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도, 플라스틱도’ 자연에서 생성된 부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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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예술 ㅣ 아트 콜라보레이션 ‘금속도, 플라스틱도’ 자연에서 생성된 부산물 인공적인 자연, 자연적인 예술…산업과 예술 경계를 교란시키다㊦

기사입력2018-03-18 18:47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 종합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활’ 편집위원

록시 페인은 자연적이어야 할 것은 인공적으로, 인공적이어야 할 것은 자연적으로 제작하는 모습을 보인다. 1999년부터 자연물인 나무를 인공적으로 제작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예술가의 손을 거쳐 (인공적으로) 제작되는 예술작품을 자연스럽게 생성시키는 작업을 선보인 것이다.

그는 1996년부터 예술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 다양한 기계장치를 고안해 냈다. 초기의 기계장치는 1996년에 선보인 장치로, 캔버스를 아크릴 물감이 가득 담긴 탱크에 일정한 시간을 두고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Paint Dipper’였다.

이 장치로 제작된 ‘Paint Dipper’ 연작은 시간차에 의해 생기는 물감층이 생기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감이 굳어지면서 고드름과 같은 물감 덩어리를 만들어내면서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형상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후에는 ‘PMU(Painting Manufacture Unit)’라는 장치를 고안해냈는데, 프로그래밍에 따라 4시간마다 캔버스에 물감을 분사하도록 제작된 장치다. 기존의 Paint Dipper가 캔버스를 물감 탱크에 담갔다 뺐다하면서 물감층이 약간 인위적이고 정형적인 물감의 수평층을 형성했다면, PMU는 물감을 분사하는 방식 때문에 비정형적이고 자연스러운 물감층을 형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록시 페인, ‘PMU’ 연작, 2001.2<출처=roxypaine.com>

이 장치 또한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리며 굳어지도록 작동되기 때문에 캔버스 아래에 자연스럽고 독특한 고드름 형상의 물감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록시 페인은 이 장치를 사용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PMU’라는 연작을 제작했다.

특히 주목되는 작품 제작장치로는 폴리에틸렌을 짜내어 입체 조각을 만들어내는 ‘SCUMAK’이다. 컨베이어 벨트와 결합된 이 장치는 그 컨베이어 벨트로 인해 산업적인 느낌을 강하게 주지만, 제작된 작업은 우연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형상으로 만들어진다. 이러한 산업적 장치와 자연적 결과물은 자연과 인공, 산업과 예술의 경계를 교란시킨다.

예술사가 조나단 파인버그(Jonathan Fineburg)는 “기계의 아름다움과 결과의 기이함은 무척 로맨틱하다”라고 말했다. 이 장치는 2006년 10월부터 2007년 4월까지 디트로이드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Detroit, MOCAD)에 설치돼 작업방식을 선보이며 관람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2005년부터 ‘Erosion Machine’이라는 돈을 절단하는 장치를 통해 다른 형식의 기계로 만드는 예술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사실 록시 페인은 자연과 인공을 나눠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인공물 또한 자연에서 생성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금속도, 플라스틱도, 폴리에틸렌도 어떻게 보면 자연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을 물질이다. 우리의 신경조직도 나무의 줄기를 닮았다. 갑자기 세계 곳곳에 심어진 록시 페인의 스테인리스스틸 나무가 자라나는 상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