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거부할 수 밖에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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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거부할 수 밖에 없는 사랑 사랑의 기념비, 목소리 그리고 무덤㊦…슈워크 ‘여시오’, 아메르 ‘사람 무덤’

기사입력2018-05-06 12:25

안진국 객원 기자 (critic.levahn@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안진국 미술평론가(디지털문화정책학)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있는 반면, 거부할 수밖에 없는 사랑도 존재한다.

줄리안느 슈워크(Julianne Swartz, 1967~)는 2007년 앨드리치 현대미술관(The Aldrich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열린 ‘목소리와 공백(Voice & Void)’ 전시에서 거부할 수밖에 없는 사랑을 선보였다.

작가는 전시장에 별로 특이하지 않은 나무상자 하나를 놓고, ‘여시오(Open)’라는 제목을 붙였다. 관람객이 제목을 보고 그 나무상자를 열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관람객은 작가의 의도에 부응해 나무상자의 뚜껑을 열게 되고, 이어서 여러 사람이 다양하게 건네는 ‘사랑해요(I Love You)’라는 달콤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하지만 이 다양한 ‘사랑해요’는 조금 지나지 않아 점점 커지게 되고, 급기야 나무상자를 닫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조용한 전시장에서 증폭되는 ‘사랑해요’라는 소리는 그 좋은 의미와는 관계없이 감당하기 어려운 소리가 되고 만다.

줄리안느 슈워크(Julianne Swartz), ‘여시오(Open)’, 2007<출처=www.julianneswartz.com>

그러나 나무상자의 뚜껑을 닫는 순간, 그 시끄럽던 ‘사랑해요’라는 소리는 잠잠해지고, 관람객을 평정을 되찾게 된다. 이로써 ‘사랑의 목소리’는 거부된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사랑’의 시작은 달콤하고 감미롭지만 계속 지속될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일까?

사랑은 간혹 어떤 이의 삶을 송두리째 땅에 묻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은유적으로 ‘사랑은 무덤이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여성의 성적 역할과 그에 대한 지각을 지속해서 다루고 있는 작가 가다 아메르(Ghada Amer, 1963~)는 은유가 아닌, 실제로 ‘사랑의 무덤’을 제작했다.

작가는 2003년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Indianapolis Museum of Art) 앞마당에 ‘LOVE’라는 글자의 무덤을 팠다. ‘사랑 무덤(Love Grave)’으로 알려진 이 설치작업은 사랑이라는 글자를 무덤으로 만듦으로써 명확하게 사랑의 속성을 시각화하고 있다.

가다 아메르(Ghada Amer), ‘사랑 무덤(Love Grave)’, 2003<출처=www.ghadaamer.com>

작가는 “나의 모든 작품은 대부분 내가 경험하는 특정한 감정에 대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세계, 어떤 사람, 어떤 친구, 연인 혹은 정치 등에 대한 것이다. 이 감정을 관객에게 그 혹은 그녀가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혹은 그녀 역시 같은 경험에 연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아름다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랑에 대한 감정, 사랑에 대한 경험, 또 다른 의미의 사랑에 대한 ‘아름다움’. 아메르의 단순한 무덤은 사랑과 결부되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사랑의 여러 속성을 작품을 통해 깨닫게 된다. 한쪽에는 너무 아름다워서 거부할 수 없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가 있다. 다른 쪽에는 사랑의 속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가다 아메르의 ‘LOVE’(사랑 무덤)가 있다.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에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시작해서 감당할 수 없는 목소리로 끝나는 줄리안느 슈워크의 ‘I Love You’(여시오)가 있다. 이렇듯 사랑은 때론 감미롭지만, 때론 감당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