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밖에 모른다 “장인의 라이벌은 자기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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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소상공인 양복밖에 모른다 “장인의 라이벌은 자기 자신” ‘양복의 가치’를 만든 50년 드라마…라이벌 양복점 이용문 대표

기사입력2017-04-28 19:20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열 다섯살에 시작해 50년간 손에서 양복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시대가 변해 맞춤양복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좋은 옷을 아는 사람은 아직도 맞춤양복을 찾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라도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죠.”

‘내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을 때 맵시도 나고 몸도 편안한 것’이라는 라이벌 양복점 이용문 대표는 사람들이 입은 양복을 보면 한눈에 맞춤인지 기성복인지, 어떤 원단으로 얼마에 만든 옷인지 알아보는 맞춤양복의 장인이다.

“내 몸에 잘 맞는 옷을 입을 때 맵시도 나고 몸도 편안한 것”이라는 라이벌 양복점 이용문 대표는 50년 맞춤양복의 장인이다. ©중기이코노미

경기도 화성시가 고향인 그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68년, 서울 동대문에서 양복점을 차린 삼촌을 돕기 위해 상경을 한다. 일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닐 요량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맞춤양복이 인기였던 시절이라 짬을 내 공부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꼼꼼하고 손재주가 좋아 일찌감치 업계에서 인정받은 그는 15살에 처음 국제기능올림픽에 참가했고, 1972년 국제기능올림픽 경기대회에서 금매달을 받았다. 1973년과 1974년에는 신사복 콩클대회 우수상과 특선상을, 1981년에는 대한복장시스템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맞춤양복이 전성기였던 1970년대 명실공히 최고의 ‘양복장이’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일 욕심이 많아서 한창 배울 때는 하루에 서너시간 자면서 일만했죠. 눈감고 바늘에 실 꿰는 것까지 연습할 정도로 양복하나만큼은 누구보다 잘 만들고 싶었습니다. 양복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전국 어디든 찾아다녔죠. 곁에서 일을 도와주면서 하나라도 배울 점을 찾은 것입니다.”

세계대회출전 무산…지방에서 전전하다 다시 수원으로

어느 한부분에서도 뒤쳐지지 않는 ‘완벽한’ 양복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 대표는 국내에서 일등으로 만족하지 않고 세계대회에 나가기 위해 도전한다. 1975년 스페인 마드리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도전했지만, 당시의 라이벌에 의해 고배를 마셔야했다.

“당시 라이벌보다 기술면에서 또 심미적 관점에서도 저의 양복이 월등히 앞섰다고 자신합니다. 당시 심사위원도 나중에 인정했죠. 하지만 돈도 빽도 없던 저로서는 그 벽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지방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부산과 마산 등지에서 양복점을 하며 세월을 보내다 지금 수원에 자리잡은 것은 20여년 전이었다.

이용문 대표가 지방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다 지금의 수원에 자리잡은 것은 20여년 전이었다. ©중기이코노미

사라져가는 양복점…옷의 가치 아는 단골 위해 명맥유지

양복 한 벌을 만드는데 꼬박 하루 반이 걸린다. 기성복의 경우 재봉틀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거부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양복은 80만원에서 150만원대. 30~40만원대의 기성 양복에 비하면 비싸지만, 그가 만든 양복은 10년이 지나도 옷 모양이 흩뜨러지지 않고 몸에 꼭 맞는 양복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이 변해서 요즘은 맞춤양복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죠. 서울 명동에도 서너개 양복점만 남았습니다. 수원에서도 양복점 하던 친구들 13명 모임이 있는데, 지금은 모두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고 양복하는 사람은 저 하나 뿐입니다. 그래도 꾸준하게 찾는 단골 손님들이 있어 아직 명맥은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한때 방문양복점을 하기도 했다. 손님이 있는 곳에 찾아가 치수를 재고 옷을 만들어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 하지만 왔다갔다 허비하는 시간이 많아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어 이어가지는 못했다.

“작품이 되는 옷을 만드는 일을 정말 하고 싶었다”

값싼 옷들이 빠르게 소비되는 패스트패션의 시대, 손 끝으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수제양복의 가치를 놓지 않는 이용문 대표의 장인정신이 돋보인다. ©중기이코노미

지난해 말, 한국 맞춤양복 장인의 기술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가천대학교 동아리인 한올팀이 협업을 제의해왔다. 라이벌 양복점은 한올팀의 도움으로 각종 이벤트를 진행하고 양복리폼 사업도 시작했다. 오래된 고급 양복을 새옷으로 바꿔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심도 높아졌다.

“리폼이라고 해도 새로 만드는 작업처럼 합니다. 옷을 모두 해체해 주문자의 몸에 꼭 맞게 만들어 주는 일이죠.”

한올팀의 주선으로 취업준비생에게 양복을 빌려주는 공유옷장인 열린옷장과의 협업도 진행했다. 오래된 양복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이 대표는 절반 가격으로 작업을 해주고 수익은 한올팀 운영에 쓰도록 기증했다.

“그동안 생활을 하고 아이들 공부시키고 하느라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작품이 되는 옷을 만드는 일이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죠. 그리고 그동안 익힌 재능으로 사회에 도움되는 일,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일을 하며 남은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최고와 경쟁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겠다고 이름지은 ‘라이벌’ 양복점을 운영하며, 이 대표는 자신의 라이벌은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값싼 옷들이 빠르게 소비되는 패스트패션의 시대, 손 끝으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수제양복의 가치를 놓지 않는 이용문 대표의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