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자·땅주인만 득보는 선분양제 폐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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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건설업자·땅주인만 득보는 선분양제 폐지를 20개월간 100조가 분양권전매에 몰려…후분양제로 가수요 차단해야

기사입력2017-12-20 19:33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후분양제·선분양제 논란, 뜨거운 이슈다. 선분양제를 통해 ‘땅짚고 헤엄치기’식 장사를 했던 건설업계 입장에선 선분양제를 포기해야 할 이유가 단 한가지도 없다. 땅만 확보하고 말뚝만 박으면, 입주자 모집과 함께 청약금·계약금을 받아 공사를 했다. 그런데 아파트를 다 짓고 파는 후분양제를 시행하겠다니 반발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소비자입장에서도 선분양제에 메리트가 있었다. 청약·계약금만 내면 아파트가격 상승으로 시세차익을 가져갔다. 분양권전매를 통한 단기차익이란 덤도 있었다. 또 중도금·잔금을 저리 또는 무이자 담보대출을 통해 조달, 목돈마련 부담도 덜 수 있다. 명이 있으면 암도 있는 법. 동탄2신도시 부영주택 무더기 하자사태는 실(失)이지만, 예외적인 경우여서 득(得)보다 크다고 단정하긴 어려웠다.

선분양제는 주택 공급자와 수요자간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서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했다. 앞으로도 주택가격이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오른다면, 주택 공급자와 수요자간 공존공생의 해법으로 선분양제가 기능할 수 있다. 또 주택공급이 부족했던 시절엔 정부에게 선분양제는 매력적인 카드였다. 선분양제를 통해 민간건설사가 단시간내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주택시장 거품을 빼자는 것이 ‘사회적 합의’이고, 문재인 정부 핵심정책중 하나가 부동산시장 ‘정상화’다. 사회적 합의 그리고 정부정책과 무관하게 주택공급자에겐 여전히 선분양제가 최상책이지만, 주택수요자에겐 그렇지 않다. 아파트가격 상승에 다른 시세차익과 분양권전매를 통한 단기차익 등 불로소득 보장을 확신할 수 없어서다. ‘부동산불패’을 맹신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전체로 보자면 다수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선분양제는 온국민을 투기판으로 몰아넣음으로써 부동산·주택시장 양극화를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심화시켰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분양권전매 거래금액만 100조원에 이른다. 대부분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수요라고 추정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후분양제에선 이미 만들어진 집을 사기 때문에 분양권전매가 들어설 틈이 없다. 주택시장에 가수요를 없앰으로써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택시장을 재편하고, 과잉주택공급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20일 국회에선 국회의원 연구단체 ‘불평등사회경제조사연구 포럼’(대표의원 정동영) 주최로 ‘국민이 원하는 후분양제 전면실시, 문재인 정부 왜 주저하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부 서순탁 교수는 2014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후분양 시범사업으로 실시한 5개단지 5213가구 분양가를 분석하고, “후분양제를 시행해도 분양가 상승분은 0.57%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최근 용역보고서, ‘후분양제를 도입하면 주택공급자의 사업비 대출 이자부담이 커져 분양가격이 3~7.8%까지 상승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서 교수는 또 후분양시 우려되는 ‘소비자 목돈마련 부담’에 대해서도 선분양제와 달리 계약금·중도금 대출 이자부담이 없어 오히려 자금조달 걱정을 덜 수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서 교수는 선분양제 옹호론자의 이런저런 몇가지 주장에 대해 실증사례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선분양제와 후분양제 각각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각각의 순·역기능을 얘기하기 앞서 공급과잉이 일반적인 지금 시점에선, 선분양제 폐단이 너무 극단적이다. 2년이 안되는 기간동안 100조원, 1년에 50조원 가까운 돈이 투기판을 떠돌아다니는게 한국사회다. 거주목적이 아닌 재테크란 이름으로 주택이 투기수단으로 변질된데에는 선분양제가 지대한 몫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다른 이유를 제쳐두고, 이 하나만으로도 선분양제는 폐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