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 촌뜨기, 헐리우드의 거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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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브루클린 촌뜨기, 헐리우드의 거물이 되다 스티브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와 드림웍스 설립…데이비드 게펜

기사입력2017-04-17 15:45

김현성 객원 기자 (artmanse2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무질서가 아니라고, 젠장!” 미국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이 내뱉은 말이다. 미국에서 잭슨 폴록의 작품이나 드 쿠닝, 마크 로스코 같은 추상표현주의 대가들의 작품을 찾는다면 데이비드 게펜(David Geffen)의 수장고 문을 두드리는 것이 정답이다. LA현대미술관 폴 심멜 큐레이터는 “게펜보다 좋은 추상표현주의 컬렉션을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게펜이 누구인가? 스티브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와 드림웍스를 공동으로 설립했고,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음반 기획자이자 브로드웨이 뮤지컬 공연제작자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톰 크루즈를 영화배우로 데뷔시킨 사람이 바로 게펜이다. 이런 그를 미국에선 쇼 비즈니스의 마술사라고 부른다.

재스퍼 존스 작품<출처=www.flickr.com>

미국 경제전문지 Forbes에 의하면, 이미 30대에 백만장자 대열에 합류한 그의 현재 재산은 74억달러(약 8조원)라고 알려졌다. 주목할 점은 그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 절반 가량이 바로 미술품 컬렉션이라는 것. 대표작으로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락, 드 쿠닝 같은 세계 톱클래스 작가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트컬렉션 총액으로만 치면 세계1위다.

또 그는 자선사업가로도 유명하다. 2002년 5월에는 UCLA 의과대학원에 2억달러를 기부했는데 이는 미국 의과대학에서 가장 큰 단일 기부금이다. 학교 측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름을 The David Geffen School of Medicine이라고 개명까지 했다.

데이비드 게펜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에게 비즈니스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16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까지 겪으며 평탄치 않은 시절을 보낸 게펜은 난독증까지 심해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고 결국 대학을 중퇴한다. 그의 첫 직장은 CBS의 우편실이었다. 일을 하다가 우연히 주디 갈란드 쇼(Judy Garland Show) 녹화모습을 보면서 완전쇼 비즈니스에 빠지고 말았다고 밝혔다.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매니지먼트 사업에 눈 뜨면서부터다. 특히 음반사업에서 두각을 보였는데 Asylum Records와 Geffen Records를 설립해 존 레넌, 밥 딜런, 엘튼 존, 이글스 등과 같은 싱어송라이터들을 발굴하고 음반을 발매했다.

이 음반들은 그에게 막대한 부를 안겨줬고 1990년에는 레코드 회사를 MCA에 5억5000만달러에 팔아 억만장자의 대열에 올라섰다. 그리고 4년 후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제프리 카젠버그(Jeffrey Katzenberg)와 함께 영화 스튜디오 DreamWorks SKG를 설립해 2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잠재돼 있던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을 개화시킨 것이다.

Hollywood’s top 10 art collectors

<자료=Wealth-X(all dollar amounts in U.S. millions)>

그는 이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여하지 않고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윌리엄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및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등의 작품을 포함한 현대미술 컬렉션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던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평안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4월에는 뉴욕에 있는 현대미술관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 1억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게펜의 현대미술 컬렉션에는 래리 가고시안이라는 세계 최고 아트딜러의 도움이 있었다. 둘은 오래된 친구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다. 그의 도움으로 게펜은 투자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매입할 수 있었고 막대한 거래차익도 얻을 수 있었다.

게펜은 수집에 능할 뿐 아니라 사들인 작품을 되파는데도 수완을 발휘했다. 어렵사리 확보한 드 쿠닝의 ‘Woman III’ 작품은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브 코헨에게 1억3750만달러에 매각했고, 잭슨 폴락의 ‘No.5’도 1억4000만달러에 멕시코 금융재벌 데이비드 마르티네즈에게 넘겨 차익을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헐리우드 아트컬렉터 Top 10 명단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많다. 단연 데이비드 게펜이 1위이고, 브래드 피트, 조지 루카스, 잭 니콜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이 컬렉션을 시작하게 된 것 또한 게펜의 영향력이다.

지금은 은퇴한 게펜은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놀라운 여정’이라고 밝혔다.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고 즐거워하는지를 직관적으로 단지 알아차렸을 뿐이라는 데이비드 게펜의 성공적인 삶의 한 축에는 미술작품 수집이 있었다. 그가 미술투자를 통해 막대한 부를 취한 것도 사실이고, 그가 어느 누구보다 미술작품을 사랑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