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화폐’ 상품권 불법거래와 소비자 피해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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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유령화폐’ 상품권 불법거래와 소비자 피해 증가 화폐와 같은 상품권, 직접 규제 관련법 없어 범죄 악용 방치한 셈

기사입력2017-11-29 17:16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지난해 시행된 ‘청탁금지법’은 부정부패의 문화를 근절하자는 첫 번째 단추였다. 다음은 상품권법이다. 1999년 상품권법 폐지 이후 화폐발행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한 상품권 시장이 비리와 부정부패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고, 소비자피해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이에따라 유사화폐인 상품권의 발행과 관리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과 지난 7월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상품권 발행 및 유통질서 확립과 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 이학영 의원도 지난 22일 ‘상품권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상품권 발행액은 역대 최고규모인 8조8915억원이었다. 이는 같은 해 한국은행의 화폐발행액인 10조546억원의 약 84%에 달하는 수치다. 2012년의 상품권 발행액은 6조2200억원으로 화폐발행액인 5조6186억원의 111%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품권을 어느 업체가 얼마나 발행했는지, 시장에 얼마나 유통됐으며 상환·미상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상품권법은 1961년 제정됐다. 하지만 1999년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도모하기 위해 상품권법이 폐지되며 현재 상품권을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은 없는 상황이다. ‘상품권 표준약관’,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등이 상품권을 규율하는 주요수단이지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이 없다.

상품권은 자유로운 발행과 사용가맹점 확대로 사실상 유사통화 기능을 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이 시중에서 유통되는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기준인 통화지표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따라 상품권을 이용한 불법음성거래와 소비자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상품권은 무기명 유가증권으로 ‘상품권깡’과 같이 현금화할 경우 추적이 어렵다. 이 때문에 뇌물 및 불법 리베이트, 법인의 공금횡령, 비자금 조성 등의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지난 7월 법 개정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해 실형이 확정된 신계륜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학용 전 국민의당 의원의 경우, 현금과 함께 500만원 어치의 상품권을 각각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장호 전BS금융지주회장은 엘시티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대출 등 엘시티 사업에 도움을 달라’는 청탁과 함께 상품권 250만원 어치를 받아 실형을 선고받았다. 방산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연임로비 의혹, 롯데홈쇼핑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서도 상품권이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사업자의 경우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하면 ▲거래처(접대비) ▲직원(복리후생비) ▲사회공헌(기부금) ▲기타(기타비용) 등으로 경비처리가 가능하다. 즉 법인이 상품권을 법인신용카드로 구매해 탈세 및 불법로비 등 범죄에 사용해도 경비처리가 가능하고 세제혜택까지 받을 가능성이 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인 2016년 10월~12월에는 법인들이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한 금액이 전년대비 20% 급증하기도 했다.

소비자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3년 6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상품권 관련 소비자피해 사례는 연평균 2200여건이지만, 상품권 관련 직접적인 법적 구속장치가 없어 피해구제는 평균 6.4%에 불과하다.

이학영 의원의 상품권법안에는 ▲상품권 발행 자격 및 신고 ▲상품권의 발행제한 ▲상품권 소비자 보호장치 ▲상품권 발행실적 보고 ▲상품권 유효기간 등의 내용이 담겼다. 시장에서 화폐와 같이 통용되고 상품권이라는 위치를 감안하면, 당연히 있었어야 할 기본 감독내용이다. 그러나 1999년 상품권법 폐지 이후 17년간 상품권의 범죄화를 눈감고 있었다. 법 제정부터 서둘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