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위험 떠넘긴 ‘위험의 외주화’ 대기업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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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파트너 ㅣ 대기업·공기업 유해·위험 떠넘긴 ‘위험의 외주화’ 대기업 횡포 경총, 유해작업 도급금지 조치 불만…年 1천명 산재사망 줄여야 한다

기사입력2017-08-22 17:48

이동철 객원 기자 (leeseyha@inochong.org) ㅣ다른기사보기

전쟁연구자들은 양적 개념으로 1년동안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는 유혈분쟁을 ‘전쟁’이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는 작년까지 매년 1000명 가까운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한다. 그 수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매년 ‘전쟁’을 반복해 수행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지난 주말에도 창원의 STX 조선해양에서 사내하청노동자 4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로 작업 도중 숨졌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폭발로 죽고, 유독물에 질식되어 죽는다. 사망사고 뿐만 아니라 산재사고로 수만명이 다치고, 가족들은 정신적·경제적으로 고통을 받는다.

매년 1000명 가까운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한다

산재사고의 내용을 살펴보면, 산업현장에서는 죽음마저 공정하지 않다. 산재사망자의 절반가까이가 하청업체 노동자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969명의 산재사망자중 하청노동자 비율은 42.5%인데, 대기업으로 가면 그 비율은 더 늘어난다. 최근 3년간 50억원이상의 건설공사 산재사망자의 98%, 300인이상 조선업 산재사망자의 88%가 하청노동자였다.

대기업 대부분은 생산공정에서 위험하고 까다로운 업무를 직접 하지 않는다. 돈을 주고 업무를 떼어 내어, 용역회사에 도급을 주면 그만이다. 위험한 유독물을 다루고, 진상 ‘갑질’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일은 대부분 하청노동자의 몫이다. 위험을 ‘외주화’한 것이다. 한화케미컬,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 매년 뻥뻥 산재사고를 터뜨리지만, 사망하는 노동자 10명중 9명은 하청노동자란 얘기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 정상적인 국가가 되기는 요원하다.

유해성과 위험성 높은 작업은 도급 자체가 금지된다

새정부 출범이후 굵직한 산재예방대책이 나왔다. 지난 17일 정부는 이낙연 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조정점검회의에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협의·결정했다. 고용노동부가 후속으로 발표한 예방대책에는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고 산업재해 보호대상도 확대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수은 제련 등 유해성과 위험성이 높은 작업은 아예 도급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위험한 일은 원청이 직접 하고, 하청에 떠넘기지 말라는 고강도 조치다. 하청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한 원청의 책임도 강화했다. 기존에는 붕괴나 화재, 폭발, 추락 등 22개로 위험장소가 한정돼 있었던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을 모든 장소로 넓혔다.

한화케미컬,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이 매년 뻥뻥 산재사고를 터뜨리지만, 사망하는 노동자 10명중 9명은 하청노동자다. 위험을 ‘외주화’한 것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법위반에 따른 처벌 수준도 대폭 강화했다.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지키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원청사업주의 처벌은 현행 1년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의 벌금에서, 1년이상 7년이하 징역 또는 1억원이하의 벌금으로 강화했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의 산재예방의무도 부과했다. 가맹본부는 가맹점에 사용하도록 요구한 설비·재료 및 작업방식 등에 관한 안전·보건 정보를 가맹점주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안전·보건교육 실시를 의무화하고, 가맹점 노동자에 대한 산재보험 가입안내 등의 내용을 담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가맹점에 보급하도록 가맹본부에 강제할 방침이다.

영세자영업자,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 산재보상 포함

이와 함께 정부는 재해발생시 산재보험 보상대상 및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는 영세자영업자를 올해 말까지 산재보험에 가입시키고, 가전제품 설치·수리 기사 등 고위험 특수형태 노동자는 내년까지 산재보상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감정노동 등 정신건강에 대한 보호조치도 눈에 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상대적으로 신체적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업종이 확대되는 현실 속에서 감정노동자의 건강권 보장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사업주가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감정노동자의 건강재해를 예방하도록 했다. 아울러 건강장해 발생시 업무를 일시적으로 중단시켜 치료케 하고, 상담지원 등 사후조치도 의무화했다.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는 사업장내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신고하도록 하고, 영업비밀을 이유로 비공개하는 관행도 손볼 계획이다. 화학물질에 대한 비공개 정보라도 역학조사 등 공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노동자에게 관련정보를 제공하도록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대기업 전자부문의 하청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리거나 유해물질에 노출돼 실명한 사건에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사용한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번 정부의 대책은 ‘위험의 외주화’를 금지하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내보였다는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감정노동자 보호방안을 도입하는 등 신체건강 보호에서 정신건강 보호까지 건강권의 보호범위를 확대한 점도 고무적이다. 산재보상의 사각지대에 있던 영세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대상에 포함시킨 것 또한 박수받아 마땅하다.

과로사 대책 빠져 아쉽다…재계는 정부대책에 불만

다만 이번 정부대책에서 결정적 한방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바로 ‘과로사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빠졌기 때문이다. 집배노동자나 IT노동자 등 연간 300명이상이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며 자살을 비롯 과로사로 죽어가는 현실을 외면한 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산재사망자 감소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과로사문제에 대한 해법은 근본적으로 근로시간 단축 입법과 연계돼야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무엇보다 산업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안전’을 확보하려면, 일을 하는 당사자인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 등을 통해 원청과 산업안전대책 등을 교섭사항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교섭권을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반대를 넘어서는 것도 관건이다. 벌써부터 재계는 이번 정부대책에 대해 우려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는 “원청의 안전관리책임이 일정부분 강화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부의 유해작업 도급금지 조치가 “기업간 계약체결의 자유를 침해하여 제도도입시 관련기업의 영업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계약체결·영업활동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유해·위험한 일을 자신보다 돈이 없는 사업주와 노동자에게 떠 넘기는 행태를 계속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