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한 관계 ‘갑과 을’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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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불공정한 관계 ‘갑과 을’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韓 대기업 총부가가치 대비 노동자 보상 비중 28% 불과…獨 73%

기사입력2017-10-13 21:21

김종보 객원 기자 (jongbokim51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사람이 먹고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누구는 수억원 짜리 참치를 회사 조직을 이용해 회사 돈으로 사먹지만, 누구는 끼니를 걱정해야 한다. 돈 많은 사람은 그만큼 능력이 있으니 그만한 사치를 누려도 되고, 돈 없는 사람은 그만큼 능력이 없으니 밥도 제대로 못먹는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아 돈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돈 벌기는 참 힘들다. 한편으로는 금수저를 부러워하지만, 한편으로는 금수저를 욕하면서 “세상 참 불공평하다”고 자조하게 된다.

‘최후통첩 게임’이란 유명한 심리학 게임이 있다. 갑은 을과 돈을 나눠가져야 한다. 갑이 돈을 어떻게 분배할지 제안하면, 을은 갑의 제안을 수락하거나 거절한다. 만약 을이 제안을 거절하면 갑과 을 모두 돈을 받을 수 없고, 을이 수락하면 갑과 을은 갑의 제안대로 돈을 나눠 갖게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무조건’ 갑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이 을에게 이익이다. 갑이 10만원 중 100원만 주겠다고 해도 없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그러나 실험결과, 갑이 20% 이하만 을에게 분배하는 경우 대부분의 을은 제안을 거절한다고 한다. “더러워서 안받는다”며, 갑에게 고춧가루를 뿌리는 격이다. 경제적 선택은 아니지만 통쾌한 선택이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갑은 40% 이상을 제안한다고 한다. 무조건 갑이 주는대로 받아야만 하는 규칙의 ‘독재자 게임’에서도 대부분의 갑은 30% 이상을 제안한다고 한다. 경제적 이익 보다 우선되는 공정함이 있는 것 같다.

이 게임들은 외부에서 돈이 주어진다는 것이 전제다. 만약 외부에서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갑에게 ‘네가 가진 돈을 나눠주라’고 하면, 갑은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왜 남한테 주나?”며 반발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동감할 것이다. 남의 돈을 줘라마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갑이 가진 돈이 알고보니 실제로는 갑이 피땀 흘려 번 돈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진 돈이라면 어떨까? 오히려 을의 치열한 노력 덕분에 갑이 그만큼의 돈을 가지게 됐다면 어떨까? 배분을 거절하는 갑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을에게 배분하길 거부하는 갑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비난만 할 것인가, 아니면 가진 것 없는 을에게 배분하라고 강제해야 할까? 나아가 만약 배분을 강제한다면 비율도 강제해야 할까? 또 만약 갑과 을이 비율을 합의한다면 아무리 불공정해 보이더라도 이를 존중해야 할까? 불공정한 갑을관계 때문에 다양한 법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갑과 을은 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 가진 것 없는 을은 갑을 부러워하면서도 그저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배분을 거부하거나 최소한만 배분하려는 갑으로 인해 돈 벌기는 갈수록 힘들다.

최근 OECD가 발간한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2017’을 보면, 한국 대기업의 총부가가치 대비 노동자에 대한 보상 비중(제조업 기준)은 28%였다. 조사대상 32개 국가 중 아일랜드, 멕시코(26%)를 빼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과 같은 제조업 강국인 독일 대기업은 총부가가치의 73%를 노동자에게 보상했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도 컸다. 한국 중소기업(10~19명)의 노동자 임금은 대기업의 41.3%에 불과하다. 조사대상 30개국 중 멕시코(38.2%)를 제외하고 가장 격차가 크다. 핀란드(70.9%), 스웨덴(69.4%) 등 북유럽 국가일수록 대·중소기업 노동자 간 임금격차는 작다. 우리나라에서 갑이 을에게 더 배분해야 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법률사무소 휴먼 김종보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