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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예술을 읽다

당신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

과격하거나 미세한 떨림으로 보여준 고통, 본성, 두려움, 아픔 

기사입력2017-11-14 10:19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얼마일까? 우리가 밀접하다면 우리 사이의 거리는 46cm 미만일 것이다. 적당한 친밀함과 어느 정도 격식을 유지해야 하는 사이라면 46cm에서 1.2m 거리를, 비개인적인 업무를 행하는 사이라면 1.2m에서 3.6m 정도 거리를 유지할 것이다. 만약 당신과 내가 강사와 청중, 혹은 연예인과 팬 사이라면 우리 사이에는 3.6m에서 7.5m 정도의 거리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 말한 사람들 사이의 4가지 거리(밀접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인 거리). 이러한 거리들은 우리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거리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도 하고, 섭섭하게도 한다. 그렇다면 그 무엇은 무엇일까? ‘퍼포먼스 예술계의 대모로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 1946~)는 당신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보여준다.

 

The Artist is Present=2010년 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이례적인 회고전(2010314~531)이 열렸다. 퍼포먼스 회고전이었다. 퍼포먼스는 일회적 예술이기에 회고전을 열기가 힘들 뿐만 아니라, 회고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퍼포먼스를 했던 영상을 상영하는 것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조금 더 현장감 있는 방법은 이제 나이가 든 예술가가 자신이 젊은 시절에 열정적으로 선보였던 퍼포먼스를 노쇠한 몸으로 재현하는 방법이다. 이때 에너지는 예전 젊을 때와 같지 않다. 그래서 퍼포먼스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 이례적인 퍼포먼스 회고전은 달랐다. 아마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회고전에서 아브라모비치는 과거 자신의 퍼포먼스들을 다른 젊은 퍼포머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본인은 새로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당연히 이 회고전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아브라모비치의 새로운 퍼포먼스였다.

 

전시기간 내내 매일 7시간30분 동안 아무 말없이 낯선 한 명의 관람객과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앉아 있기. 새로운 퍼포먼스는 이처럼 아주 간단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The Artist is Present’라는 회고전의 제목처럼 아브라모비치는 전시가 진행되는 3개월 동안 중간 휴식도 없이, 심지어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매일 오전 9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의자에 앉아 그곳(MoMA)에 있었다(출석했다).

 

그리고 맞은 편의 낯선 관람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회고전 제목과 같은, ‘예술가는 출석 중이나 예술가가 여기 있다정도로 해석할수 있는 이 퍼포먼스 ‘The Artist is Present’(2010)는 큰 화제를 뿌렸다. 아브라모비치의 맞은 편에 앉기 위해 관람객들은 전시기간 동안 매일 길게 줄을 섰다(밤을 새우는 이들도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어렵게 작가의 맞은 편 의자에 앉은 관람객은 짧게는 1, 길게는 7시간 내내 그 자리에서 작가와 시선을 교환했다.

 

아브라모비치는 그들의 정서적인 거울이었다. 이 퍼포먼스 동안 눈물을 흘리는 관람객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롱드레스를 입고 마치 미술관에 전시된 조각상처럼 앉아 있는 아브라모비치가 상대방에게 건네는 눈길, 그 수수께끼 같은 묘한 표정은 관람객에게 벅찬 감동을 주었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느낀 것이다. 페이스북(Facebook)에는 마리나와 앉기(Sitting with Marina)’가 생겼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날 울렸어(Marina Abramović made me cry)”라는 블로그도 생겼다.

 

아브라모비치는 이 퍼포먼스를 위해 총 736시간30분 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의자에 앉은 그를 75여만명이 지켜봤다. 샤론스톤, 이자벨라 로셀리니, 제임스 프랭코 등의 배우와 가수 비욕도 아브라모비치와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며,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느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The Artist is Present’, 2010, 과거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울레이를 만나는 모습.<출처=다큐멘터리 ‘Marina Abramovic:The Artist Is Present’의 한 장면>

 

운명처럼 만나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The Artist is Present’에서는 작가 앞에 서자마자 돌발적으로 갑자기 원피스를 벗는 관람객이 있는 등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러한 사건중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퍼포먼스 도중에 그의 과거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울레이(Ulay, Uwe Laysiepen)와의 재회였다.

 

이별한 지 20여년 만이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브라모비치가 1976년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후 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 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서로의 사이에 발생하는 에너지를 타자(The Other)’ 시리즈라는 2인 퍼포먼스로 선보였다. 그들은 둘이 서로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채 등대고 앉아 있기도 했고(‘Two-Headed Body’, 1975), 나체로 방을 뛰어다니며 서로의 기운을 섞기도 했다(‘Relation in Space’, 1976).

 

또한, 전시장의 좁은 입구에 서로를 마주 보며 나체로 서서 관람객이 그 둘 사이를 지나가도록 하여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느끼게 해줬다(‘Imponderabilia’, 1977). 특히 활대를 잡고 있는 아브라모비치와 활시위를 당기는 울레이, 그리고 아브라모비치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화살이라는 이 위험한 상황 속에서 오직 상대방의 몸의 무게와 서로에 대한 신뢰의 무게로 균형을 잡는 행동(‘Rest Energy’, 1980)은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시적인 그 무엇을 보여준 놀라운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12년간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 관계도 결국 1988년에 막을 내렸다. 그들은 각자가 만리장성의 양 끝에서 출발해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퍼포먼스(‘The Lovers’, 1988)로 관계를 끝맺었다. 그랬던 그들이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그들은 1분여 서로를 마주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손을 맞잡았다. 아마 그들이 서로에게 건넸던 1분 남짓한 시간에는 12년 동안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이 응축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 둘의 재회를 보고 있던 관람객들도 그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느꼈다.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그들의 표정에, 그들의 눈물에, 그들의 미세한 떨림에 스며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모비치의 ‘The Artist is Present’에는 특별한 장치는 없었다. 그저 작가가 있었을 뿐이다. 작가가 의자에 앉아 있고, 건너편에 상대방이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마련해 놓은 것뿐이다.

 

하지만 퍼포먼스는 강력했다. 작가와 관람객의 거리는 낯선 사람과 마주 보며 앉기에는 약간 부담스러울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이 거리에서 당신과 나 사이에,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이러한 퍼포먼스가 가능했던 것은 아브라모비치가, 사람들에게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브라모비치는 여러 정치적인 퍼포먼스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자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인간이 있었다. 인간의 고통, 본성, 두려움, 아픔. 아브라모비치는 끊임없이 당신과 나 사이, 우리들 사이에 일어나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때로는 과격한 몸짓으로, 때로는 미세한 떨림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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