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4차 산업혁명 준비 “명암을 함께 보라”

프린트

오피니언 ㅣ 칼럼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준비 “명암을 함께 보라” 대기업·부자가 4차 산업혁명 성과 독식하면 지금보다 더 암울한 미래

기사입력2018-01-26 14:30

안호덕 객원 기자 (minju815@hanmail.net ) ㅣ다른기사보기

4차 산업혁명이 모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가 문제를 놓고 얼마 전 물리학 교수인 지인과 한참을 논쟁한 적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사회는 기계·로봇이 노동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인간은 보다 창조적인 일에 집중하면서도,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게 지인의 주장이었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일부에게 독점되면 노동소외로 이어져 보통의 삶은 더 궁핍해 질 수 있다는게 필자의 반론이었다.

4차 산업혁명을 두고 이런 논쟁과 충돌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가상화폐 투기조짐을 보이자 정부가 규제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상화폐 규제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 관계를 ‘뿌리와 줄기’에 비유하며, ‘줄기’를 자르면 식물이 생존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뿌리·줄기’론의 ‘진실’ 여부와 무관하게 당장의 광풍은 그 자체만으로도 국가경제 근간을 흔들어 놓을 수 있기에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방침은 맞다. 다만 어느 수준까지 규제할 것인가는 선택의 영역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4일 ‘4차 산업혁명과 혁신’이란 주제로 열린 정부업무보고에서 “‘하얀 스케이트식’ 혁신을 통해 3% 성장과 3만2000달러 국민소득시대를 열어가는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에따라 기획재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4대입법 추진 ▲그림자 규제의 일괄 정비 ▲신속한 재정지원체계 마련에 나섰고, 이외 대부분의 정부부처 역시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얀 스케이트’ 혁신이 필요하다는데 토를 다는 이는 없다. 20세기 초반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엔 검정색 부츠 일색이었고, 야외경기였던 탓에 보온 등을 이유로 치렁치렁한 긴치마가 주류였다. 그 시기, 백색 부츠에 무릎까지 드러난 미니스커트를 입고 경기장에 등장한 노르웨이의 어린 소녀 소냐 헤니, ‘은반의 요정’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은 환호했다. 게다가 소냐 헤니는 올림픽 3연패에 세계선수권 10연패 그리고 허리우드까지 진출했으니, 혁신의 아이콘으론 한치의 손색도 없음은 분명하다.

경제가 3%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2000달러가 돼도, 국민 대다수가 기계와 일자리를 경쟁하는 시대는 결코 행복한 미래가 될 수 없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김 부총리가 언급한 소냐 헤니의 예지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4차 산업혁명은 정부와 국민이 함께 준비하고 맞이해야 할 미래임은 분명하다. 그렇더라도 4차 산업혁명이 국민 모두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준비, 지원책도 촘촘한 것 같지 않다.

과학적 진보가 모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않는다. 기업과 부자들은 인간을 대신한 기계들로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기계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많은 경비업 종사자가 CCTV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 건설노동에서도 적지 않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됐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종사원 역시 곧 사라질 일자리중 하나다. 드론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지만, 그렇게 되면 직장에서 퇴출될 수많은 운수·택배 노동자들에 대한 고민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2017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바짝 다가섰다. 달러당 1000원으로 계산하면 3000만원, 4인가족이면 1억2000만원 소득이다. 현실에서 이 정도 수입이면 중산층 위쪽에 속한다. 그러나 대기업임원 연봉이 일반직원 140명 급여와 맞먹는다는 보도가 있다. 또 한국의 근로자간 임금격차가 OECD국가중 미국을 제외하면 가장 높다는 통계도 있다. 이러니 국민소득 3만달러시대, 서민들에겐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하얀 스케이트식 혁신을 통해 3% 성장과 3만2000달러 국민소득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정부. 4차 산업혁명을 앞서 준비하고 미래산업을 발굴하겠다는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정부의 표현대로 ‘가보지 않은 길’이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충분히 예견하고 준비해야 한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면,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잃는다는게 지금껏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진실’이다. 경제가 3% 성장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2000달러가 돼도, 국민 대다수가 기계와 일자리를 경쟁하는 시대는 결코 행복한 미래가 될 수 없다. 더구나 기업과 부자들이 4차 산업혁명의 성과를 독식한다면, 지금보다 더 암울한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정부, 명암을 함께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