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거울을 통해서 본 우리 사회의 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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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유리와 거울을 통해서 본 우리 사회의 실경 [그림을 읽다:Blue-chip Artist] ⑩ 최익진 작가

기사입력2014-04-24 16:17

(주)예술만세 기자 (artmanse21@naver.com) ㅣ다른기사보기

유리를 작품의 소재로 처음 끌어들인 것은 1996년이었다. ‘의미의 속살’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다. 보통의 그림은 화가가 맨 마지막에 칠해진 색감들만이 감상자의 눈에 우선 들어온다. 이렇게 색이 덧칠해진 그림그리기 방식들이 내 눈에는 의미를 덧씌우고자 조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의미’를 구성할 때, 물감을 계속 덧칠하지 않고 보여주고자 한 의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결과로 투명함을 담은 매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뒤엉킨 여기5, 70x70cm, 패널 위에 나무 염료, 안료, 유리, 2012

이러한 의도에서 출발한 유리 작업은 지난 15년동안 그 의미가 조금 달라지면서 바뀌게 된다. 그 변화의 추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는 평면에서 확장된 오브제 구성을 통한 평면 설치작품들이고 둘째는 광장의 벽화 프로젝트다.

초기 형태의 평면+설치 작업의 출발은 IMF이후 당시 우리 사회의 실경(Genuine Scenery)을 바탕으로 한 모색이었다고 생각한다. “Ex-interior”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2001년의 개인전은 우리 사회의 현실과 제도권 밖에 있는 외부의 상황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작품의 형식이 화면 밖으로 나와 평면에서 확장된 의미로써 전시장의 벽과 바닥에 건축 현장의 오브제들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벽의 눈”이라 명명한 일련의 작품들은 IMF 이후 급격하게 해체되는 가족들과 이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해석으로, 마치 사람처럼 의인화된 벽의 눈을 통해서 한국사회 내부를 들여다 본 바를 점경(點景)인물과 폐 건축 오브제로 구성한 것이다.

국세청에서(부분), 2001, 아크릴수지에 그라인딩, 122.2x244.4cm

“국세청에서”라는 작품은 건물의 하중 역할이 제거된 ‘커튼 월(Curtain Wall 비내력벽)’ 공법으로 지어진 예전 국세청(지금의 삼성생명)건물을 소재로 한 것으로, 나에게 그 건물은 은폐된 권력이 작동하는 파놉티콘(원형 감옥)으로 보였다.

“광장의 벽화” 프로젝트는 삶의 실제 모습에 바탕을 둔 실경 모색의 연장에서 소통할 수 없는 우리들의 상황 자체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역사 속의 광장은 인간의 모든 욕망이 수렴되고 확산되는 공간이었다. 근대 이후 광장은 권력의 의지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자유의 열망이 충돌하는 곳이었다.

내게 있어 광장에 대한 경험은 2008년의 촛불집회로 야기된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미술적 해석을 재구성한 것으로, 전시 현장과 작품 속 화면의 관계를 미리 설정하여 불투명한 유리와 거울을 통해서 반사된 감상자의 몸이 화면 안으로 수용되게 설정했다. 이는 확장된 화면으로 전시공간을 실제 우리 삶 속에 있는 광장으로 치환시켜보고자 했다. 그리고 벽에 ‘기댐’ 으로써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작품에 대한 설치와 평면 개념을 흔들어 놓았다. 이런 모순적 배치를 통해서 회화의 숙명인 보여주기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전시 현장성을 강조하기 위한 실험적인 모색이었다고 생각한다.

첫사랑, 2011

돌이켜 보면 우리들의 삶은 강압적으로 들이닥친 폭력적인 근대성을 넘어 이미 다문화적인 가치들이 자기의 독자 영역을 구성해가는 포스트-모던적 방식으로 이미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나는 어떻게 한국화를 ‘해야 할 것’인지가 계속된 고민 중 하나였다. 이렇듯 쉼 없이 파괴되고 다시 재구성돼 온 우리 현실적 삶에서 과연 진정한 ‘실재’는 무엇인지를 추구하는 과정이 ‘실경’의 모색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경’이 단순히 현재의 상태에 있는 그 자체만을 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성의 시대에 있어 가장 궁극적인 질문은 ‘과연 우리는 누구이고 진정한 우리 것은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있어선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라는 질문 못지않게 과연 무엇이 ‘선(good)’인지의 문제를 더불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결코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촌의 너무도 다양한 삶의 방식 앞에서 한국적인 것이란 단지 우리보다 앞선 세대들이 삶을 구성했던 방식이었다는 이유보다는 현재 우리에게 ‘선(good)’에 더욱 근접한 삶의 방식을 모색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통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구성된 내 작품들은 기존의 동양화/서양화, 구상/비구상, 혹은 회화/설치 등의 기존의 구분을 넘는 소통의 가능성을 모색해 좀 더 넓게 한국화의 외연을 확대함으로써, 오늘날 한국적인 것이 될 수 있는 선이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고민과 맥이 닿아있다고 생각한다.[최익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