에 대한 설레임이 생겨난다.

싱그러움과 봄을 즐길 수 있는 꽃그림(화훼화)은 흔히 관조의 대상이 되고 낮과 밤의 주기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시간의 표시자로 인간의 인식체계와 실질적인 관계를 맺는다. 꽃을 그린 그림은 서아시아를 기원으로 해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에서 당에 걸쳐 널리 전파됐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화폭 속에 꾸준히 그 시대에 맞게 선택돼 왔다.

신사임당, 초충도8폭, 지본채색, 34x28.3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16세기

특히 회화에 있어서 꽃은 화려한 채색이나 수려한 형태를 가지며 연꽃, 모란, 부용 등의 꽃과 각종 덩굴과 풀 문양이 장식적인 모티브로 크게 발전했다. 이처럼 꽃을 그린 그림은 꽃의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표현을 중심으로 발전하다가 점차적으로 특징적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물로 그 표현 방법이 변화하며, 가장 친숙한 자연의 표현으로 인류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꾸준히 그려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화훼화에 있어서 꽃의 상징적 의미, 영역, 이미지 표현 등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조선시대 대표적 여류 화가인 신사임당(1504~1551)의 꽃그림들은 한국적인 소재, 구도, 색채, 주제 등의 표현 방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잡혀있다. 사물을 접함에 있어 철저한 의도보다 생동감있는 표현을 시도해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특색을 보이고 있다.

신사임당의 대표작인 ‘초충도8폭(草蟲圖8폭)’을 보면, 나비·벌·매미·방아깨비·메뚜기·잠자리·하늘소 등과 같은 곤충이 패랭이꽃·맨드라미·나팔꽃 등의 식물과 단순한 구도를 이루며 어우러진 것으로 선묘는 잔잔하고 조용한 정지감을 맛보게 해주는 여성스러운 필치다. 전체적으로 보여지는 필선들은 리듬감과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꽃의 색들은 부드러운 중간색으로 통일돼 있어 깊이감을 더해간다.

꽃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주소재와 부소재를 적절히 대비해 균제적인 특성을 잘 살리고 있고, 구도에 있어서 중앙구도와 사선구도로 안정감과 생동감을 줘 서정적인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신사임당은 자연 속에서 그들 스스로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 정격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온갖 화훼들과 초충들의 모습을 친근함이 있는 진실된 시각을 통해 표현하려 했던 것이라고 보인다. 즉 외로움과 쓸쓸함, 고독감 그리고 자신의 병약한 처지에 비춰 이웃이나 인척간의 정을 그리워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는 모습들을 초충을 빌어 화폭에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심사정, 딱따구리. 견본담채, 25x18cm, 개인 소장(1747)

두 번째는 18세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인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으로 당대의 화가 강세황(1713~1791)은 “현재는 못 그리는 그림이 없지만, 화훼와 초충을 가장 잘했고, 그 다음이 영모, 그 다음이 산수이다”라고 평할 정도로 화훼화에 일가견이 있는 화가다.

현재는 다른 장르의 그림보다 소재나 표현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화조화를 즐겼으며, 꽃과 새가 간직한 계절성과 장식성을 시각화하기 위해 독창적인 화법을 터득하고자 노력했다. 현재가 그린 무수한 꽃 그림에는 다양한 곤충들이 등장한다. 특히 그는 꽃과 함께 아름다운 나비를 많이 그려 화면의 조화를 추구했다. 심사정의 화조화 중 대표작 ‘딱따구리’는 대담한 구성으로 큰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격을 갖춘 훌륭한 작품이다.

홍매화가 비스듬히 서 있는 가운데 머리와 배가 선홍색인 딱따구리가 이 매화 등걸에 달라붙어 쪼고 있다. 고목이 된 매화나무의 의연한 모습과 주저함 없이 자신 있게 쓴 필법, 그리고 활짝 핀 매화에 쓰인 여유 있는 붓질이 매화의 화사함과 더불어 능숙한 솜씨를 보인다. 더구나 수묵을 위주로 하면서도 먹과 어울린 선명한 색채가 눈길을 끈다. 그는 풍경화뿐만 아니라 작은 동물이나 곤충의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이 그림도 높이가 30센티미터를 넘지 않는 작은 그림이지만 먹의 농담과 색을 조화롭게 사용해 큰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격조가 느껴진다. 거침없이 힘있게 펼쳐지는 붓의 필치와 딱따구리의 붉은 깃털과 매화의 색감이 화면 속에 작가의 충분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화훼화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림으로 집안을 장식하기를 좋아했던 소박한 우리의 민족성이 나타난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친밀감으로 민화 중에서도 가장 많이 그려진 그림이다. 화려한 꽃의 아름다음이 주는 장식적인 면 외에도 자연 안에서 피고 지는 꽃, 자연과 함께 어울려 있는 동물들에 대한 우리 민족의 애정을 그림 속에 담았다.

집안이 번성하고 장수하며 재물과 사회적 출세를 바라는 현세적 소망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긴 화훼 그림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시공을 넘어 인간이면 누구나 소망하는 것이었다. 이런 소망을 담은 화훼화를 우리 일상에서 자주 접하고 그에 따른 소망과 심리적 안정감을 찾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