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가 없는 미술…사회현상, 실제를 반영한다

프린트

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좌우’가 없는 미술…사회현상, 실제를 반영한다 北미술, 통일후 미술사 풍부하게 할 자산…리얼리즘 그리고 풍경화

기사입력2017-11-02 10:01

김태현 미술평론가 (elizabeth0711@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미국의 트럼프와 북한 김정은 사이의 핵문제는 치킨게임처럼 세계뉴스에 연일 등장하고 있다. 김정은은 강경한 북핵에 대한 의지 표명의 뜻으로 자극적인 행동인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로켓맨이라 칭하는 등 자극적인 언행으로 위기감은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에 대해 혹자는 미치광이 이론이라고 칭하고도 있으며, 이러한 전략 때문에 한반도의 향후 정세는 점점 한치 앞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북한은 일당 지배·일인 지배라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국가의 영위를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착취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로 유지·운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 북한의 미술을 어렴풋이 예측해 보자면, 북한은 강력한 군국주의 노선에 따라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에 미술의 발전조차도 국가의 이익에 기여하고 있으리라는 짐작만 가능하게 한다.

변월룡, 판문점에서의 북한포로 송환, 51X71cm, 캔버스에 유채, 1953

◇국가 이데올로기와 미술=지난 봄 덕수궁 미술관에서 변월룡의 전시가 진행됐다. 이전 전시들 중 월북한 작가들의 전시라 하더라도 월북 이전 그림들뿐이라, 실제 북한 미술계에서 활동했던 작가 작품 전체의 맥락을 살펴본 전시는 처음이었다. 변월룡의 수려한 화법으로 되살아난 북한과 러시아 풍경의 생동함은 감탄을 거듭하게 했다. 더불어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런데 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사실적인 미술을 추구할까? 미술이 국가 이데올로기를 대변해 대중들을 상대로 하려고 하면 무엇보다 쉬워야 한다.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의 그림으로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해석을 가능하게 하기보다, 누가 봐도 같은 느낌과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은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에 현실감을 더해 메시지에 설득력을 더해 준다.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려면, 여러 가지 이유로 사실적인 미술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자 도구인 것이다.

근현대 한국에서도 과거 역사에서 국가의 힘이 지배적으로 작동했던 시기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 시기가 그러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는 미술정책은 향토색 전략이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조선의 풍경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야 수상할 수 있었다. 이인성은 이를 대표하는 미술가로 그는 강렬한 필체로 조선의 풍경을 원시적인 이미지로 표현해 당시 가난하고 비천했던 세태를 그렸다.

변월룡

변월룡은 연해주에서 태어나 조선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러시아로 유학을 가 레핀 미술대학을 졸업해 교수가 된 실력있는 미술가다. 그는 미술 활동 중 소련의 파견으로 평양에 2개월간 방문했다. 평양에 도착해 여러 미술가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많은 북한의 미술가들이 그를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는 변월룡에게 평양미술대학 고문 겸 학장직을 수여했다. 그래서 당시 설립 단계였던 평양미술대학의 교재를 만들고 커리큘럼을 새로이 구성해 학교의 기틀을 다졌다. 그러나 계약기간인 3년을 채우지 못하고 급성 이질에 걸려 러시아로 출국했다가 돌아오려 했는데, 북한 내부에서 숙청대상인 친소파로 분류돼 재입북 하지 못했다.

이후 박정희 시대에는 과거 역사 속 인물들을 호출해, 그들의 이미지를 통치에 활용했다. 이순신이 그 대표적인 인물로 광화문 광장은 물론, 전국의 학교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건립했다. 그리고 그 이순신 장군의 모습을 최대한 실제와 같게 제작하기 위해 장우성의 충무공 작품을 국가 표준 영정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리얼리즘 미술의 맥락은 재등장해 부상했다. 그러나 그 양상은 과거의 미술과 다르다. 이른바 포토 리얼리즘이라고 해, 1960년대 후반 척 클로스(Chuck Close)를 대표로 로버트 벡틀(Robert Bechtle), 리차드 맥린(Richard Mclean) 등의 미술가들이 등장해 기계에 대항해 기계로 표현할 수 없는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국가사상이 아닌 기계문명에 경도되어가는 사회의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사실적인 그림이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1990년대말 2000년대초 한국에서도 사실주의 기법을 차용한 그림이 성행했고, 여전히 많은 미술가들에게 찾아볼수 있는 화법이다.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국가의 이데올로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하는 풍경화=한국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화풍은 오늘날 완벽하게 사라졌을까? 동시대에 그 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 것으로 풍경화에서 그 변화하는 해답을 모색해 볼 수 있다.

풍경화는 어느 모습이나 현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제 환경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화법이나 장소는 다양할 수 있지만, 가장 정확하게 오늘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그린 그림으로 우리 본연의 삶의 모습이다.

박고석, 외설악, 1977년, 50×60.6㎝, 캔버스에 유채

이세현, Between Red-84, 2009, 600x200cm, 캔버스에 유채

월남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박고석의 산 그림을 보면 그렇다. 한국에 정착해 여러 산을 등반하며,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산을 그렸다. 그 밖에도 설악산을 그리는 김종학 등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장소인지 정확히 언급하지 않고, 우리가 보았을 법한 풍경을 그리거나 혹은 가 보았을 법한 장소를 창조해 그리는 경향이 있다. 이세현을 비롯해 이이정은, 김상현, 민율 등 많은 젊은 미술가들에게서 오늘날 변화한 풍경화를 발견할 수 있다.

변월룡이라는 디아스포라 미술가가 만일 아직 살아있다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북한 내부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미술은 사회현상의 하나이며 사진으로 다 표현 못하는 우리의 실제, 그리고 정신적인 모습이 반영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았을 때, 미지에 둘러싸인 북한의 미술은 어쩌면 통일이후 우리 한국의 미술사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자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통일이 어렵다 하더라도 한국 미술사의 기원이 같기에 교류가 가능하다면, 미술사에서는 좋은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 북한과 무기와 경제로 커뮤니케이션하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예술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혹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미술에는 좌파도, 우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