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소고기에 ‘안보관세’ 부과못할 이유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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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사설 미국산 소고기에 ‘안보관세’ 부과못할 이유없다 맞서지 않으면, 미국의 무역구제조치는 더 다양해지고 강해질 뿐

기사입력2018-03-15 19:13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특별한 변수 없이 한미간 ‘혈맹’ 관계가 지금과 같이 유지된다면, 오는 23일 미국은 한국산 수입철강에 대해 고율의 ‘안보관세(25%)’를 부과한다. 미국이 안보관세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캐나다·멕시코와 호주 그리고 안보관세 적용제외 대상에 오른 유럽연합(EU)이 미국의 ‘혈맹’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미국은 한국산 철강이 자국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이다. 혹여 광화문에 가끔 모여 성조기를 흔드는 극우집단의 숫자가 적어서 그렇다는, 일부 언론의 논조에 귀 기울일 만큼 한가한 정세가 아니다.

학교 또는 사회에서도 친구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 당사자의 지위가 대등해야 한다. 양자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배경이 현저히 달라지면, 서로 섞이는게 부담스러워져 소원해지는게 일반적 현상이다. 이해보다 호의가 지배하는 상호교류인 친구관계도 이렇다. 하물며 국익만을 지고지선으로 하는 국제무역질서에서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이유없는 호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약소국 또는 강대국 개념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경향을 보인다. 약자와 강자 모두에게 ‘갈등과 대립’은 ‘비용’을 동반한다. ‘타협과 조화’에 따른 ‘편익’을 포기한 대가보다 ‘갈등과 대립’에 수반되는 ‘비용’이 크다면, 양자 모두 전자를 택하는게 합리적이다.

이같은 논리가 현실 세계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강대국의 이유없는 공격에 약소국이 저항하고 맞서야 한다. 저항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유없는 공격의 빈도는 줄고, 그 강도 또한 낮아진다. 이유없는 ‘땡깡’에는 반드시 비용이 뒤따른다는 경험칙이 반복되면, 강대국과 약소국간의 관계는 대등까지는 아니어도 유사한 수준까지 올라간다.

지난 2013년 미국은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각각 9.29%, 13.2%의 반덤핑·상계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의 제소로 미국의 세이프가드는 국제무역기구(WTO) 심판대에 올랐고, 지난 9월 한국이 최종 승소했다. WTO 판정에 따라 지난 연말까지 미국은 불법 부과된 관세를 철회해야 함에도 지금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초 미국은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또 다시 최대 50%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고강도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다.

미국의 포악질에 맞서는 강도가 약해서 인가, 이젠 이름조차 생소한 ‘안보관세’로 한국을 압박한다. 허울만 그럴듯한 동맹이란 포장지 안에서, 약소국가를 자임하며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정부도 못마땅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미간 근본적인 역관계를 외면하는 대다수 언론이다. 정부가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렸다느니, 외교에 무능한 정부라는 등 하나마나한 말로 현실을 호도하는게 한심하다는 얘기다. ‘한미간 이익의 균형’이 아닌 ‘미국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운 안보관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안보관세 하나로 끝난다면, 대다수 언론의 주장대로 구걸이라도 해보겠지만, 그렇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폭탄’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외통상관계장관회의. 왼쪽부터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동연 경제부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은경 환경부 장관, 김영문 관세청장.<사진=뉴시스>

미국의 안보관세에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은 중국도 미국산 대두·수수 등 농산물에 대한 보복관세를 검토하고 있다. 안보관세가 시행되면 유럽연합(EU)도 미국산 농산물·공산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을 밝혔고, 보복관세 대상으로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리바이스 청바지 등 구체적인 상표까지 거론된다. 트럼프의 머릿속을 확인할 순 없지만, 안보관세 적용대상에서 EU를 제외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미국의 불법적인 무역구제조치에 대해 한국정부가 중국 또는 EU가 취한 전략을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외관상 체력이나 덩치가 중국·EU보다 못하기에, 보다 강력한 저항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무역구제조치로 치러야 할 비용이 적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지 않는다면, 불법적인 미국의 무역구제조치는 더 다양해지고 강해질 뿐이다.

국제사회에 호소할 명분도 있다. 미국은 국제무역질서를 지키라는 WTO의 정당한 판정을 무시했다. 게다가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또 다시 한국에 관세폭탄 그리고 안보관세까지 무차별적인 공세를 더하고 있다. 주권국가로서 자위권을 발동하는게 너무 당연하고, 국가의 존재 목적과도 부합한다.

한국정부가 미국에 안보관세를 부과할 명분은 국내에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 초 발표한 ‘한미FTA 개정협상과 한국의 대응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농축산물 수입량은 한미FTA 발효전 5년 평균보다 발효후 5년 평균 14.8% 증가했다. 쇠고기(124.3%), 돼지고기(42.7%), 포도(115.6%), 체리(226.3%), 오렌지(63.9%) 등 관세철폐 품목을 중심으로 수입이 급증했다. 실제 미국농업무역관(US Agricultural Trade Office)에 따르면 한미FTA로 미국 농업이 혜택을 받았으며, 미국 농축산물의 한국시장 접근이 크게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한미FTA가 ‘재앙’이란 트럼프 인식이 ‘틀렸다’는 사실은 미국 정부기관인 무역위원회(ITC)도 인정했다. ITC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미FTA로 미국의 무역수지는 158억달러 개선됐다. 440억달러로 추산되는 미국의 對韓 무역적자가 한미FTA 체결로 적자규모가 283억달러로 줄었다는게 ITC의 고백이다. 이어 한미FTA가 양국간 교역 증대와 무역수지 개선에 기여했다고 평했다.

어차피 안보관세란게 ‘내가 위협받는다’라는 주관적 요건을 충족하면 되기에, 미국이 하는데 한국이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급증으로 국내 한우농가가 사실상 몰락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국산 소고기가 한국의 안보에 미치는 영향은, 한국산 철강이 미국안보에 미치는 영향보다 작지 않다. 일차적으로 미국산 소고기에 안보관세를 부과하는 것에서부터 저항의 강도를 키워가야 한다.

혹자는 우려한다.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안보관세 부과가 한미간 무역전쟁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미국인 모두가 트럼프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ITC를 포함 미국 산업계 대부분이 트럼프의 불법적인 무역구제조치에 반대한다는 사실은 미국언론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들이 트럼프의 ‘땡강’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반해서지, 한국에 호의적인 감정때문이 아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주저될 뿐, 갈 수 없는 길이 아니다. 미국의 불법적인 무역공세에 지금 이 순간, 한국정부가 정당한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앞으론 한미동맹을 얘기해선 안된다. 약소국이란 이유로 주권국가의 권능을 포기하고, 미국이 던져주는 떡이나 받아먹는 국가의 국민으로 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