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안됐을 경우’를 대비해 계약서를 작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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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잘 안됐을 경우’를 대비해 계약서를 작성하라 특약사항 활용하고, 구두 약속 있었다면 녹취해 둘 필요 있어

기사입력2018-04-03 10:52

김광호 객원 기자 (kimpyeon@seoulbar.or.kr) ㅣ다른기사보기

법무법인 자연수 김광호 변호사

모든 거래관계에서 이를 증명하는 서류로 계약서가 기본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계약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작은 거래관계에서도 계약서를 작성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 송사에서 법원은 제3자의 증언보다는 계약서와 같은 문서를 더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은 첨언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일반인들이 작성한 계약서를 보면 계약내용대로 잘 되었을 경우를 예정하는 조항은 잘 작성하는 반면 계약내용대로 잘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한 조항에 대해서는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

계약서의 내용대로 잘 진행이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에, 계약 내용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계약서의 본질적인 임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대비가 약한 것은 계약 당시에는 상대방과 좋은 관계이기도 하고 가급적이면 잘 될것이라는 막연한 희망같은 것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과거 처리한 사건을 보면, 토지 매매계약을 하면서 특약으로 매수인이 매수한 토지에 대해 개발행위허가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조항을 뒀고, 개발행위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매수한 토지 중 일부만 개발행위허가를 받았을 경우에 대한 조항은 없었다.

그후 매수한 토지 중 40%에 해당하는 부분만 개발행위허가가 나오자, 매수인은 허가를 받은 40%만으로는 개발하는 의미가 없고 허가받은 일부 토지만 매수해서는 타산이 나오지 않는다며 토지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하며 토지매매대금을 반환하라는 주장을 했다. 반면 매도인은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이상 토지매매계약은 유효하다는 주장을 했다. 누구 주장이 맞는 것일까?

위와 같이, 계약서에서 예정하지 않은 일이 발생한 경우는 결국 계약문구의 해석, 당사자의 의사, 전체적인 사건 경위 등을 종합해 법원이 판단을 하지만, 미리 이러한 사정을 예정해 계약서에 기재를 해 뒀다면 송사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약서의 내용대로 잘 진행이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에, 계약 내용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 계약서의 본질적인 임무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계약서 작성과 관련해 몇 가지 팁을 제시하면, 우선 특약사항을 잘 활용하라는 것이다. 대등한 당사자간의 계약서는 대체로 계약내용대로 잘 됐을 경우를 예정하는 경우가 많기에, 잘 안됐을 경우를 대비해 특약사항을 활용해야한다.

가령, 임차인이 있는 부동산매매계약의 경우 ‘임차인 명도책임은 매도인에게 있다’는 조항을 삽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의 계약서는 매도인이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를 예정하는 조항은 두지 않고 있다. 매수인의 입장에서는 임차인이 나가지 않을 경우 매수한 집으로 이사를 가지 못하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비워주기로 약속했기에 비워주고 나와야 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이사짐은 컨테이너에 보관하고 급하게 원룸이나 모텔을 얻어서 생활해야 하는 등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긴다.

이 경우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있으나, 어디까지를 손해배상으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특약사항에 ‘매도인이 임차인 명도책임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손해배상으로 얼마를 지급한다’는 조항을 넣거나 ‘임차인 명도시까지 하루에 30만원의 손해를 배상한다’는 조항을 넣었다면 매수인은 자신이 받은 손해를 입증할 필요없이 위 금액을 청구할 수 있게 돼 불필요한 송사를 막게 된다.

다음으로는 녹취를 잘 활용하라는 것이다. 계약서에 사소한 부분까지 다 담지 못해 구두로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구두로 약속한 부분이 추후 이행이 되지 않으면 구두약정이 있었는지부터 입증해야 한다. 실제로 구두약정은 증인이 없으면 입증하는데 상당한 애를 먹는다.

예를 들어 임대차계약을 하면서 임대인이 장판, 벽지, 씽크대를 바꿔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하는 경우, 임대인이 향후 몇 년 동안 월세를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경우, 공인중개사가 복비를 깍아 주겠다고 하는 경우 등 이런 사소한 것까지 계약서에 넣지 못할 수 있다. 이때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취해 두면 송사까지 가지 않고도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다. 대화 상대방과의 녹취는 불법이 아니니 얼마든지 녹음해 둬도 상관없다.

법조계에 ‘한 장의 서류가 백 명의 증인을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계약서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거의 대부분 모든 송사의 승패는 서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기억할 것은, 계약서는 계약 내용대로 잘 이행이 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니 이를 상정하는 조항을 반드시 둬야 한다. 또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계약서에 넣지 못할 경우는 반드시 녹취를 해 둬야 한다는 점이다.

끝으로, 위에서 예를 든 ‘매수한 토지에 대하여 개발행위허가를 받는 것을 조건으로’한 사건은 소송 공방을 계속하다가, 결국 법원의 권유에 따라 매매대금을 반환하는 것으로 조정이 됐다. 매수인이 승소한 것처럼 됐지만, 매수인은 송사를 하면서 몇 년의 시간을 허비했고 2000만원이 넘는 금액을 소송비용으로 사용해 ‘상처뿐인 영광’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