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습관…男 ‘턱턱 집고’ 女 ‘고르고 살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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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중국을 읽다 쇼핑습관…男 ‘턱턱 집고’ 女 ‘고르고 살피는’ 이유 신석기시대 이래, 男 수렵과 女 채집을 통해 몸에 밴 ‘DNA’

기사입력2018-05-29 12:42

문승용 객원 기자 (msy9769@nate.com) ㅣ다른기사보기

문승용 박사(중국 문학, 한국외대 중국연구소 연구원)

중국인은 어디에서 왔으며,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세워진 것일까?

아주 먼 옛날, 약 50만년 전쯤 중국 북경의 주구점(周口店)에 사람의 모습을 한 인류가 처음 나타났다. 이곳 동굴에 모여 살던 이들을 북경원인(北京猿人)이라 한다. 그러나 이들을 ‘원숭이 사람’이라는 뜻으로 원인(猿人)이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이 유전적으로 지금 중국인들의 실제 조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는 약 16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탄생했고, 10만년 전쯤 아프리카대륙의 자연환경이 나빠져 살기 힘들어지자, 호모사피엔스가 무리를 지어 먹거리를 찾아 다른 대륙으로 이동해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 2~3만년 전 어떤 이유에선지 당시 지구 곳곳에 살았던 다른 인류들은 모두 멸종했지만, 우리의 직접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만이 살아남아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약 1만년 전 구석기시대까지만 해도 주로 동물을 잡아먹고 돌아다니며 생명을 이어가던 인류, 이제는 정착해 자신들이 먹고 살 곡식을 경작하며 살아가게 됐다는 것은 인류 생활사에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이 생활하는 습성과 의식들 가운데 많은 부분이 대체로 이때 생성됐다고 한다.

이때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지만, 먹고 살 만큼 충분한 양의 농작물을 거둬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전히 수렵을 위해 돌아다녀야 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동굴에 남아 초보적인 수준의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수렵을 나갔다가 성공적으로 동물을 잡아 자기의 아내와 자식이 있는 동굴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사는 동굴 앞에 멧돼지나 사슴들이 자신들을 잡아서 먹으라고 멍청하게 기다리진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와 아이들은 동굴에 남고 남자들은 무리를 지어 몇 날 며칠이건 들판을 헤매고 돌아다니다가, 저기 멀찌감치 어슬렁거리는 멧돼지를 발견하면 그때부터 목숨을 건 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의 사냥은 오늘날 우리들이 대형마트에 널려있는 상품을 집어 들고 계산대에 가서 쇼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멧돼지의 얼굴이 잘 생겼는지, 피부 상태는 어떤지, 토실토실 살은 잘 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어떻게든 멧돼지를 잡아야, 먹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습성이 오늘날 남자들의 쇼핑습관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대개의 남자들은 시장에 가면 사야할 목록대로 물건을 턱턱 집어 들고 계산을 끝낸다. 물건의 상태를 요모조모 살피거나 따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늘날 여자들이 물건을 고르고 또 고른 다음에 물건을 사는 구매습관은 바로 신석기시대 농사를 짓거나 식물을 채집해 먹을거리를 장만했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 소비자들. ©중기이코노미

성공적으로 사냥을 마친 남자는 자신이 살던 동굴로 돌아가고 싶었겠지만,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사냥감을 찾아 도로나 이정표도 없는 들판과 산길을 헤매고 다녔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해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멧돼지를 메고 마냥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근처에 다른 이들이 살고 있는 동굴에 들어갔고, 거기에는 모르는 여자와 아이들이 진작 사냥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는 그들의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동굴의 여자들 역시 낯모르는 남자들이 잡아온 멧돼지고기라도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간 함께 생활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멧돼지고기를 다 먹고 나면 남자들은 다시 사냥을 위해서 들판을 헤매고 다녀야 했을 것이고, 사냥을 하고 나면 또 다른 동굴에서 낯선 여자들과 얼마간 함께 지내는 일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면서 동굴의 여인네는 배가 불러왔고 달수를 채우자 아이를 낳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의 아버지가 지난 봄에 왔다 간 남자의 아이인지, 아니면 지난 여름에 왔다 간 남자의 아이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같으면 혈액형이나 유전자 검사를 하면 간단하게 밝혀지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보니 신석기시대는 아이의 성(姓)을 어머니의 성으로 붙여야 하는 여자 중심의 모계(母系)사회 형태를 띠게 되었던 것이다. 한자(漢字)에서 성(姓)자는 본래 ‘여자(女)가 낳았다(生)’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한자가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뜻글자로서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왔던 중국인들의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추정할 수는 있다.

그리고 오늘날 여자들이 시장을 가든, 백화점을 가든, 사야할 물건을 바로바로 사지 않는 구매행태 역시 신석기시대 생활습성이 남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개 여자들은 매장을 이리저리 돌면서 물건의 시세와 상태가 어떤지 두루 살펴보고 나서야 물건을 사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이 볼 때에는 물건들이 다 그게 그것이고 가격도 비슷한 것 같은데, 어째서 시간낭비하고 피곤하게 품을 팔아 이리저리 헤매고 나서야 물건을 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여긴다.

이처럼 오늘날 여자들이 물건을 고르고 또 고른 다음에 물건을 사는 구매습관 역시 바로 신석기시대 농사를 짓거나 식물을 채집해 먹을거리를 장만했던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에야 시장에서 시금치·양파·고구마 등 먹을 수 있는 것들만 팔지만, 신석기시대에는 들판에 널린 온갖 식물들 가운데 먹어도 되는 것과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없었다. 농사를 주로 지었던 여자들이 아무리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이것저것 집어 먹는다고 해도, 때로는 독초를 먹고 죽는 일도 많았을 것이다. 오늘날 여자들이 겉모양이나 색깔에 민감해진 원인 역시 신석기시대에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안심하고 채소를 먹게 되기까지, 수많은 여자들이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죽어야만 했던 것을 생각하면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