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금 10만원 받는데 4년…집단구제제도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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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손해배상금 10만원 받는데 4년…집단구제제도 한계 민주당 박범계 “사업자가 정보 안주면 피해 입증된 것으로 간주”

기사입력2017-08-16 20:19

김성화 기자 (rukawasss@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같이 다수에게 동일 또는 유사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자 개인이 각각 피해구제를 청구하는 것보다는 집단적인 방식을 통해 구제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행정적 또는 사법적 구제를 불문하고 피해자 입장에선 구제절차 진행에 따른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행정 또는 사법기관 입장에선 동일한 사건을 반복 심리하는 부담을 덜 수 있고, 결정 또는 판결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 국가기관의 신뢰성 또한 확보할 수 있다.

현행법상 집단구제제도에는 ‘집단분쟁조정제도’, ‘공동소송’, ‘선정당사자 제도’, ‘소비자단체소송’, ‘집단소송’ 등이 있다. 이들 집단구제제도는 피해자의 편의를 위해 도입됐음에도 각각의 제도가 가진 한계로 불충분한 구제, 그에 따른 피해자의 불만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또 행정 또는 사법기관의 부담완화라는 장점은 사라지고, 절차 요건 및 지연 등에 따라 국기기관에 대한 불신을 불러온다는 지적 또한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와관련 박경준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은 16일 국회에서 열린 ‘진정한 개혁을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방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 “개별 법률의 사각지대가 있어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며 “일반법으로서의 집단소송제도 도입 필요성이 절실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빠른 해결을 위한 집단분쟁조정제도…조정위원회 마음먹기 나름

집단피해구제를 위해 소송 이전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집단분쟁조정제도’가 있다. 50명 이상의 소비자가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에 집단으로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분쟁조정위원회의 재량권이 너무 크다. 우선 분쟁조정 개시여부가 조정위원회의 재량사항이다. 조정위원회 결정에 따라 분쟁조정 절차 자체를 개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빠른 피해구제를 위해 도입한 집단분쟁조정제도가 오히려 조정위원회의 재량권으로 인해 시간이 더 걸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KT 개인정보유출 분쟁…재판도 아니고, 조정하는데 2년5개월=2014년 7월 경실련에서 진행한 KT 개인정보유출에 따른 분쟁조정 사례를 보자. 당시 경실련이 분쟁조정 신청 이후 분쟁조정위원회가 분쟁조정 개시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피해 당사자중 일부가 별도의 소를 제기했다.

분쟁조정위원회는 법원의 판단을 참고한다는 이유로 장기간 분쟁조정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 재판종료 이후 분쟁조정 절차가 개시됐고, 분쟁조정 신청 이후 2년5개월이 지난 2016년 12월에 절차가 종료됐다.

소비자기본법에 따르면 집단분쟁 조정신청이 들어오면 분쟁조정절차 개시 후 30일 이내 조정절차를 종료해야 한다. 또 분쟁조정절차 개시 후 당사자중 일부가 별도의 소를 제기한 경우라면, 소제기 당사자를 제외하고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에는 조정절차 개시결정 이전에 일부가 소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분쟁조정위원회가 재량으로 개시결정을 2년이상 미룬 것이다.

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안을 제시한 경우 사건 당사자가 수락하면 분쟁은 해결되지만, 반대로 일방이라도 거부하면 조정절차는 종료된다. 피해를 입힌 사업자가 악의적으로 분쟁조정 또는 피해구제를 지연하고 싶다면, 조정안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진정한 개혁을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방안은 무엇인가?’ 토론회에서는 현재 집단피해 구제제도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해, 일반법으로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중기이코노미

◇하나로텔레콤 손해배상금 10만원 받기 위해 4년4개월 소송=집단피해구제를 위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면 공동소송과 선정당사자소송, 소비자단체소송을 이용할 수 있다. 공동소송은 다수의 피해자가 하나의 소송절차에서 각각 원고로서 소송을 진행한다. 선정당사자소송은 피해자가 선정당사자를 정해 소송을 진행하고, 판결의 효력은 선정당사자뿐만 아니라 선정당사자를 통해 소송에 참여한 모든 피해자에게도 미친다.

공동소송이나 선정당사자소송 모두 승소해서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이 소액인 경우, 피해자 입장에선 소 제기 자체가 부담이다. 여기에 소송기간까지 길어지다면 피해자의 이중부담이다.

2008년 5월 경실련이 진행한 하나로텔레콤(현 SK텔레콤)의 개인정보 무단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공동소송의 경우 손해배상액은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였지만, 이를 위해 약 4년4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또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책임도 정보를 가진 사업자가 아닌 손해를 입은 소비자에게 있다. 선정당사자소송은 이에 더해 선정당사자를 선정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광범위한 피해자에게 소송에 참여할 것을 설득하고, 피해자 각각의 위임장 등 소송에 필요한 서류를 모으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동소송과 선정당사자소송 모두 소송에 참가하지 않으면, 같은 종류의 피해자라도 판결의 효력이 미치지 않아 집단적 분쟁의 1회적 해결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단체소송,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구제 한계

소비자단체소송은 법률이 정한 소비자단체, 사업자단체, 비영리단체가 다수 소비자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 등 소비자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업자의 위법행위에 대해, 개별 소비자를 대신해 법원에 그 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를 청구하는 소송이다. 이러한 소송형태는 원고(소비자)의 손해배상이나 직접적인 피해구제가 아닌 사업자의 특정행위 금지와 같은 보편적이고 간접적인 피해구제이므로, 소비자에 대한 직접적인 피해구제 소송형태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에 더해 최근 빈번하게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건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상 소비자단체소송은 집단분쟁조정절차에 따라 조정이 성립되지 않은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피해예방도 피해구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4년 이후 집단소송 건수 단 9건…“일반법으로 적용범위 확대해야”

집단피해구제와 관련해 가장 강력한 수단은 집단소송제도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집단소송제도가 증권거래 분야에만 도입돼 있다. 현행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50인 이상의 같은 피해자가 모인다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며, 같은 피해를 입었다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효력을 적용받는다.

하지만 적용대상이 되는 소송종류가 한정돼 있고, 기업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기업에 독점돼 있는 점, 그럼에도 피해자가 자신의 손해와 사업자의 불법행위를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외 소제기에 따른 승소가 불확실한 반면 피해자가 지출해야 할 소송비용은 많고, 소송허가절차 등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 또한 집단소송제가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이날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된 이후 실제로 제기된 집단소송 건수는 9건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증권거래 분야에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됐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있다”며 “20대 국회에서 집단소송제 도입 법안을 제출하고 있지만, 소비자 분야나 공정거래 분야 등 특정한 분야로 넓히는 정도”라고 밝혔다. 따라서 “완전하고 일반적인 집단소송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피해에 대한 피해자 입증책임도 사업자로 전환하는 것을 넘어,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업자가 정보를 내놓지 않으면 피해가 입증된 걸로 보는 방안도 검토될 필요도 있다”고 했다. 또 “집단소송제에 피해자가 신고제로 참여하게 하면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소송효력을 적용받기를 원하는 ‘옵트-인(opt-in)’ 방식보다는, 원치 않는다면 효력을 적용받지 않음을 신청하는 ‘옵트-아웃(opt-out)’ 방식이 더 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