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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씨, 현대 정씨, LG 구씨, 롯데 신씨, 한진 조씨

21세기에도 ‘법 따위 가볍게 무시하는’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 

기사입력2018-05-31 09:48
김종보 객원 기자 (jongbokim518@gmail.com) 다른기사보기

王侯將相 寧有種乎(왕후장상 영유종호).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로 풀이되는 이 말은, 기원전 200년경 진()에 반발해 일어난 진승·오광의 난에서 진승이 농민반란을 주도하며 외친 말로 알려져 있다. 진나라의 가혹한 형벌이 두려웠던 농민들이 진승의 주장에 동조해 장초(長楚)라는 나라까지 건설하게 되었다고 하니, 강고한 신분제 사회였던 기원전 200년전 시기에도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는 의식은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던 모양이다.

 

그 후 1400여년이 흐르고, 서기 1198년 고려시대 노비 만적은 다시 이 말을 외치며 만적의 난을 도모하였다. 개경 노비 수 백명이 주인의 매질 밑에서 근골의 고통을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해 궐기를 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산 채로 강에 던져졌다. 사극 무인시대에서 만적은 죽기 직전 하늘이 사람을 세상에 내실 때 모두가 사람답게 살라 명하시었거늘 어찌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을 수 있겠소이까? 노비문적 하나에 귀천이 갈리는 이놈의 세상을 뒤엎지 못하고 가는 것이 원통할 뿐이오이다! 허나 먼 훗날, 천노의 자식들이 귀천의 족쇄를 깨부수려다가 죽어간 선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오니 후회는 없소이다라는 대사를 읊었다.

 

그 후 820년이 흘렀다. 21세기가 된지도 어언 18.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 어느 누구도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 전문에는,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한다고 명시돼 있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2항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신분제는 벌써 없어졌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유독 재벌가에만은 왕후장상의 씨, ‘오너의 씨가 따로 있다. 삼성 이씨, 현대 정씨, LG 구씨, 롯데 신씨, 한진 조씨 등이 대표적이다. 재벌이 아니라도 수많은 기업에서 창업자의 자손들은 소위 경영수업이라는 이름 아래 특별히 채용되고, 특별히 승진하며, 특별히 대우를 받는다.

 

연합뉴스 201728일자 기사를 보면, 오너일가는 입사 후 평균 4.9년 만에 임원이 된다. 한겨레신문 20171210일자 기사를 보면, 현대중공업 정몽준 회장의 장남 정기선은 35세의 나이에 현대중공업 부사장 겸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함께 승진한 정명림 현대중공업모스 부사장은 입사 후 34년이 걸렸는데 말이다. 주취폭력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한화그룹 3남 김동선은 2006년부터 국가대표 승마선수였는데, 201410월 한화건설에 입사해 한화건설 해외토건사업본부 과장, 한화건설 신성장전략팀장 등을 지냈다. 건설 관련 경력이 전혀 없는 1989년생, 올해 28세의 전직 승마선수가 갑자기 입사하고 입사 3년 만에 팀장이 된 것이다.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하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에서 우리는 공정한 채용기회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 분노했다. 그런데 오너일가가 특별히 채용되는 것에는 별로 분노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들이 초고속으로 승진해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왜 그럴까. 몇 명 되지 않아서?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이해돼서? 오너일가이니 부모로부터 잘 배워 경영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빈정만 상할 뿐 변할 것도 없어서?

 

어느 회사에서 기독교 신자만 승진시켜주었다면, 그 회사에서는 난리가 날거다. 그런데 오너일가가 승진해도 그 회사에서는 난리가 안 난다. 회사가 사용자로서 지켜야 할 근로기준법 제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21세기에도 건재한 왕후장상의 씨는 법 따위를 가볍게 무시한다. 그러니 입사 4년 만에 임원에 오른 조현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대한항공 사옥 안을 쩌렁쩌렁 울릴 수 있었을 테다.[법률사무소 휴먼 김종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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