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은 채워지고 멈춘 시계는 다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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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사탕은 채워지고 멈춘 시계는 다시 움직인다 ‘다른 사랑과 다르지 않다’…제목 없는 영원한 사랑, 완벽한 애도

기사입력2017-09-21 09:33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전시 관리자는 오늘도 전시공간 귀퉁이에 쌓여 있는 사탕더미의 무게를 잰다. 79kg에서 5kg이 모자란 74kg이다. 관리자는 그 사탕더미와 같은 사탕들을 5kg만큼 사탕더미에 더해 79kg을 만든다. 그 옆으로 좁은 잔디처럼 초록빛으로 반짝이는 사탕들이 긴 사각형 모양을 하고 놓여 있다. 전시 관리자는 마찬가지로 그 사탕들을 모아 무게를 잰다. 30kg이다. 4kg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관리자는 같은 모양의 사탕들을 4kg 더해 34kg을 만든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모양이 똑같은 두 개의 원형 벽시계를 바라본다. 두 시계는 45초 차이를 두고 째깍째깍 움직인다. 어제는 43초 차이였다. 어제보다 2초가 더 차이나는 것을 확인한다. 그는 생각한다. ‘저 두 시계 중 어느 한 시계가 먼저 건전지가 다 닳아 멈추겠지. 그리고 다른 하나의 시계도 결국 뒤따라 멈추게 되겠지.’ 그렇게 전시 관리자는 내일의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대량생산품에 스며든 사랑, 욕망, 죽음 그리고 애도

전시가 계속되는 동안 감상자는 전시작품인 사탕을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79kg의 사탕더미와 34kg의 초록빛 사탕 사각형은 매번 그 무게가 줄어든다. 특히 34kg의 긴 직사각형 사탕 잔디는 사탕이 사라지면서 직사각형의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흐트러진다. 이렇게 줄어든 무게와 흐트러진 모양을 매번 원상 복구해놓는 것이 작품을 관리하는 전시 관리자의 일이다.

그 누구도 이 작업이 귀찮다거나 작품을 훼손하는 것을 막겠다고 이 사탕을 가져가지 못하게 할 수 없다. 사탕을 가져가서 맛보는 것이, 다시 말해 작품의 훼손이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개의 벽시계는 어떨까?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개의 시계 사이에 시각이 점점 어긋나는데, 이것도 복구해야 하지 않을까? 시각을 똑같이 맞춰야 하지 않을까? 그건 안 된다. 건전지가 닳아 두 시계가 멈출 때까지 시각을 어긋나도록 그냥 두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도를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뭔가 알 듯 모를 듯하다. 사실 그 의도는 쉬운 생산과 소비와 관계있다. 작가는 사탕이나 시계와 같은 공산품을 통해 현대사회의 생산과 소비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제도권 미술을 비판한다. 소비되더라도 바로 채워질 수 있는 공산품의 특성을 통해 작가는 대량생산과 소비의 산업 순환구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쉽게 훼손되고 쉽게 복구되는 이러한 공산품의 특성을 활용해 자본과 권력으로 신성시되면서 작품훼손이 금기시된 미술의 근엄함을 무너트리려 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 속에는 마음을 흔드는 사실이 스며있다. 병들어 먼저 죽은 작가의 연인이 평소 79kg의 몸무게였다는 사실과, 그 연인이 죽기 전 몸무게가 34kg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어긋난 시간과 죽음이 시각의 어긋남과 멈춤의 다름을 가진 두 벽시계로 은유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을 알고 나면 공산품인 사탕과 시계가 단순한 사탕과 시계로 보이지 않게 된다. 그 속에서 사랑, 욕망, 죽음, 그리고 애도의 얼굴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연인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작품으로 제작한 작가는 바로 1996년에 짧은 생을 마감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다.

연인 ‘로스’를 향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Untitled(Portrait of Ross in L.A.)’, 1991, 사탕 79kg, 무한 공급, 설치전경(왼쪽).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 ‘Untitled(Perfect Lovers)’, 1987~1990, 두 개의 원형 벽시계.<출처=http://d304art.blogspot.kr, https://www.artsy.net>

곤잘레스-토레스는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활동하고 39세에 병마로 생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80~90년대의 뉴욕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컬어지며 현대미술사에 신화 같은 존재로 자리 잡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건조한 공산품에 진한 감정과 경험을 녹여놨기 때문이리라.

사탕을 먹을 수 있는 참여 미술의 형태를 띤 사탕 시리즈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 작품들에는 달콤한 사탕을 빤다는 행위에서 일어나는 에로틱함과, 작품(사탕)이 누군가의 입에서 녹아 그의 몸 일부가 되는 관계성이 담겨 있다.

또한 그의 연인에 대한 공적 애도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연인이었던 ‘로스 레이콕’(Ross Laycock, 1959-1991)을 향하고 있다. 그는 로스의 정상체중인 79kg만큼의 사탕더미를 쌓았고[‘Untitled(Portrait of Rossin L.A.)’, 1991], 죽기 직전의 몸무게인 34kg의 긴 직사각형 사탕 잔디를 만들었다[‘Untitled(Rossmore II)’, 1991]. 다른 사탕 시리즈도 모두 로스와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그 작품들에서 사탕을 가져가 먹는 행위는 로스의 몸을 관객의 몸 일부가 되게 하는 상징적 행위인 동시에, 그로써 죽은 로스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실천적 행위가 된다.

또 다른 대표작인 원형의 두 벽시계로 이뤄진 [무제(완벽한 연인들) Untitled(Perfect Lovers), 1990]은 부제의 ‘완벽한’과 달리, 똑같이 맞춰진 시각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어긋나다 결국 각각 다른 시간에 멈추는 반어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속성과 시계가 함께 멈출 수 없듯이 각각 다른 시각에 죽음을 맞이하는 연인들의 상황을 드러낸다. 이것 또한 ‘로스’와의 사랑과 죽음이 스며있다.

하지만 사라진 사탕은 다시 채워지고, 멈춘 시계는 다음 전시에서 건전지를 갈아 끼워 다시 움직인다. 일시적으로 소멸하거나 멈춘 것으로 보이지만 그 작품들은 다시 원래의 상태로 회복된다. 그래서 결국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상태 그대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곤잘레스-토레스가 자신의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른다. 바로 자신의 연인 ‘로스’를 향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 그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민자의 사랑, 성소수자의 사랑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연인이 죽은 후, 5년 뒤에 똑같은 병으로 생을 마감한 곤잘레스-토레스. 그는 사탕 시리즈나 두 개의 원형 벽시계 외에도, 누군가가 자고 일어난 듯이 눌려 있는 두 베개와 흐트러진 이불이 있는 하얀 침대 사진을 담은 광고판과 금빛, 혹은 녹색, 적색의 플라스틱 구슬로 만들어진 구슬발, 또는 전구들이 달린 전선들로 만든 설치 작품 등을 선보였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작품 제목이 모두 ‘Untitled’, 즉 ‘무제(無題)’라는 부분이다. 무제 뒤에는 부제가 붙어 있어 그 작품이 은유하고 있는 내용의 단서를 제공하지만, 제목은 늘 ‘무제’이다.

혹시 작가가 관객에게 자기 나름대로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제목을 이렇게 지은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만한 부분이 있다. 이 시점에서 곤잘레스-토레스에 대한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말해야겠다. 바로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연인은 동성(同性)이었고, 그의 연인과 그는 모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으로 사망했다는 사실, 더불어 그가 쿠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라는 사실. 이 사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단순히 연인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드러내는 작품을 넘어선다.

이 사실을 알고 작품을 보면 이민자, 성소수자, 에이즈 감염자 등 차별받고 박해받는 사회적 존재들에 대한 일반인의 그릇된 의식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민자의 사랑이, 성소수자의 사랑이, 에이즈 감염자의 사랑이 일반인의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작품은 소리 없이 외치고 있다.

곤잘레스-토레스는 작품에서 성정체성이 직접 드러나길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모든 제목을 ‘무제’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쩌면 자신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고, 자신의 작품 또한 이름 없는 일반 작품과 같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곤잘레스-토레스는 에이즈 포비아(AIDS-phobia)가 미국을 휩쓸던 1990년대 중반까지 열성적으로 자신의 애절한 사랑을 작품으로 드러냈다. 사회적 시선이 폭력적이었던 시기에 그는 자기 사랑이 다른 사랑과 다르지 않음을 끊임없이 작품으로 보여줬다. 그가 만든 사랑의 시는 이제 현대미술사에서 사랑의 증거가 되어 찬란히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빛은 그의 바람처럼 어쩌면 영원히 빛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