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표준요금제도 폐지 후 출혈 경쟁 심화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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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중기 ㅣ 더불어 중기 “인쇄표준요금제도 폐지 후 출혈 경쟁 심화돼” 교과서 입찰 현실화 요구…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聯 고수곤 이사장

기사입력2018-03-21 13:17

조한무 기자 (chohm0113@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서 인쇄물을 볼 수 있다. 도서류는 물론이고 마트에 즐비한 상품포장지 그리고 봉투, 벽지 심지어 전자기기에 박힌 상표와 무늬, 글자까지 모두 인쇄기를 거친다. 해외로 수출되는 대부분의 상품이 포장되기 때문에 인쇄는 수출의 숨은 조력자이기도 하다.

일상 곳곳에 이처럼 인쇄의 ‘손길’이 녹아있지만, 인쇄업계 사정은 녹록하지 않다. 인쇄산업 전체 사업체는 2016년 1만8921개로 2011년(1만6633개)에 비해 13.8% 늘었으나, 같은 기간 10인이상 사업체는 1247개에서 1169개로 오히려 6.3% 줄었다. 종사자는 2011년 6만8339명에서 2016년 7만6322명으로 증가했지만, 사업체당 평균 종사자 수는 같은 기간 4.11명에서 4.03명으로 감소했다.

매출액은 2010년 7조7274억원에서 2015년 9조5162억원으로 연평균 5.3% 증가했지만, 사업체당 매출액은 같은 기간 4억7720만원에서 4억9930만원으로 연평균 1.14% 증가하는데 그쳤다. 전체 사업체·종사자 수가 늘어 매출이 늘어난 반면 사업체 규모가 영세해지면서 사업체당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다.

대한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연합회 고수곤 이사장은 정부가 시급히 인쇄표준요금을 마련해 줄것을 요구했다. ©중기이코노미

“인쇄업은 제조업인 동시에 수주를 받는 ‘서비스업(용역)’이기도 합니다. 한정된 물량을 놓고 여러 기업이 입찰에 참여하다보니 제값을 못 받고 있습니다. 제 살 깎아먹는 입찰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또 인쇄업은 끊임없이 트집 잡히는 ‘을’입니다. 발주자 요구를 맞춰 수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납품단가가 낮아 노력에 상응하는 부가가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기이코노미와 만난 대한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연합회 고수곤 이사장이 전한 인쇄업계 현실이다.

“제살깎기 경쟁…2005년 인쇄기준요금보다 낮은 경우도”

이 때문에 인쇄업계는 인쇄표준요금을 마련해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인쇄표준요금제도는 1977년 처음 도입됐다. 2000년까지는 매년, 2000년부터 2005년까지는 격년으로 요금이 인상됐다. 그러나 2006년 조달청과 인쇄업계간 이견으로 표준요금을 발표하지 못했다.

당시 조달청은 인쇄장비 발달로 작업효율이 향상돼 인쇄비가 낮아졌다고 주장했고, 인쇄업계는 고가 장비사용, 인건비 상승, 원부자재 및 물가 상승 등을 근거로 인쇄비 인상을 요구했다. 이후 2005년 표준요금이 통용되다가, 2011년 조달청은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인쇄업체간 공정한 시장경쟁을 높인다는 이유로 인쇄표준요금제도를 폐지한다.

표준요금이 사라지자 어떻게든 수주를 받기 위해 인쇄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고 이사장은 “공공기관이 매년 편성하는 예산에는 인쇄비도 포함돼 있다. 백서, 자료집, 명함, 홍보물 등 인쇄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서는 없다. 문제는 예산을 절감해야 할 때 인쇄비부터 낮춘다는 것이다. 2005년 인쇄표준요금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 잘못된 것 아닌가”라며 표준요금(인쇄공정별표준요금제)을 재도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표준요금제도 폐지로 경쟁이 심화되고 시장 왜곡 심각”

올해 중소기업중앙회 발주로 진행된 ‘인쇄공정별 요금표 표준화 연구(중소기업연구원)’ 보고서는 “조달청 인쇄표준요금제도 폐지에 따라, 정부 및 공공기관 수요에 대한 인쇄업체간 경쟁이 심화되고 시장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공공조달시장 납품단가는 민간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 이사장은 “인쇄업계 매출에서 공공조달 비중은 10%안팎이다. 그러나 정부 및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에서 통용되는 단가가 민간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모체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조한무> ©중기이코노미

인쇄업계는 표준요금 마련 외에도 국정교과서 보급방식 변경도 요구했다. 교과서 개발과 인쇄·제작을 분리해 대형출판사는 개발을 담당하고, 각 지방 인쇄소에서 교고서를 인쇄·제작하자는 주장이다. 현재 교육부는 초·중·고 국정교과서 인쇄·제작을 조달청을 통해 제한경쟁입찰제로 운영한다.

문제는 입찰참여 요건이 너무 높아 중소업체는 배제된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교과서발행 경력이 최근 3년이상이고, 교과서발행에 필요한 생산능력(자체조직 및 인쇄, 제본, 제판시설과 공급을 위한 창고시설)을 갖추고 있는 업체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교과서 입찰요건 현실화 요구…“中企특혜 달라는 것 아냐”

이에따라 교과서 인쇄·제작 입찰참여는 10개 내외 대형인쇄출판사만 가능하고, 중·소형업체 및 지역인쇄업체 입찰참여는 원천적으로 어렵다. 고 이사장은 “입찰참여 요건에 교과서발행 경력 3년이상을 두면 신규업체는 영원히 입찰을 받을 수 없다. 참여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더 많은 업체에 입찰기회를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공동도급을 금지한 입찰참여 조건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고 이사장은 “공동도급이 가능하도록 하면 각 지역조합이 수주를 받아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지역에서 교과서를 인쇄제작하면 물류비를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공동도급을 인정하면 중소·지역 인쇄업체간 인쇄·제작 노하우도 함께 나누고, 교과서발행 경력도 쌓을 수 있어 인쇄업계 전체 경쟁력이 커지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전자교과서가 시범단계에 있습니다. 통장은 사라지고 있죠. 신문구독률, 독서율도 감소합니다. 스마트기기 등장으로 인쇄수요가 줄어드는 시대적 현상을 역행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인쇄의 전통적·경제적 가치를 사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계승·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죠. 헌법 제123조는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중소기업 보호를 요구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