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식 기법 선보인 겸재의 ‘신묘년풍악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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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지도식 기법 선보인 겸재의 ‘신묘년풍악도첩’ [그림을 읽다:한국화] ⑱산수를 거닐다

기사입력2017-06-08 13:18

오민수 객원 기자 (dat1127@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여행이라는 것이 시기와 장소가 정해져 있으랴. 봄은 봄이어서, 여름은 여름이어서, 산은 산이어서, 바다는 바다여서 좋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머문 자리를 뛰쳐나와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과 두려움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한다. 아마 이러한 여행은 사회의 문화 형성과 맞물려 발생하지 않았을까? 요즘 우리는 공휴일이 길어지거나, 날씨가 무더워져 휴가철이 되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6월은 그 여행의 설레임을 주기에 충분한 시기이다. 교통의 발달로 다른 국가, 다른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요즘 마음만 먹는다면 가지 못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 과거에도 그러했을까?

신묘년풍악도첩 _장안사(長安寺), 견본담채, 36.0x37.4cm, 국립중앙박물관(좌)

과거의 여행은 자연과 세상사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여행을 하노라면 수많은 자연 경관을 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애환을 경험하였다. 옛 문인들은 여행 도중 가옥, 의복, 음식, 생업, 풍속 등의 생활상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그들의 삶에 애정을 갖기도 하였고,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비판하고 자성하는 계기로 삼기도 하였다. 자연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삼기도 하였고, 나아갈 길을 생각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의 문인들은 산천을 유람하면서 우리 산수의 수려함에 점차 매료되었던 것 같다. 진경산수화의 발달로 우리 산천의 모습을 그림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우리 산천을 그려야 되는 이유가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담은 겸재 정선의 금강산 작품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산을 가보는 것이 꿈일 정도로 문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실로 금강산의 아름다움에 대해 직접 보지 않아 설명하기 어려우나 겸재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 다행이다. 겸재가 보고 느낀 금강산을 그린 그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지도식 기법 선보인 겸재의 ‘신묘년풍악도첩’

신묘년풍악도첩 _ 금강내산총도(金剛內山摠圖), 견본담채, 36.0x37.4cm, 국립중앙박물관(아래)

겸재는 세차례 금강산을 다녀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 첫 금강산 여행은 1711년(신묘년)이다. 그의 나이 36세 때로 삼연 김창흡과 김시보, 정동후가 떠난 금강산 여행에 동행하였다. 겸재는 첫 금강산 여행을 하면서 ‘신묘년풍악도첩’을 그렸다. 이 작품은 각 봉우리에 이름을 적어 넣고 금강산의 끝과 끝을 순차적으로 번호를 매겨 그렸다. 이러한 지도식 표현 방식은 당시에는 만연한 화법으로 금강산 여행을 직접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세하게 표현되었다. 겸재는 조선전기와 중기를 이어온 사경산수(寫景山水)와 지도식 기법을 합하여 ‘신묘년풍악도첩’을 만들었다.

이러한 회화식 지도와 같은 형식으로 금강산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그린 이유는 금강산에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곳의 명소를 상상할 수 있게 하고 여행을 가는 사람에게는 좋은 안내서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신묘년풍악도첩’은 현재 13폭만 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존하는 진경산수화 중 가장 초기의 그림이기도 한 풍악도첩의 13폭은 겸재가 그동안 연마한 기량을 모두 발휘해서 열성을 다해 그린 그림들로 한결같이 초창기의 열기와 조심성이 배어있다. 백색 암봉은 서릿발 같은 상악준을 쓰고 토산은 미가운산법을 써가며 암봉과 토산을 대비시키는 음양조화의 화면 구성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이 조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불정대(佛頂臺), 견본담채, 25.7x33.6cm, 간송미술관(우)

두 번째 금강산 여행은 첫 여행 다음해인 1712년 그의 나이 37세 때로 이때 겸재는 ‘해악전신첩’과 ‘망천십이경도첩’을 그려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후 겸재는 김창집의 천거로 벼슬에 올라 35년간 금강산을 탐방하지 못하다가 72세가 되던 1747년에 세 번째로 금강산 사생여행을 하였고 그것이 마지막 금강산 여행이었다.

아마 그 당시는 현대의 도시공간의 변화와는 전혀 달랐겠지만, 나이가 들어 찾은 금강산 느낌이 겸재에게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이 여행에서 그려진 ‘해악전신사생첩’ 1712년 제작한 해악전신첩 30폭 중 21폭을 다시 그려낸 것으로 겸재 말기의 노련함과 원숙미가 더해져 진경산수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때 다시 제작한 해악전신첩은 다시 이병연의 제화시를 새로이 넣고 스승 삼연의 제화시는 동문 명필로 강원감사로 있는 우산 홍봉조에게 새로이 쓰게 하였다고 한다.

새로운 ‘해악전신첩’은 35년 전 ‘해악전신첩’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만큼 능숙한 필치와 세련된 화면구성이지만 기본정신과 화법만은 변함이 없다. 확고한 이념과 이론적 바탕위에서 전통화법을 충실히 익힌 기량으로 그 혁신적인 화풍(和風)을 착안해냈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지닌 명승지들의 각기 다른 모습들을 그에 맞게 사생해내면서 터득한 화리(和理)를 모두 쏟아부었다.

여행이란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설레임과 두려움의 일일 것이다. 요즘처럼 카메라가 발달된 사회가 아니던 시절 겸재의 눈에 담긴 금강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시 현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의 눈으로 보고 느낀 여행의 감흥을 진솔하게 남겨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