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토끼’ ‘피의 꽃’ 생명 변형·조작 문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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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형광토끼’ ‘피의 꽃’ 생명 변형·조작 문제 없나 과학과 결합한 미술 ‘트랜스제닉 아트’…유전자변형, 예술이 될 때

기사입력2017-07-07 15:38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예술가는 창조주와 닮아있다. 기존에 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려는 욕구가 예술가의 내면에 잠재해 있다. 이러한 특성은 과학자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들은 새로운 자연현상이나 과학현상을 발견하는 것을 넘어서, 변형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언제나 노력한다. 예술과 과학이 둘 다 기술의 어원인 고대의 ‘테크네(techné)’에 직간접적으로 관계 맺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공통된 특성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근래의 과학분야는 ‘유전공학’이 활발히 연구되면서 창조주적 특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창조주적 모습을 지닌 예술가 또한 이 유전공학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술이 생물학과 연관된 과학기술(바이오 기술)과 결합해 ‘바이오 아트(bio arts)’를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 방증이다. 바이오 아트 중에서도 특히 ‘트랜스제닉 아트(transgenic art, 유전자변형 미술)’는 사회적 관심과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물주가 된 예술가=1998년 최초로 ‘트랜스제닉 아트’ 즉 ‘유전자변형 미술’이라는 용어를 도입한 작가가 있다. 바로 브라질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해 작업하는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 1962년생)이다. 그는 지식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예술가가 접근하기 힘든 유전공학을 미술 작업에 본격적으로 도입해 바이오 아트의 한 분과로 ‘트랜스제닉 아트’를 개척한 작가다.

칵은 1999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국제브룩크너페스티벌(International Bruckner Festival)의 일환으로 예술과 기술, 사회를 주제로 한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해 출범한 기구]가 의뢰해 제작한 ‘창세기(Genesis)’로 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일명 ‘형광토끼’로 불리는 유전자 변형 토끼 ‘GFP Bunny’를 선보여 사회적 관심과 논란을 일으켰으며,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자기 혈액의 DNA를 식물에 융합해 ‘에두니아(Edunia)’라는 별난 꽃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에두아르도 칵, ‘GFP Bunny’, 2000<출처=http://www.ekac.org>

사실 그가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 상황의 변화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영상의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조금씩 생물 내부의 비밀이 밝혀지게 됐고, 1990년부터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시작해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의 게놈의 DNA 서열을 분석하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는 의학과 생물학에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이오(bio) 기술로 전환시켰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변화는 바이오 아트라는 현대미술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시켰고, 그 시기에 칵의 작업이 등장했다.

칵의 작업은 ‘창세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구약성서의 첫 번째 권인 ‘창세기’의 이름을 따서 제작한 인터랙티브 유전자변형 설치 작품 ‘창세기’는 인간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영어로 된 성경 문장을 자신이 고안한 변환 법칙을 이용해 화학물질로 변환한 후, 이것으로 합성 유전자를 만들어 자연의 박테리아 유전자와 결합해 새로운 변형 유전자를 만드는 것을 시도했는데, 이 작업 과정과 진행 상태, 감상자 참여 환경이 바로 ‘창세기’다. 이 작품은 1999년 이래 10년간 40여 곳에서 전시될 정도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칵은 전시장 방문 감상자나 인터넷으로 연결된 참관자가 빛의 세기를 조절해 증식하는 박테리아에 생물학적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도록 설치작품을 구성했는데, 이러한 상황은 누구든지 잠재적으로 생명을 변형·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형광토끼와 피의 꽃=유전자 변형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선보인 것이 ‘창세기’라면, 형광토끼로 불리는 ‘GFP Bunny’와 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에두니아’는 실재적으로 유전자 변형 생물을 키워낸 작업으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2000년에 칵은 선천성색소결핍(알비노, albino) 토끼의 수정란에 초록색 형광 단백질(GFP, Green Fluorescent Protein)을 주입해 형광빛을 발산하는 ‘GFP Bunny’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 토끼에게 ‘알바(Alba)’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칵은 이 토끼를 통해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는 포유류 게놈의 조작 실험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것이다.

에두아르도 칵, ‘에두니아(Edunia)’, 2003~2008<출처=http://www.ekac.org>

얼마 후인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칵은 또 다른 게놈 조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바로 ‘이니그마의 자연사(Natural History of Enigma)’ 프로젝트로,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나팔꽃의 일종인 피튜니아(Petunia)에 자기 혈액의 DNA를 융합해 새로운 식물종을 탄생시켰다.

충격적인 것은 형광토끼 알바가 포유류 세포의 원형질을 융합하는 것에 그쳤지만, 이 프로젝트에서는 식물(피튜니아) 세포 원형질과 동물(작가 자신) 세포 원형질을 결합해 동물도 식물도 아닌 제3의 종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다. 칵은 이 별난 꽃에 자신의 이름(에두-)과 꽃의 이름인 피튜니아(-니아)를 합쳐 ‘에두니아(Edunia)’라고 이름 붙였다. 칵의 유전자가 고스란히 담긴 에두니아는 꽃잎에 그의 피부색과 유사한 붉은 잎맥이 핏줄처럼 선명하게 뻗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전자 이식술로 탄생시킨 이 ‘새로운 생명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변기가 작품(마르셀 뒤샹의 ‘샘’)이 되기 시작한 지도 한참 됐는데, 이것을 미술작품이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이러한 새로운 생명체를 ‘트랜스제닉 아트’이라는 용어로 범주화하고 있으니, 미술작품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다른 문제, 생명윤리적 차원에서 이러한 생명 변형·조작은 문제가 없는 걸까? 칵의 프로젝트와 같은 유전자변형 작품은 그 과정과 상황을 시각화시킴으로써 생명의 가치를 환기시킨다. 또한 유전자 융합을 통해 위계관계를 파괴하고 이종(異種)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트린다. 이것은 모든 생물이 수평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효과적 방법일 수 있다.

그렇다고 유전자변형이 미술이란 이름으로 남용되면 안될 것이다. 미술이 언제나 치외법권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바이오 아트를 제작할 때는 다각도의 사유가 필요하다. 과학기술과 결합한 미술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계속 변하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