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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아직도 ‘광주항쟁’이 폭동이란 주장이 들립니다
진실 밝히지 못한 세월이 길면 길수록, 조작된 거짓이 힘을 잃지 않아
- 기사입력2018-05-24 12:22
김준모 객원 기자 (gubtree@hanmail.net) 다른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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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을 꿈결처럼 어슴푸레 기억합니다. 큰집과 외가가 모두 전라남도 나주인 우리집안은 광주와 서울에 친인척들이 많이 살았고, 서울에서는 우리 집이 큰집 구실을 했습니다. 그해 오월, 열 살이던 저는 집안이 북적거려 그저 들떴을 것입니다. 어른들의 낮은 음성과 심각한 표정에도, 저는 그저 나가 놀라며 쥐어준 용돈에 신이 났을 것입니다.그해 여름 막바지이었을까요? 전두환의 사진이 실린 벽보를 보며 친구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아마 친구는 그 사진을 보며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을테고, 저는 죄없는 사람들을 많이 죽인 나쁜 사람이라고 했을 겁니다. 둘 다 어린 나이에 뭘 알고 한 말은 아니었을 테고, 둘 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옮긴 것이었을 테지요. 골목에서 함께 뛰놀던 꼬맹이 둘은 끝까지 자기 말이 옳다고 다투다, 씩씩거리며 헤어졌겠지요.중학생이 되니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이 해외순방을 다녀오는 날이면, 학교수업 대신 ‘각하 내외분’이 지나가는 길목에 나가 작은 태극기를 흔들며 서있어야 했습니다. 학교에 모여 출발하기 전에 담임선생님은 “입조심 하라”며 우리를 단속했습니다. 혹시 쓸데없는 소리하다 들키면 학교전체가 곤란을 겪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까지 큰일 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곤 했지요.꼬맹이 시절, 전두환의 사진을 보며 친구와 다투고 집에 들어온 저에게 부모님은 “쓸데없는 말하고 다니다 큰일 난다”고 혼냈던 것도 같습니다. 지기 싫은 마음에 분통을 터뜨리던 꼬맹이에게, 누구 말이 맞는지 설명해주지는 않고 그저 입단속만 하셨겠지요. 중학생 때에도 선생님은 쓸데없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그저 “입조심 하라”고만 했습니다. 누구에게 들키면 큰일난다는 건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저 조심하기만 해야 했지요. 사실에 대한 설명도 없이 우리는 사실을 알면 안 되었습니다. 무엇이든 의문을 품는 것은 큰일 날 일이었고, 사실 자체가 위험한 것이었나 봅니다.고등학생이 되던 해에는 날이 더워도 교실창문을 열어놓지 못했습니다. 창문을 열면 날아드는 최루탄 냄새 때문이었지요. 그래도 그해 6월을 넘기지 않고 최루탄 연기가 잦아들었고, 대통령을 뽑는다며 투표장에 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88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5공 청문회’에서는, 이제까지 ‘큰일 날 일’로 여겨졌던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닫아 걸은 창문 밖에서 매운 최루탄 연기를 견뎌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놓았나봅니다.5.18 유족들이 청문회장 앞에서 제지당하는 뉴스를 보던 어머니께서 “아이고, 저 형님이 저기 계시네!”하며 놀라셨습니다. 어머니가 가리키신 분은 저에게는 숙모뻘로, 80년 5월에 대학생이던 아들을 잃으신 분이라고 하시더군요.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던 그분의 아들은 가족들이 걱정되어 광주로 내려왔다가 집에 가는 길목에 공수부대원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며, 어머니는 저에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큰일 날 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제가 대학교에 입학했던 해에 청문회에서 목청을 높이던 야당이, 유신정권 2인자가 만든 야당 그리고 전두환이 만든 여당과 합당해 거대여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1991년 시위중인 대학생을 경찰들이 둘러싸고 쇠파이프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해산유도보다는 공격과 체포위주의 진압을 하던 공안정국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지요.1991년 5월은 ‘분신정국’이라고도 불립니다. 공안통치에 항거하는 이들이 잇달아 자기 몸에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 달 동안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분신을 했고, 의문사를 당했으며, 강경진압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분신에 배후가 있다”는 말이 퍼졌습니다. 급기야 분신한 이의 동료를 지목해, 유서를 대신 써주고 분신을 하게 했다며 구속하고 유죄판결까지 했습니다. 졸지에 불의한 정권에 항거하던 이들이, 동료의 목숨까지 이용해 시위의 도구로 삼는 천인공노할 파렴치범으로 취급받게 됩니다.‘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마녀사냥 재판’이라고 불린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24년이 지난 2015년에 비로소 대법원으로부터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24년만에 동료를 분신자살하게 했다고 판결한 선고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법원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시위대가 동료의 죽음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검찰과 법원이, 그리고 당시 정권이 분신배후설을 조작해 정권유지에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요즘에도 간간히 1980년 광주의 항쟁이 폭동이라는 주장이 들립니다. 국가지정 ‘민주화운동기념일’이 된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주장이 마치 사실인양 떠돌고 있습니다. ‘유서대필 사건’이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조작된 분신배후설을 사실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진실을 밝히지 못한 세월이 길면 길수록, 그동안 뿌리내린 조작된 거짓이 힘을 잃지 않고 진실과 자리다툼을 합니다. 그리고 조작과 거짓으로 승승장구한 이들은 진실을 억압한 세월의 힘을 이용하여 우리사회를 거짓으로 지배하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이 거짓을 이기려면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2018년 5월도 어느덧 지나가고 있습니다. 2018년 5월에, 1980년 5월과 1991년 5월을 생각합니다. 진실이 거짓에 짓눌려 숨죽이고 살아야했던 세월을 생각합니다. 언제나 진실이 거짓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바로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항상 이어질 때 진실은 거짓을 이길 수 있습니다. 2018년 5월,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 속에서 진실을 바로 보기 위해 항상 깨어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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