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부…개헌을 통해 ‘노동’을 복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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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촛불정부…개헌을 통해 ‘노동’을 복권시켰다 일하는 모든 이들이 주인인 세상 꿈꿔도 될것 같은 희망을 품게 된다

기사입력2018-03-21 18:51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문재인 정부 개헌의 윤곽이 드러났다. 22일 발표되는 권력구조개편안 등이 남았지만, 21일까지 두차례에 걸쳐 발표한 개헌안에는 사람·국민의 기본권 강화, 자치분권 국가 지향, 경제민주화 강화, 토지공개념 명시, 직접민주주의 확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 모두는 하나같이 국민에게 자유와 안전 그리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는 촛불정부의 의지를 담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애초 ‘노동존중’을 기치로 출범했던 촛불정부임을 기억하기에, 기자의 눈에 띈 단어는 ‘노동’이란 명사다.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에서 노동은 줄곧 천대를 받았다. 역사 이래 신분제 사회도 마찬가지였지만, 근대사회 이후 힘써 일하는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하대 받았던게 사실이다. 그리고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천시는 지금도 여전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대기업에 다니면 그들은 사원으로 불려지고, 대기업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월급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직원이나 근로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노동자란 공사현장 등 외진 곳이나 험한 곳에서 일하는 이른바 ‘일꾼’들이 오버랩 되는 단어다. ‘노동자=막일꾼’이란 공식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상당수 언론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운동’을 국가 기반을 흔드는 적대행위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른바 ‘귀족노조’ 프레임으로 노동운동 주체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어씌우는 폭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하지만 ‘일하는’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1970년 11월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산화한 이후, 노동자들은 악덕 사용자의 악행을 온 몸으로 거부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많은 선각자들은 노동현장으로 흡수됐다. 암흑천지 같던 노동현장에는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동자가 ‘일하는 기계’가 아닌 ‘노동으로 세상을 건설하는 존재’임을 깨달아 갔다. 하지만 2018년 대한민국에서 노동이란 단어가 오롯이 설 자리는 여전히 없다.

개헌안은 ‘근로’란 단어를 ‘노동’으로 수정했다. 정부가 사용자와 노동자를 구분해 노동자에게 더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다. 오히려 사용자에게 기울어진 힘의 균형추를 평형에 근접하게 맞추겠다는 정부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평가한다.

노동존중을 인정한 개헌안은 권력과 부가 한쪽으로 집중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것이다. 이 변화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더 나아가 소상공인에게도 전달될 것이라 기대하고 싶다. 개헌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 노동자가 제대로 대접 받는 사회, 특히 말없이 묵묵히 일하는 모든 이들이 주인인 세상을 꿈꿔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